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 (스모 선수)
1. 개요
이대원은 일본의 스모 선수로, 어린 시절 씨름과 유도를 경험했으며 호토쿠 학원 중·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7년 가스가노 방에 입문하여 프로 스모 선수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2014년 은퇴했다. 그의 주요 기술은 상대를 잡는 요츠 스모였으며, 통산 267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건강 관리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며, 2015년에는 야구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 본명 | 이대원 (I Dae-won) |
|---|---|
| 출생일 | 1988년 4월 6일 |
| 출생지 |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
| 신장 | 196cm |
| 체중 | 181kg |
| BMI | 47.12 |
| 애칭 | 리 (Lee) |
| 시코나 (링네임) | 栃乃若 導大 (Tochinowaka Michihiro) |
|---|---|
| 최고 계급 | 서 마에가시라 1 |
| 소속 헤야 (스모 훈련장) | 가스가노헤야 |
| 데뷔 | 2007년 1월 장소 |
| 은퇴 | 2014년 11월 장소 (2015년 1월 장소에서 은퇴 발표) |
| 전적 | 267승 244패 11휴 (46장소) |
| 막내 (최상위 리그) 전적 | 106승 156패 8휴 (18장소) |
| 특기 | 왼쪽 샅바 잡고 조이기 |
| 우승 | 없음 |
|---|---|
| 상 | 없음 |
| 취미 | 음악 감상 |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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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스모 선수 -
황민부
황민부는 일본의 前 씨름 선수로, 부상으로 은퇴 후 사업가로 활동하다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는 가스펠 가수로 활동한다. -
대한민국의 스모 선수 -
김성택
김성택은 대한민국의 씨름 선수 출신으로 일본에서 스모 선수로 활동하며 마쿠우치에 진출하여 투혼상을 수상했으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은퇴했다. -
1988년 출생 -
유병재
유병재는 1988년생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방송 작가, 배우, 감독으로, 《SNL 코리아》 '극한직업' 코너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독특한 유머 감각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얻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 사회 공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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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희는 1988년생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남성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로 데뷔하여 솔로 활동과 예능, 광고, 연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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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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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어린 시절 및 스모 입문 배경
이대원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체격을 가졌다. 아마가사키 시립 성덕 초등학교 1학년 때 피구를 하다가 던진 공이 동급생의 얼굴에 맞자, 담임 교사는 이대원의 체격을 고려하여 주무기로 던지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마가사키 시의 어린이 씨름 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2위를 차지했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에 다음 해 여름방학부터 씨름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고, 5학년 때는 씨름 도장에서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이 시기에 유도도 함께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 키는 180cm, 체중은 120kg에 달했다.
이러한 이대원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집 근처 호토쿠 학원 중학교·고등학교의 씨름부 감독 후쿠다 코우지였다. 이대원 역시 고시엔으로 유명한 호토쿠 학원에서 스모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중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호토쿠 학원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국 도도부현 중학생 씨름 선수권 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했다.
호토쿠 학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고교 요코즈나의 자리에 올랐다. 인터하이 개인전 출전 전날 밤, 초등학교 시절 은사와 대화하며 "내일 우승하면 프로로 가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우승하면서 프로 입문을 확정했다. 이후 후쿠다 감독과 친분이 있던 카스가노 오야카타가 있는 카스가노베야에 입문하게 되었다.
3. 선수 경력
호토쿠 가쿠엔 고등학교 3학년 때 고교 요코즈나에 오른 이대원은 스승 카스가노 오야카타와의 인연으로 카스가노베야에 입문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월 바쇼에서 마에즈모로 프로 스모에 데뷔했다. 동기로는 훗날 마쿠우치까지 올라간 야마모토야마, 아란, 이치하라, 텐카이호 등이 있었다。 같은 해 5월 바쇼에서는 조니단에서 7전 전승을 거두었으나, 유쇼 결정전에서 야마모토야마에게 패배했다. 이후 순조롭게 승격하여 11월 바쇼에서는 마쿠시타로 올라섰다.
마쿠시타 상위권에서는 잠시 정체기를 겪으며 2008년 7월 바쇼에서 첫 마케코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시기인 2009년 11월, 시코나를 본명인 '이(李)'에서 스승의 현역 시절 시코나를 딴 '토치노와카(栃乃若)'로 변경했다. 한 글자 이름인 '이'는 요비다시가 부르기 다소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체기를 벗어난 계기는 2010년 7월 바쇼였다. 오즈모 야구 도박 문제로 상위 등급에 결원이 많이 생기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다음 바쇼에서 주료 승격을 확정지었다. 주료에서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어, 2011년 1월 바쇼에서는 12승 3패의 호성적으로 유쇼 결정전까지 진출하며 마쿠우치 승격을 확실시했다.
하지만 스모 승부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1년 3월 바쇼가 취소되었고, 공식적인 반즈케 발표 없이 '순석(順席)'이라는 임시 순위표를 통해 마쿠우치 대우를 받게 되었다。 실질적인 마쿠우치 데뷔는 같은 해 5월 기량 심사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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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우치에서는 2012년 3월 바쇼에서 자신의 최고 순위인 마에가시라 1까지 올랐다. 이 바쇼 첫날에는 당시 오제키였던 키세노사토를 꺾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최종 성적은 5승 10패에 그쳤다. 이후 오른쪽 팔꿈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주료 강등과 마쿠우치 재승격을 반복했다.
2014년 11월 바쇼에서 마에가시라 15위로 출전하여 3승 12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다시 주료 강등이 확정되자 은퇴를 결심했다. 스승 카스가노 오야카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4년 12월 15일 일본 스모 협회에 은퇴서를 제출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약 2년 전부터 은퇴를 고민해왔으며, 신체적인 부상보다는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은퇴식(단파쓰시키)은 2015년 1월 25일에 열렸다.
은퇴 후에는 건강 관련 기업인 하쿠주 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에 입사하여 건강 관리 지침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3.1. 스모 스타일
토치노와카는 상대의 마와시(샅바)를 잡는 기술을 선호하는 요츠 스모 선수였다. 그의 주특기는 상대의 팔 안쪽으로 왼손을 넣고 바깥쪽으로 오른손을 잡는 히다리요츠였다. 통산 승리의 거의 절반은 스모에서 가장 흔한 두 가지 기술인 요리키리(밀어내기)와 오시다시(밀어내기)로 거두었다.
체격을 활용하여 밀어내는 것이 일관된 스모의 흐름이었으며, 던지기나 끌어당기는 기술에는 거의 의존하지 않았다. 2013년 11월 다카야스 아키라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그는 매일 도치오야마 유이치로, 헤키잔 고스케와의 훈련 덕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힘 스모에 전념하는 반면, 허리가 높고 시작이 엉성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 때문에 상대에게 먼저 좋은 자세를 내주어 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12년 상위 랭커들과의 대결에서는 속공 스모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옆구리가 견고하지 못해 왼쪽 팔꿈치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현역 말년에는 시작 시 가슴으로 강하게 부딪히는 방식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시작의 엉성함도 다소 개선되었다.
2012년 1월 기세노사토는 토치노와카에 대해 "부드럽고 무겁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 상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토야마 고사쿠와의 경기에서 자주 나타났듯이, 한 팔 업어치기와 같은 변칙적인 기술에는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목표로 하는 스모 스타일과 스승인 가스가노 오야카타의 밀어붙이기 중심 기술 지도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점이 은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이대원은 가스가노 오야카타의 지도 방식에 끝내 익숙해지지 못했음을 밝혔고, 가스가노 오야카타 역시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고 싶은 대로 스모를 하게 해줬으면 좋았다고 말했다. 여러 의문, 고생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것을 깨달아주지 못한 내가 부족하다.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3.2. 주요 성적
* 통산 성적: 267승 244패 11휴 (승률 .521)
* 마쿠우치 성적: 106승 156패 8휴 (승률 .408)
* 현역 재위: 46 장소
* 마쿠우치 재위: 18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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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1월 (하쓰 바쇼) | 3월 (하루 바쇼) | 5월 (나쓰 바쇼) | 7월 (나고야 바쇼) | 9월 (아키 바쇼) | 11월 (규슈 바쇼) |
|---|---|---|---|---|---|---|
| 2007년 | (마에즈모) | 西조노쿠치 32 5–2 | 西조니단 94 7–0 P | 東산단메 80 6–1 | 東산단메 23 5–2 | 東마쿠시타 58 5–2 |
| 2008년 | 西마쿠시타 38 5–2 | 東마쿠시타 22 5–2 | 西마쿠시타 13 4–3 | 西마쿠시타 10 2–5 | 東마쿠시타 23 3–4 | 西마쿠시타 28 4–3 |
| 2009년 | 東마쿠시타 21 6–1 | 西마쿠시타 7 1–3–3 | 東마쿠시타 24 4–3 | 西마쿠시타 18 1–6 | 西마쿠시타 40 5–2 | 西마쿠시타 29 6–1 |
| 2010년 | 西마쿠시타 11 5–2 | 東마쿠시타 6 3–4 | 東마쿠시타 11 6–1 | 西마쿠시타 4 4–3 | 東주료 13 8–7 | 東주료 10 11–4 P |
| 2011년 | 西주료 2 12–3 P | 승부조작 문제 로 인해 중지 | 西마에가시라 11 7–8 | 西마에가시라 11 8–7 | 西마에가시라 7 9–6 | 東마에가시라 4 7–8 |
| 2012년 | 西마에가시라 4 8–7 | 西마에가시라 1 5–10 | 西마에가시라 4 2–13 | 東마에가시라 14 5–10 | 西주료 2 5–10 | 東주료 7 13–2 |
| 2013년 | 東마에가시라 15 8–7 | 東마에가시라 13 0–7–8 | 東주료 8 10–5 | 西주료 3 10–5 | 西마에가시라 11 9–6 | 西마에가시라 4 4–11 |
| 2014년 | 西마에가시라 8 9–6 | 西마에가시라 2 4–11 | 西마에가시라 10 9–6 | 東마에가시라 7 5–10 | 西마에가시라 9 4–11 | 東마에가시라 15 3–12 |
| 2015년 | 西주료 6 은퇴 | |||||
범례: 승-패-휴 / P=플레이오프 / 은퇴 / 취소/휴장 / 주료 / 마쿠시타 이하
반즈케 계급: 마쿠우치(요코즈나, 오제키, 세키와케, 고무스비, 마에가시라) - 주료 - 마쿠시타 - 산단메 - 조니단 - 조노쿠치
4. 은퇴
2014년 11월 규슈 바쇼(場所, 대회)에서 마에가시라 등급으로 3승 12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주료 강등 위기에 놓였다. 겨울 순회 훈련 이후, 스승이자 양아버지인 카스가노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 카스가노는 이를 만류하며 4시간 동안 설득했으나, 토치노와카의 결심은 확고했다. 결국 2014년 12월 15일 일본 스모 협회에 공식 은퇴계를 제출하며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발표가 반즈케(番付, 스모 서열표) 편성 이후에 이루어져, 2015년 1월 반즈케에는 그의 이름이 그대로 실렸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토치노와카는 약 2년 전부터 은퇴를 고민해왔으며 부모님과도 상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신체적 부상을 이유로 들지 않았으나,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실망스러운 씨름을 보여준 자신에 대해,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기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을 시사했다.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스모 스타일과 스승 카스가노의 밀어붙이기 중심 지도 방식 사이에 괴리가 있었음도 은퇴의 한 원인이었음을 내비쳤다. 카스가노 역시 은퇴 회견에서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고 싶은 대로 스모를 하게 해줬으면 좋았다고 말했다. 여러 의문, 고생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것을 깨달아주지 못한 내가 부족하다.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스가노는 토치노와카를 '협회의 재산이 될 훌륭한 인재'로 여기며 큰 기대를 걸었으나, 토치노와카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또한 은퇴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단파츠시키(断髪式, 은퇴식)는 2015년 1월 31일 도쿄 조스이 회관에서 열렸다.
4.1. 은퇴 후 활동
은퇴 후에는 건강 관리 장비 및 건강 식품을 취급하는 하쿠주 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에 입사하여, 현재 하쿠주 플라자 점장으로서 건강 지도 등을 하고 있다.
2015년 8월 22일, 도쿄 돔에서 열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대 오릭스 버팔로스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5. 가족 관계
그의 아버지는 재일 한국인이고 그의 어머니는 한국인 이민자이다.
6. 기타
* 입문 당시의 시코나(四股名)인 李일본어는 한 글자로, 스모 역사상 가장 짧은 시코나였다. 독특한 억양을 붙이기 어려워 요비다시(呼出, 경기 진행자)가 부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십량(十両) 승진이 거의 결정된 2010년 7월 대회 11일째, 동료 토치오야마가 받은 현상금으로 축하 기념 띠를 사달라고 요청했다.
* 시설상의 이유로 아오이야마와 같은 개인실을 사용했다.
*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2011년 10월 스승인 카스가노 오야카타의 제자 폭행 보도 후 계정을 삭제했다.
* 막내에서 두 번이나 이본세오이(一本背負い, 한팔 업어치기) 기술로 패배한 기록이 있다. 2011년 9월 대회 5일째에는 사가시에게, 2014년 1월 대회 12일째에는 사토야마에게 패했다.
* 栃乃若일본어라는 시코나는 부진했던 막하 시절, 스승 카스가노 오야카타가 '기분 전환이 되면 좋겠다'며 권유하여 지어졌다. 카스가노 오야카타의 현역 시절 시코나와 발음이 같아 본인은 '기뻤지만, 이름값을 못 할까 봐 걱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본인은 당면한 목표를 산야쿠(三役)라고 공언했지만, 카스가노 오야카타는 '오제키(大関), 요코즈나(横綱)를 노릴 수 있는 큰 인물이며 본인도 그럴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큰 기대를 보였다. 또한 "'토치노와카'는 통과점이며, 때가 되면 토치니시키의 묘소에라도 가서 손을 맞잡을 것"이라며 토치니시키라는 시코나 계승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카스가노 오야카타는 호토쿠 학원(報徳学園) 3학년 때 고교 요코즈나에 올랐던 토치노와카를 '협회의 재산이 될 훌륭한 인재'로 크게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토치노와카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