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세노미코토
1. 개요
이쓰세노미코토는 야마사치히코의 손자, 우가야후키아에즈의 아들이자 진무 천황의 형제이다. 그는 진무 천황의 동정에 종군했으나, 나니와노쿠니에서 나가스네히코와의 전투 중 부상을 입고 기노쿠니에서 사망했다. 현재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 있는 가마야마노하카가 그의 능묘로 지정되어 있다.
2. 가계
이쓰세노미코토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으로, 니니기노미코토의 손자이자 우가야후키아에즈의 아들이다. 야마사치히코(호오리노미코토)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아마쓰히타카히코나기사타케 우가야 후키아에즈노미코토(天津日高日子波限建鵜草葺不合命), 어머니는 다마요리히메(玉依毘売命)이다. 동생으로는 이나히노미코토, 미케리노미코토, 진무 천황이 있다.
2.1. 가계도
| 여성 | 그룹 | 굵은 글자는 휴가 3대 |
3. 생애 및 기록
일본서기, 고사기에 따르면,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와 해신의 딸인 타마요리히메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동생으로는 이나이노미코토, 미케이니리노미코토,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노미코토(진무 천황)가 있다.
히코이세노미코토는 동생들과 함께 동정에 종군했지만, 나니와노쿠니의 시라카타노츠(혹은 쿠사노사카)에서 나가스네히코와의 교전 중에 나가스네히코가 쏜 화살에 맞았다. 히코이세노미코토는 "우리는 해의 신의 아들이므로, 해를 향해(동쪽으로)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돌아서서 해를 등지고(서쪽으로) 싸우자"고 조언했고, 일행은 남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기노쿠니의 오노미나토에서 히코이세노미코토가 입은 상처가 악화되었다. 이때 히코이세노미코토는 "적에게 상처를 입고 죽다니"라고 외쳤고, 그 땅은 "오노미나토(雄水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일본서기에 따르면 기노쿠니 가마야마에서 죽었고, 가마야마에 무덤이 세워졌다고 한다. 다만 고사기에서는 기노쿠니 오노미나토에서 죽었다고 한다.
4. 묘
궁내청은 와카야마현와카야마시 와다에 있는 가마야마노하카를 이쓰세노미코토의 능묘로 지정했다. 궁내청상의 형식은 원분이다.
히코이고세노미코토의 묘에 관해서는 일본서기에 가마야마에 묘가 축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엔초 5년(927년)에 성립된 엔기시키 쇼료료(쇼료시키)에는 '가마야마노하카'라는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기이국나구사군에 위치하며, 묘역은 동서 1정·남북 2정으로 수호호 3연을 붙인다고 하였다. 지토 천황 5년(691년)에는 유공한 왕의 묘에는 3호의 수위호를 설치한다는 조칙이 내려졌는데, 이는 일본서기·고사기 편찬과 함께 묘 지정 움직임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5. 관련 신사
가마야마 신사(시키나이샤): 히코이고세노미코토의 가마야마노하카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이쓰세노미코토의 신령을 모신다.
아니 신사(시키나이샤):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히가시구에 위치하며, 진무 천황의 형으로서 이나히노미코토, 미케누마노미코토와 함께 모셔져 있다.
6. 평가 및 고증
이쓰세노미코토의 이름인 "五(이츠)"는 '엄숙함', '재계'를, "瀬(세)"는 '신성한 벼'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지키덴에서는 곡물이나 식량의 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이쓰세노미코토를 비롯한 초기 천황들의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신화적 기록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7. 유산 (Legacy)
쓰시마섬에 금을 정제하기 위해 파견된 이쓰세노미코토와 동명이인의 남자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