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섬 (후한)
1. 개요
이섬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195년 이각과 곽사의 내전에서 헌제를 이각의 진영으로 호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각의 명을 받아 헌제를 장안 궁궐에서 수레에 태워 이각의 진영으로 옮겼으며, 이 과정에서 양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에게 보호받는 헌제를 공격하다가 허저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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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후한 말의 인물로, 양주북지군 니양현(현재의 감숙성경양시녕현) 출신이다. 생몰년과 자(字)는 알려져 있지 않다.
숙부인 이각을 섬겼으며, 형제로 이리가 있었고, 종제로는 이각의 아들 이식과 고모의 아들 호봉, 종숙부로는 이각의 종제 이응이 있었다.
195년(흥평 2년) 4월, 이각과 곽사가 수도 장안에서 내전을 벌였을 때, 이각은 곽사가 헌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이각은 선수를 쳐 이섬에게 군사를 주어 헌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모셔오도록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태위 양표 등이 반대했지만, 이섬은 이를 무시하고 헌제를 이각의 진영으로 호송했다. (자세한 내용은 헌제 옹립 문단 참고)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이섬은 역사 기록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아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2.1. 헌제 옹립
195년(흥평 2년), 이각과 곽사는 수도 장안에서 권력 다툼으로 내전을 벌였다. 이때 곽사가 헌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정보가 이각에게 전해졌다. 이각은 선수를 치기 위해 조카인 이섬에게 수천 명의 군사를 주어 궁궐로 가서 헌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모셔오도록 명령했다.
태위 양표는 "예로부터 제왕이 신하의 집에 머무른 적은 없었다! 큰일을 도모한다면 천하의 민심을 따라야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라며 이섬의 행동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이섬은 이를 무시했다. 이섬은 수레 3채를 준비하여 각각 헌제, 귀인 복씨, 그리고 가후와 좌령을 태우고 이각의 진영으로 강제로 호송했다. 다른 신하들은 걸어서 그 뒤를 따라야 했다.
이 사건 이후 이섬의 구체적인 행적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