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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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간은 전의 이씨 시조 이도의 10대손으로,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사헌부 집의, 강화부사, 중추원사를 역임했으며, 효행으로 칭송받아 세종으로부터 궤장과 함께 '家傳忠孝 世守仁敬'이라는 어필을 하사받았다. 우정승 유관과 재상 조말생이 그의 효행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으며, 공주목사 재직 시 고려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을 세웠다. 그는 은행나무에 얽힌 일화로도 유명하며, 그가 심은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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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전의 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10대손으로, 아버지 이구직(李丘直)의 음덕으로 벼슬에 올랐다. 사헌부집의를 거쳐 1405년(태종 5년) 강화부사가 되었다. 관직은 중추원사에 이르렀다. 목장에 뛰어든 호랑이를 인마의 살상없이 포획하여 비단을 하사받았고,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고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사임하였다.

70세의 나이에도 90세 노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여, 세종은 그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여덟 글자를 하사하고, 자헌대부 중추원사로 특서하였다. 또한 궤장(안석과 지팡이)과 풍악, 효행 잔치 상을 하사하였다. 당시 명문가들은 이정간의 효행을 칭송하며 『경수집(慶壽集)』을 펴냈다.

2.1. 효행

이정간은 성품이 온화하여 집안이 공손하기로 소문났다. 70세의 나이에도 90세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며,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등 지극한 효를 실천했다. 세종대왕은 이정간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여덟 글자를 하사하고, 자헌대부 중추원사로 특서하였다. 또한 궤장(안석과 지팡이)과 풍악, 효행 잔치 상을 하사하여 축하 잔치를 베풀도록 하였다.

당시 명문가들은 이정간의 효행을 칭송하며 『경수집(慶壽集)』을 펴냈다.

2.2. 세종이 내린 교서

세종은 이정간의 효행을 칭송하며 벼슬을 올리고 궤장(안석과 지팡이)을 내려 가상히 여기는 뜻을 밝혔다. 이는 국가의 아름다운 제도이며, 절의를 숭상하고 풍속을 다듬는 도리라고 강조했다.

세종은 이정간에게 내린 교서에서, 나이 많은 이를 받들고 덕 있는 이를 포상하는 것은 국가의 아름다운 제도라고 언급했다. 당나라 최단과 송나라 서적의 예를 들며, 이정간의 효행이 절의를 숭상하고 풍속을 다듬는 도리라고 하였다.

또한, 이정간이 여러 왕조에 봉사한 나이와 덕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여 온 세상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칭찬했다. 이정간의 나이가 70이 넘었고, 모친 또한 90세를 넘었음에도 모자가 모두 즐겁고 유쾌하며 가정이 화목한 모습을 옛 효자 노래자와 양파에 비유하며 사족들이 우러러보는 바라고 하였다.

세종은 이러한 이정간의 미덕에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벼슬을 올리고 궤장을 내려 가상히 여기는 뜻을 보였다. 이정간에게 몸을 편안히 하고 화기를 기르며, 아름다운 명성을 떨쳐 세종 자신의 효행 숭상과 민속 교화의 뜻에 부응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교서를 내렸다.

2.3. 우정승 유관과 재상 조말생의 찬사

우정승 유관은 이정간의 효성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재상 조말생은 그 첫머리에 서(序)를 썼다. 이정간의 효성은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임금은 특별히 교서를 내려 칭찬하고 궤장(안석과 지팡이)을 하사하였다. 또한 헌수하는 날에 풍악을 내려주고, 내관을 보내 궁궐의 술을 하사하니, 실로 천재(千載)에 드문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이정간의 나이는 73세이고, 어머니의 연세는 90여 세였다.

傳家積德久彌存중국어
穠李敷陰滿一門중국어
鶴髮在堂膺壽考중국어
厖眉視膳奉晨昏중국어
年踰舜慕心愈篤중국어
日展萊嬉色更溫중국어
飮湩肯須煩孝婦중국어
含飴常自弄曾孫중국어
寒魚定向氷間躍중국어
美筍應從雪裏蕃중국어
名徹九重宸意動중국어
班升兩省慶聲喧중국어
絲綸密勿垂優典중국어
几杖聯翩表達尊중국어
香擁宮壺融聖澤중국어
風飄仙樂暢天恩중국어
中官狎坐榮光爛중국어
國老參筵勝事繁중국어
多少史臣方刮目중국어
千秋特筆照乾坤중국어

2.4. 이정간에 관한 일화

이정간은 귀향 후 어느 봄날 다섯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 종산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날 밤, 이정간은 꿈에서 목령산 신령인 백발노인을 만났다. 목령산 신령은 이정간이 심은 은행나무 덕분에 거처할 곳이 생겼다며 고마워했다. 또한 이정간의 애국심을 알고 있다며 앞으로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꿈에서 깬 이정간은 은행나무에 금줄을 치고 제를 올리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는 아들과 손자들에게도 은행나무를 잘 보살피고, 나무의 가르침을 새겨 나라의 앞일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이정간이 1439년(세종 21년)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손들은 은행나무를 정성껏 가꾸었다. 목령산 신령의 약속대로 임진왜란(1592년, 선조 25년), 병자호란, 동학 농민 운동, 국권피탈, 8.15 광복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은행나무가 울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정월 초에는 사흘 동안 "따르륵 따르륵"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3. 치적

1400년(정종 2) 공주목사 재직 시절 삼은각을 세웠다. 삼은각은 1394년(태조 3)에 길재동학사에서 제사를 지낸 후 절 옆에 단을 쌓고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낸 곳이다. 그 후 1399년(정종 1)에는 유방택이 정몽주이색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올렸다. 길재 사후 후학들이 정몽주(호는 포은), 이색(호는 목은), 길재(호는 야은) 세 사람을 추배하며 이들의 호를 따 ‘삼은각’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