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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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용범은 1907년에 태어나 1967년까지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23년부터 20년 동안 일본 규슈에서 탄광 인부로 일한 후, 광산업에 종사했다. 8.15 광복 후 대동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건축, 물류 등 다양한 사업을 했으며, 주한미군 부대 건설을 담당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었으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3.15 부정선거 가담으로 공민권이 제한되고, 부정축재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3년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중도 사퇴했다.

이용범 (1907년)
기본 정보
이름이용범
출생일1907년 10월 30일
출생지대한제국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석산리
사망일1968년 7월 4일
직업교육인
기업인
정치인
국적대한민국
성별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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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07년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태어났으며, 아명은 이범이(李範伊)였다. 1936년에 개명했다.

2.1. 기업인 시절 (1923년 ~ 1954년)

1923년 일본 규슈로 건너가 20년 동안 탄광 인부로 생활한 후, 강원도에서 광산업에 종사했다. 8.15 광복 후 대동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건축, 물류, 제재, 철공, 토목 등의 사업을 했다. 부산에 대동공업주식회사 출장소를 두고, 부산시내나 근교에 주둔하는 주한미군 부대의 건설을 담당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6.25 전쟁 때 장비를 사 모았고, 전후에 전국의 재해 복구 시설의 절반을 담당했다.

2.2. 정치인 시절 (1954년 ~ 1967년)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봉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경상남도당 부위원장 및 위원장, 대동육영회 이사장, 자유당 중앙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하지만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봉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축재 혐의로 기소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 진해시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중도 사퇴했다.

2.3. 정치적 시련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봉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경상남도당 부위원장 및 위원장, 대동육영회 이사장, 자유당 중앙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하지만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봉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고, 부정축재 혐의로 기소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진해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중도 사퇴했다.

3.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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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4년총선자유당25,626표61.291위당선초선
1958년총선자유당25,561표67.861위당선재선
1960년총선무소속5,067표15.284위낙선
1967년총선자유당---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