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회 (동독)
1. 개요
인민의회는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존재했던 동독의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었다. 사회주의 통일당(SED)이 주도하는 민족전선 단일 명부로 의원을 선출하여, 1989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SED의 결정에 따르는 역할만 했다. 1990년 동독 총선에서 자유 선거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에 따라 인민의회가 구성되었으나, 독일 통일과 함께 해산되었다. 인민의회 의장은 동독에서 세 번째로 높은 직위였으며, 1949년과 1960년 두 차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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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정치 -
동독 지도부
동독 지도부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지도자들을 지칭하며, 발터 울브리히트와 에리히 호네커 등을 거쳐 공산주의 통치 종식 이후 민주 사회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
동독의 정치 -
민주연합 (동독)
민주연합은 1945년 소련 점령 지역에서 독일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반파시스트 민주 블록으로, 나치즘에 반대하는 세력 통합과 민주주의 건설을 목표로 기독교민주연합, 자유민주당과 함께 활동했으며,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창당 기반이 되어 동독 정치 지형을 확립했다. -
폐지된 입법부 -
대한제국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은 갑오개혁으로 설립되어 의회적 성격을 갖추었으나, 공화정 수립 루머로 황제의 견제를 받았으며, 독립협회 폐지 이후 자문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되다가 1907년 기능이 종식되었다. -
폐지된 입법부 -
소련 인민대표대회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으로 1989년 설립된 소련 인민대표대회는 다양한 사회 단체와 지역을 대표하는 2,25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소련의 최고 입법 기구였으며, 자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들이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넘어 정치적 다양성을 가져왔으나 소련 붕괴를 촉진했고,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해산되었다.
2. 역사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 국가 권력 기관으로, 헌법 개정 및 법률 제정, 국가평의회, 국무위원회, 독일 민주 공화국 국방위원회 의장, 대법원 소장 및 판사, 검찰총장 선출, 경제 계획 결정 등의 권한을 가졌다. 또한 분야별 위원회 제도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1989년 민주화 이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결정한 내용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쳤다. 국회 본회의는 1년에 3~4회 정도 개최되었고, 법안과 인사 안건은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의원 선출 역시 형식적이어서, 인민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민주 정치'라는 명분을 위한 기구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인민의회 외에 각 주 대표로 구성된 참의원도 있었으나, 1952년 이후 중앙 집권 정책으로 주가 14개 현으로 재편되면서 1958년 참의원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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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설립 배경
1949년 10월, 동독 헌법 초안 작성 임무를 맡은 인민의회는 스스로를 "인민의회"라고 선언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독일 주둔 소련군 사령부에 입법부로서 공식 인정을 요청했다. 이는 소련 외무부 차관 안드레이 그로미코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후 인민의회는 빌헬름 피에크를 초대 동독 대통령으로, 오토 그로테볼을 초대 동독 총리로 선출하기 위해 란데르캄머와 함께 소집되었다.
2.2. 초기 역할과 한계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며, 헌법 개정, 법률 제정, 국가평의회 · 국무위원회 · 독일 민주 공화국 국방위원회 의장 · 대법원의 소장과 판사 · 검찰 총장의 선출, 경제 계획 결정 등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분야별 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1989년 민주화 이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결정한 내용을 추인하는 역할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가 개최되는 것은 1년에 3-4회 정도이며, 법안과 인사 안건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의원 선출 방법도 형식적이었기 때문에, 인민 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민주 정치'라는 명분을 나타내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인민의회 외에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된 참의원도 존재했지만, 1952년 이후 중앙 집권 정책에 의해 주가 14개의 현으로 재편되어 1958년에는 참의원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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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성 및 선거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었다. 헌법 개정, 국가평의회 및 국무위원회 등 주요 기관 요직 선출, 경제 계획 결정 등의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1989년 민주화 이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SED)의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결정한 내용을 추인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국회 본회의는 1년에 3~4회 정도 개최되었으며, 법안과 인사는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인민의회 의원 선출은 형식적이었으며,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민주 정치'라는 명분을 위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된 참의원도 존재했지만, 1952년 이후 중앙 집권 정책으로 주가 14현으로 재편되면서 1958년에 폐지되었다.
1949년 10월, 동독 헌법 초안 작성 임무를 맡은 인민의회는 스스로를 "인민의회"라고 선언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독일 주둔 소련군 사령부에 입법부로서 공식 인정을 요청하여 승인받았다. 이후 인민의회는 빌헬름 피에크를 초대 동독 대통령으로, 오토 그로테볼을 초대 동독 총리로 선출했다.
1949년 창립부터 1990년 3월 최초의 경쟁 선거 전까지 인민의회 의원들은 민족전선 단일 명부 (SED 주도)를 통해 선출되었다. 자유 독일 청년단 등 다양한 조직에도 의석이 할당되어, 사실상 SED가 인민의회 구성을 통제했다.
인민의회 의원은 4~8석 규모의 복수 의원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해당 선거구에서 유효 투표의 절반을 얻어야 했다. 만약 선거구 내에서 모든 의석을 채울 만큼 충분한 수의 후보자가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90일 이내에 결선 투표가 실시되었다. 과반수를 얻은 후보자의 수가 해당 선거구의 의석수를 초과하면, 선거 명부에 있는 후보자의 순서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의석을 잃은 후보자는 결원 발생 시 승계 후보자가 되었다.
투표 용지에는 단일 후보자 명부만 있었고, 찬성하는 유권자는 투표 용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었다. 반대하는 유권자는 비밀 보장 없이 별도의 투표함을 사용해야 했다.
1976년 인민의회는 공화국 궁전으로 이전했다. 이전에는 베를린 미테 지구의 건물에서 열렸다. 초기에 동베를린 유권자는 인민의회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1979년 선거법이 변경되어 66명의 직접 선출된 투표권을 가진 의원을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1990년 선거를 제외하고는 국민전선을 형성하는 5개의 정당이나 단체별로 의석수가 결정된 통일 명부가 작성되어, 이에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묻는 형식이었다. 이 때문에 항상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이 최대 세력이었다.
헌법 제54조는 자유, 보통, 평등, 비밀 선거를 규정했지만, 실제 선거는 반대 투표자를 식별 가능하게 하여 비밀 투표 원칙을 위반했다. 기권자는 체제 반대파로 간주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기에, 투표율과 찬성률은 매번 99% 이상이었다. 대도시, 특히 동베를린에서는 감시가 약해 기권율과 반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3.1. 구성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었지만, 1989년 민주화 이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SED)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인민의회 의원 선출은 민족전선 단일 명부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SED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민족전선 내 소수 정당들은 SED에 종속되어 있었고, SED의 "선도 정당"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
1967년 제5회 선거 이후 인민의회 의석 수는 다음과 같이 고정되었다.
| 정당/단체 | 의석 수 |
|---|---|
|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SED) | 127석 |
| 기독교 민주 연합 (CDU(DDR)) | 52석 |
| 독일 자유 민주당 (LDPD) | 52석 |
| 독일 국가 민주당 (NDPD) | 52석 |
| 독일 민주 농민당 (DBD) | 52석 |
| 자유 독일 노동 총동맹 (FDGB) | 68석 |
| 자유 독일 청년단 (FDJ) | 40석 |
| 독일 민주 여성 연맹 (DFD) | 35석 |
| 독일 문화 연맹 | 22석 |
| 합계 | 500석 |
1986년부터는 농민 상호 원조단이 추가되어 의석 수가 변경되었다. 자유 독일 노동 총동맹 (FDGB)은 61석, 자유 독일 청년단 (FDJ)은 37석, 독일 민주 여성 연맹 (DFD)는 32석, 독일 문화 연맹은 21석, 농민 상호 원조단은 14석으로 조정되었다.
초기에는 기독교 민주 연합, 독일 자유 민주당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지만, SED에 반대하는 간부들은 대부분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위성 정당으로 전락했다. 국가 민주당과 독일 민주 농민당은 처음부터 SED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자유 독일 청년단 (FDJ)은 SED의 하부 조직이었고, 자유 독일 노동 총동맹 (FDGB) 회장은 SED 정치국원이었다.
3.2. 선거 제도
1990년 3월 이전까지 독일 민주 공화국의 인민의회 선거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SED이 주도하는 민족전선의 단일 후보 명부에 대한 찬반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사실상 SED가 인민의회의 구성을 통제했다. 민족전선 내 소수 정당들은 SED에 종속되어 '선도 정당'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민의회 의원은 4~8석 규모의 복수 의원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해당 선거구에서 유효 투표의 절반을 얻어야 했다. 만약 과반수를 얻은 후보자가 부족하면 90일 이내에 결선 투표가 실시되었고, 과반수를 얻은 후보자가 의석수를 초과하면 명부 순서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의석을 잃은 후보자는 결원 발생 시 승계 후보자가 되었다.
투표 용지에는 단일 후보자 명부만 있었고, 찬성하는 유권자는 투표 용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었다. 반대하는 유권자는 별도의 투표함을 사용해야 했으며, 비밀 투표는 보장되지 않았다.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 제54조는 자유, 보통, 평등, 비밀 선거를 규정했지만, 실제 선거는 다음과 같았다.
# 유권자는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를 받는다.
# 찬성하면 아무것도 쓰지 않고 투표함에 넣는다.
# 반대하면 기재대에서 투표 용지에 표시 후 투표함에 넣는다.
이는 반대 투표자를 식별 가능하게 하여 비밀 투표 원칙을 위반했다. 기권자는 체제 반대파로 간주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기에, 투표율과 찬성률은 매번 99% 이상이었다. 대도시, 특히 동베를린에서는 감시가 약해 기권율과 반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1990년 선거에서는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자유로운 경쟁 선거가 실시되었다.
다음은 1990년 이전 의회 선거 결과이다.
| 선거 | 투표율 | 찬성 | 의석 배분 | |||||||||||
|---|---|---|---|---|---|---|---|---|---|---|---|---|---|---|
| SED | CDU | LDPD | DBD | NDPD | FDGB | FDJ | KB | DFD | SPD | VdgB | VVN | |||
| 1950 | 98.53% | 99.9% | 110 | 67 | 66 | 33 | 35 | 49 | 25 | 24 | 20 | 6 | 12 | 19 |
| 1954 | 98.51% | 99.4% | 117 | 52 | 52 | 52 | 52 | 53 | 29 | 29 | 18 | 12 | ||
| 1958 | 98.90% | 99.9% | 117 | 52 | 52 | 52 | 52 | 53 | 29 | 29 | 18 | 12 | ||
| 1963 | 99.25%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67 | 99.82%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71 | 98.48% | 99.5%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76 | 98.58% | 99.8%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81 | 99.21%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86 | 99.74%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37 | 21 | 32 | 14 | ||
3.3. 의석 배분
1990년 이전 인민의회 의석은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이 주도하는 민족전선 단일 명부에 의해 배분되었다. 사실상 SED가 인민의회 구성을 통제했으며, 민족전선 내 소수 정당들은 SED에 종속되어 '선도 정당' 역할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민의회 의원은 4~8석 규모의 복수 의원 선거구에서 선출되었으며, 당선되기 위해서는 해당 선거구에서 유효 투표의 절반을 얻어야 했다. 단일 후보자 명부만이 투표 용지에 나타났으며, 민족전선 명부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은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 별도의 투표함을 사용해야 했다.
1990년 이전 의회 선거 결과 및 의석 배분은 아래 표와 같다.
| 선거 | 투표율 | 찬성 | 의석 배분 | |||||||||||
|---|---|---|---|---|---|---|---|---|---|---|---|---|---|---|
| SED | CDU | LDPD | DBD | NDPD | FDGB | FDJ | KB | DFD | SPD | VdgB | VVN | |||
| 1950 | 98.53% | 99.9% | 110 | 67 | 66 | 33 | 35 | 49 | 25 | 24 | 20 | 6 | 12 | 19 |
| 1954 | 98.51% | 99.4% | 117 | 52 | 52 | 52 | 52 | 53 | 29 | 29 | 18 | 12 | ||
| 1958 | 98.90% | 99.9% | 117 | 52 | 52 | 52 | 52 | 53 | 29 | 29 | 18 | 12 | ||
| 1963 | 99.25%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67 | 99.82%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71 | 98.48% | 99.5%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76 | 98.58% | 99.8%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81 | 99.21%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40 | 35 | 22 | |||
| 1986 | 99.74% | 99.9% | 127 | 52 | 52 | 52 | 52 | 68 | 37 | 21 | 32 | 14 |
1967년 제5회 선거 이후 의석 수는 아래와 같이 고정되었다.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 127석
* 기독교 민주 연합(CDU(DDR)) 52석
* 독일 자유 민주당(LDPD) 52석
* 독일 국가 민주당(NDPD) 52석
* 독일 민주 농민당(DBD) 52석
* 자유 독일 노동 총동맹(FDGB) 68석
* 자유 독일 청년단(FDJ) 40석
* 35석
* 독일 문화 연맹 22석
1986년부터는 이 추가되어 의석 수가 변경되었다.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 127석
* 기독교 민주 연합(CDU(DDR)) 52석
* 독일 자유 민주당(LDPD) 52석
* 독일 국가 민주당(NDPD) 52석
* 독일 민주 농민당(DBD) 52석
* 자유 독일 노동 총동맹(FDGB) 61석
* 자유 독일 청년단(FDJ) 37석
* 32석
* 독일 문화 연맹 21석
* 14석
초기에는 기독교 민주 연합, 자유 민주당도 어느 정도 힘을 가졌지만, SED에 반대하는 간부들은 대부분 서독으로 망명하여 위성 정당이 되었다. 국가 민주당과 민주 농민당은 처음부터 SED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FDJ는 SED의 하부 조직이며, FDGB의 회장이 SED 정치국원인 등, 다른 단체들도 실질적으로 SED 산하에 있었다.
1990년 선거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 선거였으며, 정당별 의석 배분은 다음과 같았다.
| 정당/그룹 | 약자 | 의원 수 |
|---|---|---|
| 독일을 위한 연합 | CDU, DA, DSU | 192 |
| 독일 사회민주당 | SPD | 88 |
| 민주 사회주의 정당 | PDS, 전 SED | 66 |
| 자유 민주당 연합 | DFP, FDP, LDP | 21 |
| 동맹 90 | B90 | 12 |
| 녹색당 및 독립 여성 연합 | Grüne, UFV | 8 |
| 독일 민족민주당 | NDPD | 2 |
| DFD | 1 | |
| 연합 좌파 | VL | 1 |
4. 권한과 역할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이 선출하는 최고 국가 권력 기관으로, 헌법 개정 및 법률 제정, 국가평의회, 국무위원회, 독일 민주 공화국 국방위원회 의장, 대법원 판사, 검찰총장 선출, 경제 계획 결정 등 다양한 권한을 가졌다. 또한 분야별 위원회 제도도 운영되었다.
그러나 1989년 민주화 이전까지 인민의회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결정한 사항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역할만 수행했다. 1년에 3~4회 열리는 본회의에서는 법안과 인사가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의원 선출 역시 형식적이어서, 인민의회는 '국민 대표에 의한 민주 정치'라는 명분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된 공화국참의원도 있었지만, 1952년 이후 중앙 집권 정책으로 주가 14개 현으로 재편되면서 1958년 참의원은 폐지되었다.
4.1. 명목상 권한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며, 헌법 개정, 법률 제정, 국가평의회 (국가평의회 의장이 국가 원수)·각료평의회 (내각에 상당)·국방평의회 의장(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재판소의 소장 및 판사·검찰총장 선출, 경제 계획 결정 등의 권한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미국의 연방 의회나 일본의 국회 등과 같이 분야별 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어 있었다.
4.2. 실제 역할의 한계
독일 민주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인민의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 국가 권력 기관으로 여러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1989년 민주화 이전에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결정한 내용을 추인하는 역할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는 1년에 3-4회 정도 개최되었으며, 법안과 인사 안건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또한, 의원 선출 방법도 형식적이었으며, 인민 의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민주 정치'라는 명분을 나타내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5. 역대 인민의회 의장
인민의회 의장은 동독에서 국무회의 의장과 국가평의회 의장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직위였으며, 대통령 직위가 존재할 때에는 당연직 부통령이었다. 이 때문에 인민의회 의장은 1949년과 1960년 두 차례에 걸쳐 짧은 기간 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했다. 인민의회 마지막 의장인 자비네 베르크만-폴은 국가평의회가 폐지되면서 동독의 마지막 6개월 동안 임시 국가 원수를 역임했다.
인민의회 의장직은 동독이 광범위한 연립 정부에 의해 운영된다는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 기구 존속 기간 대부분 동안 블록 정당 대표가 맡았다. SED 소속으로는 단 한 명만이 이 직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