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상
1. 개요
인민상은 1958년 9월 8일에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영예 중 하나이다. 영화, 문학, 예술, 집단체조, 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첫 번째 수상작은 영화 《내 고향》이며, 김정일이 감독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작품들도 다수 인민상을 받았다.
| 이름 | 인민상 |
|---|---|
| 영어 이름 | People's Prize |
| 수여 대상 | 창작 분야의 최고 업적 |
| 주최 | 인민상 수여 위원회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수여 시작일 | 1958년 9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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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 -
월북
월북은 한반도 분단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가는 행위로, 이념,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며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 -
북한의 개인숭배
북한의 개인 숭배는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며, 김일성으로부터 시작되어 3대 세습 체제까지 이어지며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 -
조국통일상
조국통일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자주적인 평화 통일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 기관에게 수여하는 상이지만, 수상자 선정 기준의 모호성과 정치적 편향성으로 공정성 및 객관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 -
공화국영웅
2. 제정 배경 및 역사
인민상은 1958년 9월 8일에 제정되었다. 강홍식 감독의 첫 북한 장편 영화 내 고향(1949)은 인민상을 수상한 영화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다. 김일성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민상을 수상한 많은 영화들이 인민의 자주성 (주체사상)한국어 문제에 대한 철저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조선로동당은 당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하는 북한 영화와 영화 제작자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김정일이 직접 감독한 3부작 영화 5명의 빨치산 형제(1968)는 "불후의 고전"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민상을 받았다. 김정일이 감독하여 인민상을 수상한 다른 영화로는 꽃피는 마을, 로동자가족(1971)이 있다. 로동자가족의 경우, 김정일은 씨앗론한국어의 적용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피바다(1968)와 꽃 파는 처녀(1972)와 같은 김정일의 일부 영화는 "불후의 고전"이 되었다.
1965년에는 총련이 설립한 조선대학교의 일본 교수진이 인민상을 받았다.
항일 유격대의 추억은 조선로동당 문학의 고전으로 간주되며, 2012년 인민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직장에서 일상적인 이념 학습 시간에 사용되며, 많은 회고록이 나중에 영화로 제작되었다.
인민상 수상자 김성건의 주요 작품인 금강산의 물결은 2009년 빌 클린턴의 북한 방문 당시 김정일과 빌 클린턴의 단체 사진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김성건은 1999년 이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
3. 주요 수상 분야 및 작품
인민상은 영화, 문학, 예술, 집단체조, 혁명가극, 음악극, 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여되었다.
영화 분야에서는 강홍식 감독의 내 고향(1949)을 시작으로, 김정일이 직접 감독하거나 관여한 《5명의 빨치산 형제》(1968), 《꽃피는 마을》, 《로동자가족》(1971), 《피바다》(1968), 《꽃 파는 처녀》(1972) 등이 인민상을 받았다.
문학 분야에서는 한설야의 소설 력사한국어 (1958), 항일유격대 회고록 (2012년 3월), 인민 속으로 (1992년 4월) 등이 수상하였다.
예술 분야에서는 화강암 조각상 《전진의 나팔수(진격의 나팔수)》 (1988년 9월), 《천리마 동상》, 김성건의 그림 《금강산의 파도》(1999년) 등이 인민상을 받았다.
집단체조 분야에서는 《백전백승의 조선로동당》, 《천리마 조선》, 《일심단결》, 《조선의 노래》, 《인민은 령도자를 노래한다》, 《당의 기치 아래에서》, 《원수님의 령도따라 붉은기 지켜나가리》 등이 수상하였다.
혁명가극 어느 간호원의 이야기(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한국어)와 음악극 밝은 태양 아래에서(1962년 12월 30일)도 인민상을 받았다.
과학 분야에서는 김봉한의 침술 연구(1962년 2월 2일), 계응상의 에리 누에와 참나무산누에나방 누에 연구(1963년)가 인민상을 받았다.
교육 분야에서는 1965년 1월 8일, 조선대학교 교직원이 인민상을 받았다.
3.1. 영화
강홍식이 감독한 내 고향(1949)은 인민상을 수상한 첫 영화였다. 1962년에는 《붉은 선동원》, 《태양의 딸》, 《분계선 마을에서》, 《해바라기》가 인민상을 받았다.
김정일이 직접 감독하거나 관여한 작품 중 인민상을 받은 영화로는 《5명의 빨치산 형제》(1968), 《꽃피는 마을》, 《로동자가족》(1971), 《피바다》(1968), 《꽃 파는 처녀》(1972)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항구의 처녀들》, 《사과 따는 때》, 《여단장의 옛 상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물레》, 《안중근 이토를 쏘다》, 《보증》 등이 인민상을 받았다.
3.2. 문학
* 한설야의 소설 력사한국어 (1958)
* 항일유격대 회고록 (2012년 3월 수상)
* 인민 속으로 (1992년 4월 수상)
3.3. 예술
* 화강암 조각상 《전진의 나팔수(진격의 나팔수)》 (1988년 9월 수상)
* 《천리마 동상》
* 김성건의 그림 《금강산의 파도》(1999년 수상)
* 오혜영은 실화를 영화로 각색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나리오 작가이다.
3.4. 집단체조
* 백전백승의 조선로동당 (2011년 수여)
* 천리마 조선
* 일심단결 (2011년 수여)
* 조선의 노래
* 인민은 령도자를 노래한다 (2011년 수여)
* 당의 기치 아래에서 (1980년 수여)
* 원수님의 령도따라 붉은기 지켜나가리 (1996년 수여)
3.8. 교육
1965년 1월 8일, 조선대학교 교직원이 인민상을 받았다.
4. 의의 및 영향
인민상은 1958년 9월 8일에 제정되었다. 북한에서 예술, 과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특히 영화 분야에서 인민상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홍식이 감독한 첫 번째 북한 장편 영화 [[내 고향 (영화)|내 고향]](1949)은 인민상을 수상한 첫 번째 영화였다. 김일성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민상을 수상한 많은 영화들이 인민의 자주성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조선로동당은 노동당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하는 북한 영화와 영화 제작자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김정일은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인민상 수상작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가 직접 감독한 3부작 영화 [[5명의 빨치산 형제]](1968)는 "불후의 고전"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인민상을 받았다. [[꽃피는 마을]], [[로동자가족]](1971) 등도 김정일이 감독하여 인민상을 수상했다. 김정일은 [[영화 예술론#씨앗론|씨앗론]]을 통해 북한 영화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피바다]](1968)와 [[꽃 파는 처녀]](1972)는 김정일의 대표적인 인민상 수상작이며, "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1965년에는 총련이 설립한 조선대학교의 일본 교수진이 인민상을 받았다. 인민상을 받은 작품들은 북한에서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12년 인민상을 수상한 [[항일 유격대의 추억]]은 조선로동당 문학의 고전으로 간주되며, 직장에서 일상적인 이념 학습 시간에 사용된다. 또한, 많은 회고록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1999년 인민상을 수상한 김성건의 그림 금강산의 물결은 2009년 빌 클린턴의 북한 방문 당시 김정일과 빌 클린턴의 단체 사진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인민상은 체제 선전 및 우상화 도구로 활용되면서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북한 사회의 경직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