이기동 (희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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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기동은 1960년대 후반 코미디언 구봉서와 함께 활동을 시작하여, 1970년대 '땅딸이'라는 별명으로 이대성과 콤비를 이루며 인기를 얻은 희극인이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눈알을 굴리며 뒤로 넘어지는 연기 등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저 멀리 가고 싶구나' 등의 유행어를 만들었다. 1980년대 신군부의 연예인 정화운동으로 TV 출연이 금지된 후 사업을 벌였으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1987년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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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희극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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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기동 |
출생일 | 1935년 6월 8일 |
출생지 | 대한민국 |
사망일 | 1987년 4월 1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도봉구 한일병원 |
직업 | 코미디언 |
활동 기간 | 1961년 ~ 1987년 |
국적 | 대한민국 |
2. 약력
이기동(Lee Ki-dong)은 1960년대 중반, 군 장교 전역 후 구봉서를 찾아가 공연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1] 1970년대 '땅딸이'라는 별명으로 이대성과 콤비를 이루며 인기를 얻었다.[1] 1980년대 신군부의 연예인 정화운동으로 TV 출연이 금지되자 사업을 시작, 기동산업을 세우고 기동사와 땅딸이 요쿠르트 등을 생산했다.[1]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50대에 세상을 떠났다.[1]
이기동은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눈알을 굴리다 뒤로 넘어지는 연기나, 경례할 때 손을 용수철처럼 여러 번 튕기는 연기로 인기를 얻었다.[1] 권귀옥과 함께 '땅딸이 이기동과 늘씬미녀 미스 권'으로 TV 방송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3. 코미디 활동
3. 1. 주요 유행어
4. 출연 작품
1960년대부터 MBC의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눈알을 굴리거나, 경례할 때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등의 독특한 연기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미녀 코미디언 권귀옥과 함께 '땅딸이 이기동과 늘씬미녀 미스 권'으로 불리며 콤비로 활동했다. "저 멀리 가고 싶구나",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4. 1. 영화
4. 2. 가요
- 1974년 앨범 《망각》
5. 사망
1987년 3월 28일 새벽 밤업소 출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4월 1일 사망했다.[1] 향년 52세.
6. 삼청교육대 관련 논란
1980년대 신군부의 연예인 정화운동 여파로 TV 출연이 금지되자 이기동은 사업을 벌여 기동산업을 세우고 기동사와 땅딸이 요쿠르트 등을 생산했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1]
1993년 8월 시사뉴스(구 시사정경)는 '삼청교육이 이기동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기사에서 동료 희극 배우 배삼룡의 증언을 인용해 '이기동이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서 고초를 겪은 후유증으로 50대 나이에 타계했다'고 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표면적인 이유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제인'이라는 것이었다. 이기동과 배삼룡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사와(요구르트의 일종)를 만들어 파는 기업을 운영했지만 두 사람 다 경영 부실로 부도를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배삼룡은 "이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들의 허울좋은 핑계였다"며, 실제로는 배삼룡, 이기동이 3김씨 중 김종필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배삼룡은 이 잡지와 인터뷰에서 "이 씨는 교육 수료 후 정신적인 굴욕감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매일을 술로 지새우며, 결국은 합병증으로 죽어갔다"고 주장했다.[1]
7. 일화
1960년대 중반, 군 장교 전역 후 이기동은 당시 최고 코미디언 구봉서를 찾아가 함께 활동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공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에는 '땅딸이'라는 별명으로 이대성과 콤비를 이루어 큰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신군부의 연예인 정화운동으로 TV 출연이 금지되자 사업을 시작하여 기동산업을 세우고 기동사와 땅딸이 요쿠르트 등을 생산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50대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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