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1. 개요
이종인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시기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하다 전사했다. 1556년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한 후 북방 수비에 공을 세웠으며, 임진왜란 발발 후 김성일 휘하에서 활동했다.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을 보였으나, 왜군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사후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 | 1942년 |
|---|---|
| 사망 | 2015년 7월 23일 (향년 73세) |
| 직업 | 잠수 기술자 |
| 활동 분야 | 해난 구조, 수중 촬영 |
| 주요 경력 | 88올림픽 해군 해난구조대 수중촬영 아시아게임 해난구조대 수중촬영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구조 작업 참여 씨프린스호 침몰 사고 방제 작업 참여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구조 작업 참여 천안함 침몰 사건 구조 작업 참여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 작업 참여 |
|---|---|
| 기업 | 알파잠수기술공사 |
| 직책 | 대표이사 |
| 논란 및 비판 내용 |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다이빙벨 투입 관련 논란 |
|---|
-
개성 이씨 -
이명기 (화가)
이명기는 조선 후기 초상화가로, 인물의 개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뛰어난 묘사력으로 초상화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윤봉구 초상》, 《심낙수 초상》, 《허목 초상》 등의 대표작이 있다. -
개성 이씨 -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은 조선 초 문신 이등과 의령옹주 부부의 묘역으로, 서울 도봉구에 있으며 조선 왕실 묘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뛰어난 석물 조각과 보존 상태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
화기에 죽은 사람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화기에 죽은 사람 -
이기붕
이기붕은 이승만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나,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몰락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이종인은 1556년(명종 11년) 나주 남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개성이다. 성격이 굳세고 절조가 있었으며, 무과에 합격하였다. 키는 8척 장신이었으며 외모가 수려하였다. 일찍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했고, 평소 무인이 될 자질을 연마하였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으나, 타고난 기질이 대담하고 호방하여 무예를 연마하게 되었다.
1580년(선조 13년) 별시무과(別試武科)에 급제하여 군관으로서 북방을 지켰다. 1583년 여진족 니탕개가 쳐들어와 경원이 함락되었을 때, 이종인은 토벌군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북방 수비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발발 후 김성일의 휘하에서 활약했으며, 1593년 음력 4월 김해부사로 임명되었다. 그해 음력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진주성을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진주성에 합류하여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였다. 음력 6월 28일, 왜군의 총공격으로 성 방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왜병 다섯을 죽여 적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서예원의 지휘력 부족으로 조선 측이 일괄적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관군과 의병 지휘관들의 개별 역량에 의존해야 했다. 이종인은 서예원이 야경을 소홀히 하여 성벽이 무너지자 그를 꾸짖기도 했다. 같은 날, 충청병사 황진과 사천현감 장윤이 전사하자 조선 측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왜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고안한 귀갑차를 이용해 성벽을 무너뜨렸다.
1593년 6월, 왜군은 10만 대군으로 제2차 진주성을 공격했다. 무너진 성벽 틈으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조선군은 밀리기 시작했고, 6월 28일 황진이 전사했다. 이종인은 황진의 시신을 수습하고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전사했다. 김천일, 최경회 등 여러 장수들이 전사하고, 백성 6만여 명은 전투 후 왜군에게 학살되었다.
이종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군의 탄환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과, 왜군 두 명을 옆구리에 끼고 남강에 투신했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사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어 처음 병마절도사로 증직되었다가 다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2.1. 임진왜란 이전의 생애
李宗仁중국어은 1556년 명종 11년에 나주 남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개성이다. 성격이 굳세고 절조가 있었으며, 무과에 합격하였다. 키는 8척 장신이었으며 외모가 수려하였다. 일찍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했고, 평소 무인이 될 자질을 연마하였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으나, 타고난 기질이 대담하고 호방하여 무예를 연마하게 되었다.
1580년(선조 13년) 별시무과(別試武科)에 급제하여 군관으로서 북방을 지켰다. 1583년 여진족 니탕개가 쳐들어와 경원이 함락되었을 때, 이종인은 토벌군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북방 수비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2.1.1. 출생
李宗仁중국어은 1556년(명종 11년)에 나주 남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개성이다. 성격이 굳세고 절조가 있었으며, 무과에 합격하였다. 키는 8척 장신이었으며 외모가 수려하였다. 일찍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했고, 평소 무인이 될 자질을 연마하였다. 원래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퇴계 이황의 문인이 되었으나, 타고난 기질이 대담하고 호방하여 무예를 연마하게 되었다.
2.1.2. 무과 급제와 관료 생활
1580년(선조 13년) 별시무과(別試武科)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이후 군관으로서 북방을 지키게 되었는데, 1583년 여진족 니탕개가 쳐들어와 경원이 함락되었다. 당시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제신은 그에 대한 죄를 지고 의주 인산진(麟山鎭)으로 유배되었다. 이종인은 이에 대한 토벌군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북방 수비에서 수차례 공을 세웠다.
2.2. 임진왜란과 제2차 진주성 전투
임진왜란 발발 후 김성일의 휘하에서 활약했으며, 1593년 음력 4월 김해부사로 임명되었다. 그해 음력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진주성을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진주성에 합류하여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였다. 음력 6월 28일, 왜군의 총공격으로 성 방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왜병 다섯을 죽여 적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서예원의 지휘력 부족으로 조선 측이 일괄적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관군과 의병 지휘관들의 개별 역량에 의존해야 했다. 이종인은 서예원이 야경을 소홀히 하여 성벽이 무너지자 그를 꾸짖기도 했다. 같은 날, 충청병사 황진과 사천현감 장윤이 전사하자 조선 측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왜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고안한 귀갑차를 이용해 성벽을 무너뜨렸다.
1593년 6월, 왜군은 10만 대군으로 제2차 진주성을 공격했다. 무너진 성벽 틈으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조선군은 밀리기 시작했고, 6월 28일 황진이 전사했다. 이종인은 황진의 시신을 수습하고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전사했다. 김천일, 최경회 등 여러 장수들이 전사하고, 백성 6만여 명은 전투 후 왜군에게 학살되었다.
이종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군의 탄환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과, 왜군 두 명을 옆구리에 끼고 남강에 투신했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2.3. 사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어 처음 병마절도사로 증직되었다가 다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 가족 관계
李宗仁zh-Hant의 본관은 개성이며, 아버지는 무형, 어머니는 정선 전씨, 배우자는 밀양 박씨이다. 진주 영렬사, 정충사 비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5. 연관 항목
* 선원록
* 선조실록
* 국조인물고
* 호남절의록
* 무과방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