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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비행기 전무댁 방화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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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비행기 전무댁 방화 살인 사건은 1990년 4월 12일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일본 비행기 전무 자택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전무의 부인이 사망하고 전무는 화상을 입었으며, 방화 현장에서는 휘발유 냄새와 함께 시한식 발화 장치가 발견되었다. 수사 결과, 중핵파가 범행을 자행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리타 공항 문제와 관련된 테러로 밝혀졌다. 가나가와현 경찰은 중핵파의 거점을 수색하고 관련자를 체포하는 등 수사를 진행했다. 이 사건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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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비행기 전무댁 방화 살인 사건
사건 개요
명칭일본비행기 전무댁 방화 살인 사건
발생 장소일본 가나가와현가마쿠라시
발생 날짜1990년 4월 12일
사건 요약일본비행기 전무댁에 시한식 발화 장치를 설치하여 전무 부인을 살해함.
사건 정보
현상금알려지지 않음
원인알려지지 않음
수단시한식 발화 장치
무기알려지지 않음
공격측 인원알려지지 않음
표적일본비행기 전무 부인
피해
사망자1명
부상자1명
실종자알려지지 않음
피해자일본비행기 전무 부인
손해알려지지 않음
범인 및 관련 정보
범인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전국위원회(중핵파)
혐의알려지지 않음
동기신공항 국제공항(현: 나리타 국제공항)에 대한 반발
관여알려지지 않음
사건 처리
방어알려지지 않음
대처알려지지 않음
사과알려지지 않음
배상알려지지 않음
유족회알려지지 않음
피해자 모임알려지지 않음
관할알려지지 않음

2. 사건 발생

1990년 4월 12일 오전 2시 50분경,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고쿠라쿠지에 있는 일본 비행기 전무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2] 잠자리에 들었던 전무는 인기척에 잠이 깨어 부인을 깨운 후, 근처 민가에 소방서 신고를 부탁하기 위해 집에서 탈출했다.[2]

당시 나리타 공항 문제와 관련하여 항공 관계자 주택에 대한 방화가 잇따랐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3]

일본 비행기는 방위청에 항공기 부품을 납품하고, 일본 항공 및 전일공(ANA)에서 임원이 파견되었는데, 회사 총무부는 "과격파에게 노려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희생자가 발생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논평했다.[3]

사건 후, 중핵파가 범행 성명을 발표하여, 가나가와현 경찰은 중핵파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단정했다.[6][7] 중핵파 기관지는 "일본 비행기는 전쟁으로 비대해진 '죽음의 상인'이며, 나리타 공항 2기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다" 등 범행 동기를 시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8]

당시, 나리타에서는 나리타 신법에 근거한 단결 오두막의 제거·봉쇄가 진행되고 있었고, 중핵파는 전년 12월부터 동년 4월까지를 "사투의 5개월"로 규정했다.[9]

1990년 10월 13일, 가나가와현 경찰은 요코하마시 나카구 초자마치에 있는 중핵파 거점, 전진사 가나가와 지사 등 27곳을 살인, 현주 건조물 등 방화 혐의로 가택 수색했다.[10]

1990년 11월 11일, 가나가와현 경찰은 요코하마시 고호쿠구 시노하라니시마치에 있는 중핵파 아지트를 같은 혐의로 가택 수색하고,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 비공개 활동가 1명을 공무 집행 방해로 현행범 체포했다.[11][12]

2. 1. 피해 상황

일본 비행기 전무(당시 66세)는 얼굴과 머리에 전치 1개월의 화상을 입었지만 생존했다[3]。 그러나 그의 부인(당시 53세)은 일산화 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3]。 전무의 자택은 완전히 불에 탔으며[3], 불에 탄 자리에서는 단 3 건전지 4개와 리드선이 발견되었고, 휘발유 냄새가 났다[4]。 가나가와현 경찰은 시한식 발화 장치에 의한 방화 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5]

3. 수사 경과

1990년4월 12일 오전 2시 50분경, 가나가와현가마쿠라시고쿠라쿠지에 있는 일본 비행기 전무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하여[2] 전무 부인이 사망하고 전무는 화상을 입었다[3]

가나가와현 경찰은 단 3 건전지 4개와 리드선이 발견되었고, 휘발유 냄새가 나는 점을 근거로 시한식 발화 장치에 의한 방화 살인 사건으로 단정하고, 가마쿠라 경찰서에 수사 본부를 설치했다[4]。 탈출로를 막는 형태로 출입구와 욕실 옆 두 곳에 발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5]

당시 나리타 공항 문제와 관련하여 항공 관계자 주택 방화 사건이 잇따랐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3]。 일본 비행기는 방위청에 항공기 부품을 납품하고, 일본 항공 및 전일공(ANA)에서 임원이 파견되었는데, 회사 총무부는 "과격파에게 노려지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논평했다[3]

당시 나리타 신법에 근거한 단결 오두막 제거·봉쇄가 진행되고 있었고, 중핵파는 전년 12월부터 동년 4월까지를 "사투의 5개월"로 규정했다[9]

3. 1. 중핵파의 범행 성명

사건 직후, 중핵파는 "가마쿠라에서 우리 혁명군이 화염 공격을 가했다"는 범행 성명을 발표했고, 가나가와현 경찰은 중핵파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단정했다[6][7]。 중핵파 기관지는 "일본 비행기는 전쟁으로 비대해진 '죽음의 상인'이며, 나리타 공항 2기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다"라는 범행 동기를 시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8]

3. 2. 경찰의 대응

1990년 10월 13일, 가나가와현 경찰 공안 제3과와 가마쿠라 경찰서는 요코하마시 나카구 초자마치에 있는 중핵파의 거점 전진사 가나가와 지사 등 27곳을 살인, 현주 건조물 등 방화 혐의로 가택 수색하여 기관지 및 전단 등 62점을 압수했다[10]

1990년 11월 11일, 가나가와현 경찰 경비부와 가마쿠라 경찰서는 요코하마시 고호쿠구 시노하라니시마치에 있는 중핵파 아지트를 살인, 현주 건조물 등 방화 혐의로 가택 수색하여 메모와 지도 등 100여 점을 압수했다[11]。 이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 비공개 활동가 1명을 공무 집행 방해로 현행범 체포했다[12]

4. 사건 배경

1990년 4월 12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나리타 공항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3] 일본 비행기는 방위청에 항공기 부품을 납품하고, 일본 항공 및 전일공(ANA)에서 임원이 파견되는 등 나리타 공항 2기 공사를 추진하는 기업이었다.[8]

사건 이후, 중핵파는 범행 성명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기관지에 "일본 비행기는 전쟁으로 비대해진 '죽음의 상인'"이라고 언급하며 범행 동기를 시사했다.[8]

4. 1. 나리타 공항 문제

당시 나리타 공항 문제와 관련하여 항공 관계자 주택에 대한 방화가 잇따랐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3] 나리타에서는 나리타 신법에 근거한 단결 오두막의 제거 및 봉쇄가 진행되고 있었다.[9] 중핵파는 1989년 12월부터 1990년 4월까지를 "사투의 5개월"로 규정하고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9]

참조

[1] 웹사이트 平成3年 警察白書 第7章 公安の維持 https://www.npa.go.j[...] 警察庁 2017-03-05
[2] 뉴스 日本飛行機専務宅が全焼し夫人が焼死 焼け跡から電池とリード線/鎌倉 読売新聞東京本社 1990-04-12
[3] 뉴스 過激派放火、夫人が焼死 時限装置を使う 鎌倉の日本飛行機専務宅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04-13
[4] 뉴스 日本飛行機専務宅での夫人焼死はゲリラの放火 「防衛」関連で狙う? 読売新聞東京本社 1990-04-13
[5] 뉴스 鎌倉の「日本飛行機」専務宅ゲリラ放火 時限式装置を使う 読売新聞東京本社 1990-04-13
[6] 뉴스 中核派が犯行声明? 日本飛行機専務宅の放火事件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04-19
[7] 뉴스 日本飛行機の専務宅放火は中核派の犯行 神奈川県警が断定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04-20
[8] 뉴스 中核派の機関紙に犯行動機示す記事 日本飛行機専務宅放火事件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04-23
[9]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08-20
[10] 뉴스 中核派の拠点捜索 日本飛行機の専務宅放火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10-13
[11] 뉴스 日本飛行機専務宅の放火殺人 横浜のアパート捜索を妨害の男性逮捕 朝日新聞東京本社 1990-11-12
[12] 뉴스 放火殺人事件で中核派アジトを捜索/神奈川県警 読売新聞東京本社 1990-11-12
[13] 뉴스 1990-04-13
[14] 서적 過激派事件簿40年史 立花書房 200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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