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수
1. 개요
이돈수는 고려 고종 때 활약한 무관으로, 덕수 이씨의 시조이다. 1177년에 태어나 1218년 신호위 중랑장을 지냈으며, 1240년에 별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동성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몽골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데 기여했다. 이돈수의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으며, 아들 이양준을 두었다.
-
충무공 이순신 -
이백록
이백록은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기묘사화의 영향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용인 고기리에서 은거했으며, 사후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이순신의 조부이자 이완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
고려 -
원나라의 일본 원정
원나라의 일본 원정은 13세기 후반 쿠빌라이 칸이 일본을 정복하려 두 차례 시도한 원정으로, 몽골, 고려, 중국 군대가 참여했으나 두 번 모두 태풍으로 인해 실패하고 일본 가마쿠라 막부의 쇠퇴를 가속화했다. -
고려 -
고려사
《고려사》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1451년까지 편찬된 총 139권의 기전체 역사서로, 고려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종과 김종서 등의 감독하에 완성되었으나,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고려의 무신 -
태조 (조선)
-
고려의 무신 -
완풍대군
완풍대군 이원계는 고려 말 무신이자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 사망 후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워 완산군에 봉해졌고 조선 개국 후 완산백에 추봉, 여러 사당에 배향되었다.
2. 생애
이돈수는 고려 고종 때 강동성 전투에서 신호위 중랑장으로 활약한 무반으로 덕수 이씨 시조(始祖)이다. 정확한 생몰년이나 관직 경력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218년(고종 5) 9월, 고려 삼군(三軍)의 원수 조충(趙冲)이 이끄는 군대가 거란족 유민을 물리치고 성주(成州: 평안남도 성천군)에 머물렀다. 이때 경상도 안찰사 이적(李勣)이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적을 만나 전진하지 못하자, 이돈수는 장군 김계봉(金季鳳)과 함께 적군을 격퇴하고 이적을 안전하게 조충의 고려군 본대에 합류시켰다. 이후 고려군은 거란족 유민을 크게 무찔러 강동성(江東城)에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216년 몽골의 침입에 쫒긴 대요수국(거란족)이 2차에 걸쳐 3년간 고려를 침입하였으나 이돈수, 김광세, 김취려, 조충 등의 훌륭한 고려 장수의 전공으로 이겨낼 수 있었으며, 1219년 강동성(江東城)에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격퇴하였다.
부인은 황려 이씨(黃驪李氏, 황려는 여주의 옛 이름)이며, 아버지는 교위(校尉) 이순진(李順珍)이다. 조부는 신호위(神虎衛) 산원(散員) 이규(李規), 증조부는 보윤(甫尹) 이점충(李占冲), 외조부는 광주(光州) 김성단(金成但)이다. 슬하에 아들 이양준을 두었다.
묘는 실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남북 분단으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1968년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설단, 1975년 아산시 득산동 청학산으로 이단하였으나, 장항선 터널 조성으로 2007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로 다시 이단하여 이양준, 이소와 함께 설단(設壇)하였다.
덕수 이씨 세계(世系)는 이이의 가전세계(家傳世系)에 따라 이돈수를 시조로, 이양준을 그의 아들로 확립되었다.
고려사, 동국통감, 익재난고, 동사강목에 간단히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출생과 사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 고려의 대외 여건을 고려하였을 때 크고 작은 많은 전투들이 계속되었고 근접전이 주를 이루었던 시기라 전투 중 부상으로 관직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3. 강동성 전투 활약상
1216년 (고종 3) 8월부터 1219년 (고종 6) 정월까지 거란유종(契丹遺種: 패망한 大遼收國의 거란족 유민) 김산(金山)과 김시(金始)가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략하였다. 1218년 (고종 5) 9월 고려 삼군(三軍)의 원수 조충이 이끄는 군대가 거란유종을 물리치고 성주(成州: 평안남도 성천군)에 머물며 남쪽에서 올라오는 여러 도(道)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상도 안찰사 이적이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적을 만나 전진하지 못하자 장군 이돈수와 김계봉을 파견하여 이들 적군을 치고 이적을 맞이하려 했으나, 적군은 이미 두 길로 나누어서 우리 중군을 공격해왔다. 이에 아군이 좌우익진으로 펴서 북을 울리며 전진하니 적군은 무너져 도망했으므로 이돈수 등은 이적 휘하의 부대를 안전하게 조충의 고려군 본대에 합류시켰다. 이후 고려군은 거란유종을 크게 무찔러 강동성에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216년 몽골의 침입에 쫒긴 대요수국(거란족)이 2차에 걸쳐 3년간 고려를 침입하였으나 이돈수, 김광세, 김취려, 조충 등의 훌륭한 고려 장수의 전공으로 이겨낼 수 있었으며, 1219년 강동성에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격퇴하였다.
4. 평가 및 의의
이돈수는 고려 고종 때 강동성 전투에서 신호위 중랑장으로 활약한 무반으로 덕수 이씨 시조이다. 1216년 몽골의 침입에 쫒긴 대요수국(거란족)이 2차에 걸쳐 3년간 고려를 침입하였으나 이돈수, 김광세, 김취려, 조충 등의 훌륭한 고려 장수의 전공으로 이겨낼 수 있었으며, 1219년 강동성에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격퇴되었다.
고려사, 동국통감, 익재난고, 동사강목에 간단히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는 덕수 이씨 시조 중랑장공 이돈수 장군의 정확한 출생과 사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 고려의 대외 여건을 고려하였을 때 크고 작은 많은 전투들이 계속되었고 근접전이 주를 이루었던 시기라 전투 중 부상으로 관직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5. 가계
李敦守중국어(추정 1177년 ~ 1240년)는 고려의 무신으로 황려이씨(黃驪李氏)이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이순진(李順珍)이며, 외조부는 광주(光州) 김성단(金成但)이다. 슬하에 아들 이양준(李陽俊)을 두었다.
| 관계 | 이름 | 비고 |
|---|---|---|
| 본인 | 이돈수(李敦守) | 신호위 중랑장 |
| 부인 | 황려이씨(黃驪李氏) | 교위 이순진의 딸, 외조부 광주 김성단 |
| 장남 | 이양준(李陽俊) | 신호군 중랑장, 흥위위 보승장군 증 은청광록대부, 동지추밀원사 어사대부 이부상서 상장군 |
| 자부 | 안동권씨(安東權氏) | 중랑장 권극평(權克平)의 딸 |
| 손자 | 이소(李劭) | 통의대부 전법판서 지삼사사겸 세자내직랑 증 금자광록대부 지문하성사 상장군 판예부사(종1품) |
| 증손 | 이윤운(李允蒀) | 통헌대부 민부전서, 봉익대부 밀직사 판도판서 상장군 증 선충경절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수 첨의정승 감춘추관사 상호군 판전리시사 덕수부원군(德水府院君) |
| 증손 | 이윤번(李允蕃) | 순유진사, 도사 증 자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
6. 덕수 이씨 시조 관련 기록
이돈수는 고려 고종 때 강동성 전투에서 신호위 중랑장으로 활약한 무반으로 덕수 이씨 시조(始祖)이다.
고려사 조충전(趙沖傳)에 따르면, 1216년(고종 3) 8월부터 1219년(고종 6) 정월까지 거란유종(契丹遺種: 패망한 大遼收國의 거란족 유민) 김산(金山)과 김시(金始)가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략하였다. 1218년(고종 5) 9월 고려 삼군(三軍)의 원수 조충(趙冲)이 이끄는 군대가 거란유종을 물리치고 성주(成州: 평안남도 성천군)에 머물며 남쪽에서 올라오는 여러 도(道)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상도 안찰사 이적(李勣)이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적을 만나 전진하지 못하자 장군 이돈수와 김계봉(金季鳳)을 파견하여 이들 적군을 치고 이적(李勣)을 맞이하려 했으나, 적군은 이미 두 길로 나누어서 우리 중군을 공격해왔다. 이에 아군이 좌 우익진으로 펴서 북을 울리며 전진하니 적군은 무너져 도망 했으므로 이돈수 등은 이적(李勣)휘하의 부대를 안전하게 조충의 고려군 본대에 합류시켰다. 이후 고려군은 거란유종을 크게 무찔러 강동성(江東城)에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216년 몽골의 침입에 쫒긴 대요수국(거란족)이 2차에 걸쳐 3년간 고려를 침입하였으나 이돈수, 김광세, 김취려, 조충 등의 훌륭한 고려 장수의 전공으로 이겨낼 수 있었으며, 1219년 강동성(江東城)에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격퇴하였다.
이이의 가전세계(家傳世系)에는 이돈수를 시조로 하고 그의 아들을 이양준이라 하였다. 그 후 이식이 두 분의 세계를 토대로 하여 이돈수를 시조로 하는 덕수 이씨 세계(世系)를 창시(創始)하였다.
고려사, 동국통감, 익재난고, 동사강목에 간단히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는 덕수 이씨 시조 중랑장공 이돈수 장군의 정확한 출생과 사망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