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백
1. 개요
이세백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5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5년 증광 문과에 급제했다. 정언, 지평, 부수찬, 암행어사 등을 거쳐 승지,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수어사, 광주유수 등을 역임했다. 공조판서, 우참찬, 예조판서, 좌참찬, 호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갑술환국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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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이씨 -
이한빈 (1926년)
대한민국의 관료, 교육자, 학자 이한빈은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하버드 MBA를 취득하고 재무부 예산국장, 차관, 주스위스 대사, 숭전대학교 총장, 아주공과대학 학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하며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으로 활동했고, 「행정학원론」, 「사회변동과 행정」 등의 저서를 남겼다. -
용인 이씨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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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년 출생 -
윤지완
윤지완은 조선시대 외교관으로 1682년 숙종의 명령을 받아 일본에 파견되어 조선과 일본 간 무역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양국 관계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이조판서 윤강의 아들이다. -
1635년 출생 -
헨리 모건
헨리 모건은 17세기 카리브해에서 스페인 제국을 공격하며 명성을 얻은 웨일스 출신의 사략선 선장이자 해적이며, 후에 자메이카의 부총독을 역임했고, 그의 이름은 럼주 브랜드 '캡틴 모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1703년 사망 -
박세당
박세당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소론 계열에서 활동하며 주자학 비판과 독자적인 학문적 견해를 제시했고, 농업 기술 서적 《색경》을 저술했으며 사후 문정 시호를 받았다. -
1703년 사망 -
명빈 박씨
숙종의 후궁 명빈 박씨는 궁녀 출신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아 연령군 훤을 낳고 빈에 책봉되었으며, 사후 숙종의 특별한 배려로 장례가 치러지고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경내에 묘소가 있다.
2. 가문과 출생
3. 생애
이세백은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1년 정언을 시작으로 지평, 부수찬을 거쳐 검토관, 부교리, 시독관,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암행어사로 민정을 살폈으며, 이조좌랑, 집의, 응교를 거쳐 승지,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수어사, 광주유수를 거쳐 도승지, 지의금부사, 공조판서,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동지경연사로 있다가 예조판서, 좌참찬, 대사헌, 호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거쳤고, 갑술환국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그는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3.1. 관직 진출 이전
3.2. 관직 생활
이세백은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1년 정언이 된 후 지평, 부수찬을 거쳐 검토관, 부교리, 시독관, 교리 등을 역임했다. 암행어사로 나가 민정을 살폈으며, 이조좌랑, 집의, 응교를 거쳤다. 이후 승지,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수어사, 광주유수 등을 역임했다. 공조판서, 우참찬, 예조판서, 좌참찬, 호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갑술환국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3.3. 갑술환국과 노론
이세백은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1년 정언이 된 것을 시작으로, 지평, 부수찬, 검토관, 부교리, 시독관, 교리 등을 역임했다. 암행어사로 민정을 살핀 후 이조좌랑, 집의, 응교를 거쳤다. 이후 승지,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수어사, 광주유수 등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
공조판서, 우참찬, 동지경연사를 거쳐 예조판서, 좌참찬, 대사헌, 호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갑술환국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노론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