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키 히데타카
1. 개요
이와키 히데타카는 가메다 번의 4대 번주이다. 1673년 이와키 시게타카의 손자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가케타카가 폐적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1704년 조부의 은거로 번주가 되었으며, 1715년 슨푸 가반에 임명되었다. 1718년 사망했으며, 두 아들이 요절하여 센다이 번의 다테 무라오키의 아들인 이와키 타카아키를 양자로 들였다.
| 씨명 | 이와키 씨 |
|---|---|
| 이름 | 이와키 히데타카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 출생 | 엔포 원년 (1673년 11월)『가메다 이와키 가보』『아키타현사 [통사편] 제7권 (연표 색인편)』(아키타현, 1966년) 부록 각 번 역대 번주 계보 p.5 |
| 사망 | 교호 3년 10월 25일 (1718년 11월 17일)『간세이 중수 제가보』 |
| 통칭 | 채녀 |
| 시호 | 없음 |
| 계명 | 조신인 지관도광 |
| 묘소 | 아키타현 유리혼조시 이와키 (구 유리군 이와키정)의 용문사 |
| 관위 | 종5위하・이요수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쓰나요시→이에노부→이에쓰구→요시무네 |
| 번 | 데와가메다번 번주 |
| 부모 | 아버지: 이와키 가게타카, 어머니: 오가사와라 나가쓰구 딸 |
| 형제 | 없음 |
| 배우자 | 정실: 마쓰다이라 다다미쓰 딸 (후 이혼) 계실: 요우쇼인 (나이토 다다마사 딸) |
| 자녀 | 센지로, 에이지로, 여자 |
| 양자 | 다카쓰구 (다테 무라오키 아들) |
| 특기 사항 | 슨푸 가반 |
| 전임자 | 이와키 시게타카 |
|---|---|
| 후임자 | 이와키 다카쓰구 |
| 직책 | 가메다번 번주 |
| 대수 | 4 |
| 임기 | 1704년 ~ 1718년 |
-
1675년 출생 -
히가시야마 천황
히가시야마 천황은 레이겐 천황의 아들로 1687년부터 1709년까지 재위하며 겐로쿠 문화의 전성기와 조정과 막부의 원만한 관계, 황실 재정 안정 등 안정적인 시기를 보낸 후 천연두로 사망했다. -
1675년 출생 -
루이 드 루브루아 드 생시몽 공작
루이 드 루브루아 드 생시몽 공작은 프랑스의 귀족이자 작가로, 루이 14세 치세와 섭정 시대의 궁정 생활을 기록한 《회고록》을 통해 당대 사회와 인물들을 묘사했으며, 프랑스 문학에 기여했다. -
1718년 사망 -
윤지완
윤지완은 조선시대 외교관으로 1682년 숙종의 명령을 받아 일본에 파견되어 조선과 일본 간 무역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양국 관계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이조판서 윤강의 아들이다. -
1718년 사망 -
도쿠가와 쓰나에다
도쿠가와 쓰나에다는 에도 시대 미토 번의 3대 번주로, 선대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의 양자였으나, 재정난 속에서 개혁을 추진하다 농민 반발로 실패했고, 노가쿠에 심취했으며 쇼군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
이와키씨 -
이와키 노부타카
이와키 노부타카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사타케 가문에서 쿠보타 번의 중신으로 활약하다 카메다 번주가 되었고 번정의 기초를 다진 후 은거했다. -
이와키씨 -
이와키 다카쓰구
이와키 다카쓰구는 에도 시대 데와 가메다 번의 5대 번주로, 학문에 힘써 주자학을 배우고 국학, 와카, 서도에도 능통하여 가메다 번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2. 생애
엔포 원년(1673년), 3대 번주 이와키 시게타카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가케타카는 시게타카와 대립하여 폐적되었기 때문에, 히데타카가 가독을 잇게 되었다. 덴나 3년(1683년) 도쿠가와 츠나요시에게 오메미에했다.
호에이 원년(1704년) 조부 시게타카의 은거에 따라 가독을 이어 4대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6년(1709년) 4월 15일, 종5위하, 이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쇼토쿠 5년(1715년) 8월 28일, 슨푸 가반에 임명되었다. 슨푸 가반은 에도 막부의 요직 중 하나로, 슨푸 성의 수비를 담당했는데, 이는 히데타카가 막부의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교호 3년(1718년) 10월 25일, 히데타카는 가메다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들 둘이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센다이 번 다테 씨 출신인 다테 무라오키의 아들 다카아키를 말기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게 했다. 히데타카는 본래 이와키 씨 17대 당주 쓰네타카의 자손(이와야도 다테 가문)인 다테 무라타카를 양자로 삼고 싶어했다. 그러나 무라타카의 본가인 센다이 번 다테 가문과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키타 번의 사타케 씨와도 양자 협상을 벌였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다시 다테 가문과 협상하여, 센다이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동생 무라오키의 아들 다카아키를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했고, 히데타카가 사망하면서 다카아키가 말기 양자로 인정받았다.
2.1. 가독 상속
엔포 원년(1673년), 3대 번주 이와키 시게타카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가케타카는 시게타카와 대립하여 폐적되었기 때문에, 히데타카가 가독을 잇게 되었다. 덴나 3년(1683년) 도쿠가와 츠나요시에게 오메미에했다. 호에이 원년(1704년) 조부 시게타카의 은거에 따라 가독을 이어 4대 번주가 되었다.
2.2. 번주 시절
호에이 원년(1704년) 2월 10일, 조부 이와키 시게타카의 은거에 따라 가독을 이어 4대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6년(1709년) 4월 15일, 종5위하, 이요노카미에 서임되었다. 쇼토쿠 5년(1715년) 8월 28일, 슨푸 가반에 임명되었다. 슨푸 가반은 에도 막부의 요직 중 하나로, 슨푸 성의 수비를 담당했는데, 이는 히데타카가 막부의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2.3. 후계 문제와 사망
교호 3년(1718년) 10월 25일, 히데타카는 가메다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들 둘이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센다이 번 다테 씨 출신인 다테 무라오키의 아들 다카아키를 말기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게 했다.
히데타카는 본래 이와키 씨 17대 당주 쓰네타카의 자손(이와야도 다테 가문)인 다테 무라타카를 양자로 삼고 싶어했다. 그러나 무라타카의 본가인 센다이 번 다테 가문과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키타 번의 사타케 씨와도 양자 협상을 벌였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다시 다테 가문과 협상하여, 센다이 번주 다테 요시무라의 동생 무라오키의 아들 다카아키를 양자로 들이는 데 성공했고, 히데타카가 사망하면서 다카아키가 말기 양자로 인정받았다.
3. 계보
* 친부: 이와키 카게타카
* 친모: 오가사와라 나가쓰구의 딸
* 양부: 이와키 시게타카
* 정실: 마쓰다이라 타다미쓰의 딸
* 계실: 레이쇼인 하쿠호 칸게츠 (나이토 타다마사의 딸)
* 양자: 이와키 타카아키라 (다테 무라오키의 아들)
3.1. 가족 관계
3.3. 양자
이와키 시게타카를 양부로 맞이했다. 다테 무라오키의 아들 이와키 다카아키를 다테 가문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양자로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