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1870년)
1. 개요
이재현은 조선 후기의 종친으로, 1870년 경기도 계양에서 출생했다. 완평군 이승응의 아들이자 종정원경 이낙응의 양자로, 1891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승정원 동부승지 등을 거쳤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궁내부 특진관, 경상남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으며, 의정부 찬정을 지냈다. 한일 병합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계동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재단이사장을 역임하며 사회사업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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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망 -
현영운
현영운은 조선 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관료이자 군인으로, 일본 유학 후 개화파 관료로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배정자의 남편이었다. -
20세기 사망 -
유기환
유기환은 대한제국 시기 관료로, 신사유람단 수행, 궁내부 대신 서리, 법부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고종의 황제 즉위 상소를 올렸으나 거절당하고 김홍륙 독살 모의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헌의 6조에 반대하여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조선 후기의 종친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이다. 생부는 장조의 서자였던 은전군의 손자 완평군 이승응이며, 선조의 9남 경창군의 후손인 종정원경(宗正院卿) 이낙응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1870년 경기도 계양에서 태어나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1888년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1891년 문과 응제시와 1892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궁내부 특진관, 시강원 첨사, 경상남도 관찰사, 의정부 찬정 등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사회사업에 힘썼으며, 특히 계동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재단이사장을 맡는 등 교육 분야에 기여하였다. 말년에는 경성부 계동에 거주하다 별세하였다.
2.1. 가계 배경
조선 후기의 종친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이름은 재현(載現)이다. 생부는 장조의 서자였던 은전군의 손자 완평군 이승응(完平君 李昇應)이다. 선조의 9남 경창군의 후손이자 생가의 숙부(淑父)였던 종정원경(宗正院卿) 이낙응(李洛應)의 양자가 되었다.
1870년(고종 7년) 경기도 계양의 사저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한때 경기도 부평에서 잠시 지내다가 한성부의 사저에서 성장하였다.
2.2. 관직 생활
1888년 음서로 천거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3년 뒤인 1891년(고종 29년) 유학(幼學) 신분으로 문과 응제시 경과(文科 應製試 慶科)에 합격하고 곧바로 전시(殿試)에 나아갔다. 이듬해 1892년에는 문과별시(文科別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같은 해 5월 27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임명되었다. 정언을 거쳐 1893년(고종 30년) 2월 25일 다시 홍문관 교리가 되어 옥당(玉堂)의 연차(筵次)에 참여했을 때, 동학(東學) 세력의 지도자를 섬멸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1894년(고종 31년) 7월 12일에는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임명되었고, 1895년(고종 32년) 10월 15일에는 종척 집사(宗戚執事)를 맡았다. 1896년(건양 1년) 3월 1일에는 혼전(魂殿)의 향관(享官)으로, 1897년(광무 1년)에는 사직(社稷) 신위 서사관(神位書寫官)으로 임명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의 주요 관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주요 관직 | 비고 |
|---|---|---|
| 1898년 | 사직서 제조 | 칙임관 4등 |
| 1898년 | 경모궁 제조 | |
| 1898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4등 |
| 1898년 | 시강원 첨사 | 칙임관 4등 |
| 1899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4등 |
| 1899년 | 시강원 첨사 | 칙임관 4등 |
| 1900년 | 순천군수 | |
| 1900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4등 |
| 1901년 | 상주군수 | |
| 1901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4등 |
| 1901년 | 경상남도 관찰사 | |
| 1902년 | 경상남도 지계감독 | |
| 1903년 | 궁내부 특진관 | |
| 1904년 | 종척집사 | |
| 1904년 | 혼전 제사관 | |
| 1904년 | 비서원경 | |
| 1904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3등 |
| 1904년 | 동지돈령원사 | |
| 1904년 | 비서원경 | 칙임관 3등 |
| 1904년 | 시강원 첨사 | 겸임 |
| 1904년 | 의정부 찬정 | |
| 1905년 | 비서원경 | 칙임관 2등 |
| 1905년 | 시강원 첨사 | |
| 1905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1등 |
| 1905년 | 예식원 장례경 | 칙임관 2등, 시강원 첨사 겸임 |
| 1906년 | 궁내부 특진관 | 칙임관 2등 |
의정부 찬정(贊政)을 지낸 후, 한일 합방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사회사업에 힘쓰다가 별세했다. 말년에는 경성부 북부 계동에 거주하며 계동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재단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2.3. 대한제국 시기 활동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광무 1) 이후 이재현은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며 활동했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날짜 | 주요 경력 | 비고 |
|---|---|---|---|
| 1897년 | - | 사직 신위 서사관(社稷神位書寫官) 임명 | |
| 1898년 | 1월 16일 | 사직서 제조(社稷署提調) 임용 | 칙임관(勅任官) 4등 |
| 1월 24일 | 경모궁 제조(景慕宮提調) 역임 | ||
| 12월 6일 |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 임용 | 칙임관 4등 | |
| 12월 21일 | 시강원 첨사(侍講院詹事) 임용 | 칙임관 4등 | |
| 1899년 | 4월 17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4등 |
| 5월 24일 | 시강원 첨사 임용 | 칙임관 4등 | |
| 1900년 | - | 순천군수(順天郡守) 역임 | |
| 10월 20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4등 | |
| 1901년 | - | 상주군수(尙州郡守) 역임 | |
| 10월 14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4등 | |
| 10월 20일 | 경상남도 관찰사(慶尙南道觀察使) 역임 | ||
| 1902년 | 12월 18일 | 경상남도 지계 감독(地契監督) 역임 | |
| 1903년 | 8월 21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
| 1904년 | 1월 2일 | 종척 집사(宗戚執事) 임명 | |
| 4월 26일 | 혼전(魂殿) 제사관(祭祀官) 역임 | ||
| 5월 22일 | 비서원경(祕書院卿) 임명 | ||
| 10월 21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3등 | |
| 10월 22일 | 동지돈령원사(同知敦寧院事) 임명 | ||
| 11월 3일 | 비서원경 임용 | 칙임관 3등 | |
| 11월 5일 | 종척 집사(宗戚執事) 임명 | ||
| 12월 20일 | 시강원 첨사 겸임 | ||
| 12월 30일 | 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임명 | ||
| 1905년 | 1월 5일 | 비서원경 임용 | 칙임관 2등 |
| 1월 12일 | 시강원 첨사 역임 | ||
| 1월 15일 | 비서원경 제수 | ||
| 2월 11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1등 | |
| 2월 18일 | 시강원 첨사 임용 | 칙임관 2등 | |
| 3월 26일 | 예식원 장례경(禮式院掌禮卿) 임용, 시강원 첨사 겸임 | 칙임관 2등 | |
| 5월 1일 | 시강원 첨사 임용 | 칙임관 2등 | |
| 1906년 | 2월 8일 | 궁내부 특진관 임용 | 칙임관 2등 |
이후 의정부 찬정(贊政)을 지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사회사업에 힘썼다. 말년에는 경성부 북부 계동에 거주하며 계동사립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재단이사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