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공수(ANA)는 1952년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와 극동항공 주식회사를 전신으로 하여 설립된 일본의 주요 항공사이다. 국내선 운항을 시작으로, 1986년 국제선 정기편 운항을 시작했으며, 1999년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 2003년 ANA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3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19년에는 RPK(여객 킬로미터)에서 일본항공을 넘어섰으며, 다양한 자회사와 제휴 회사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여러 픽션 작품에 등장하며, 스포츠 및 문화 분야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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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공수는 1952년 12월 27일에 설립된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와 1952년 12월 26일에 설립된 '''극동항공 주식회사'''가 전신이다.[9]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항공 코드 '''NH'''의 기원이 되었다.[10] 초기에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광고 사업을 하였으나,[165][166] 이후 여객 및 화물 운송 사업으로 확장하였다. 1953년 2월 헬리콥터 서비스를 시작했다.[9] 1953년 12월 15일 오사카와 도쿄 노선에 드 하빌랜드 도브를 이용한 첫 화물 운송을 실시했다.[9] 같은 노선의 여객 서비스는 1954년 2월 1일에 시작되었고, 3월에는 드 하빌랜드 헤론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11]
극동항공은 오사카를 거점으로 서일본 지역의 항공 노선을 운영했다. 1954년 1월 20일, 오사카와 도쿄 간 야간 화물 운송을 드 하빌랜드 도브를 사용하여 시작했다. 1957년 초 DC-3을 도입했고, 당시 노선망은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일본 남부를 통과했다.[11]
1957년 12월 1일,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는 현재의 사명인 전일본공수로 사명을 개칭하였다.[12] 1958년 3월, 극동항공은 전일본공수와 합병되었다. 합병된 회사의 총 시가총액은 6억 엔이었으며, 합병 결과 일본 최대의 민간 항공사가 되었다.[9]
2. 2. 전일본공수 설립
전일본공수는 1952년 12월 27일에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9] 초기에는 국내선 위주로 운항하였으며,[9] 1953년 2월부터 승객 운송을 시작했다.[9] 1953년 12월 15일부터 오사카와 도쿄 구간에 드 하빌랜드 도브 JA5008을 이용한 첫 화물 운송을 시작했고,[9] 이는 전후 일본에서 일본인 조종사가 처음으로 운항한 정기편이었다. 1954년 2월 1일에는 같은 노선에 여객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3월에는 드 하빌랜드 헤론으로 기종이 업그레이드되었다.[11] 1955년에는 더글러스 DC-3이 도입되면서,[9] 항공사의 노선망은 북부 규슈에서 삿포로까지 확장되었다.
최초의 NH 및 ANA 로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나선형 프로펠러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1982년 도장 로고로, 2012년에는 기업 로고로 현재 로고로 교체되었다.
1957년 12월, 일본 헬리콥터 수송 주식회사는 사명을 전일본공수(All Nippon Airways Company)로 변경했다.[12]
한편, 전일본공수의 또 다른 모태는 1952년 12월 26일에 설립된 극동항공(Far East Airlines)이었다.[13] 극동항공은 1954년 1월 20일 오사카와 도쿄 간 야간 화물 운송을 시작했고, 1957년 초 DC-3을 도입하여 노선망을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확장했다.[11]
1958년 3월, 극동항공은 전일본공수와 합병되었다. 합병된 회사의 총 시가총액은 6억 엔이었으며,[9] 일본 최대의 민간 항공사가 되었다.[9] 합병된 항공사는 전일본공수(; )라는 새로운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고, 더 큰 NH의 회사 로고를 채택했다.[9]
이후, 국내 항공 운송을 일원화한다는 일본 운수성의 방침에 따라 두 회사는 합병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일본항공협회 회장 고코 키요시, 일본항공 사장 야나기타 세이지로 등의 중재로 합병 절차가 진행되어 1957년 12월 1일, 합병 등기가 완료되었다.
초대 사장에는 전 아사히 신문사 상무이사이자 일본 헬리콥터 창업자인 미토지 쇼이치가 취임했다. 이 합병으로 전일본공수(ANA)는 더글러스 DC-3 9대, 드 햇빌랜드 DH.114 헤론 3대, 드 햇빌랜드 DH.104 닷 4대, 벨 47D-1 헬리콥터 4대 등 총 26대로 일본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사가 되었다.[170]
ANA는 각 취항지의 유력 기업과 제휴하여 항공사 업무를 위탁하는 총대리점 제도를 채택했다. 주요 총대리점으로는 일본통운, 나고야 철도, 료비 홀딩스, 이요 철도 등이 있었다. 특히 나고야 철도는 오랫동안 ANA의 최대 주주였으며, ANA와 나고야 정재계는 강력한 유대를 맺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보잉 787의 주요 부품이 아이치현에서 제조되어 주부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운송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2. 3. 고도 성장기
1960년대 전일본공수는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에 따른 항공 수요 증가에 힘입어 급속히 성장했다.[9][172]1960년 비커스 비스카운트를 도입하고, 1961년 포커 27 기종을 도입했다.[9] 같은 해 오사카 증권거래소와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9] 1961년 9월 23일, 당시 미군 통치하에 있던 오키나와로 가는 정기편인 가고시마-오키나와 노선에 포커 F27을 투입하여 첫 운항을 시작했다. 이 노선은 1972년 오키나와 반환까지 전일본공수의 유일한 국제 정기편이었다.
1965년보잉 727 기종으로 첫 제트 비행기 운항을 시작해 도쿄에서 삿포로 국내선 노선에 투입했고, YS-11이 추가되었다.[9]1969년에는 보잉 737을 도입하였다.[9] 1964년 11월 1일 후지타 항공을 흡수 합병하고,[9][172] 1965년 2월 1일 중일본항공의 정기 항공 부문을 흡수했으며, 1967년 12월 1일에는 나가사키 항공의 정기 항공 부문을 승계했다.[172]
1976년록히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전일본공수의 항공기 도입 과정에서 록히드사가 L-1011 트라이스타를 도입시키기 위해 다나카 가쿠에이를 비롯한 각료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으로, 일본 정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19][173][174] 전일본공수에서도 사와 유지 전무, 후지와라 토오루 이사, 와카사 토쿠지 사장, 와타나베 쇼지 부사장 등이 외환법 위반 및 위증 등으로 체포되었다.[173][174]
2. 4. 국제선 정기편 진출
1986년 3월 3일, 전일본공수(ANA)는 나리타 - 괌 노선에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 기종을 투입하며 국제선 정기편 운항을 시작했다.[177] 이는 1971년 홍콩 전세기 운항 이후 국제선 운항 실적을 쌓아온 결과였다. 1970년 당시 운수성의 정책, 이른바 "45/47 체제"에 의해 일본항공은 국제선과 국내선 간선을, 전일본공수는 국내선 간선과 지방 노선 및 단거리 국제선 전세편을 담당하도록 분담 체제가 확립되어 국제 정기편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176] 그러나 1978년 미국에서 항공 규제 완화 법이 제정되고, 1980년대 45/47 체제가 전환기를 맞으면서 국제선 진출의 길이 열렸다.[176]
신치토세 공항의 ANA 보잉 737-500. 배경에는 착륙 접근 중인 ANA 보잉 777-200이 보인다.
같은 해, 전일본공수는 보잉 747-200B 기종을 투입하여 미국 본토 노선인 나리타 - 로스앤젤레스 노선과 나리타 - 워싱턴 D.C. 노선을 개설했다.[9] 이후 국제선 노선을 점진적으로 확장하여, 1987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노선인 나리타 - 베이징 노선, 나리타 - 다롄 노선, 나리타 - 홍콩 노선, 나리타 - 시드니 노선(이후 철수)을 개설했다.[22] 1988년에는 대한민국 노선인 나리타 - 김포 노선을 개설했다.[22] 1989년에는 첫 유럽 진출로 나리타 - 런던 노선을 개설했으며[178][22], 1990년 11월에는 국제선 네트워크 확장에 맞춰 보잉 747-400을 도입했다.[22]
하네다 공항의 ANA 보잉 747-400D 두 대
2024년, "Inspiration of JAPAN" 태그라인이 적힌 런던 히드로 공항의 ANA 보잉 777-300ER
2. 5. 국제선 확대와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1986년 3월 3일, 전일본공수는 도쿄와 괌을 잇는 항공편으로 첫 국제선 정기 운항을 시작했다.[21] 같은 해 말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 D.C. 노선이 추가되었고,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과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여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미국 항공사의 신규 노선을 지원했다.[9] 1987년에는 베이징(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다롄, 홍콩, 시드니 노선을, 1988년에는 서울(김포국제공항) 노선을, 1989년에는 런던(히스로 공항)과 사이판 노선을, 1990년에는 파리(파리 샤를 드 골 공항) 노선을, 그리고 1991년에는 뉴욕(존 F. 케네디 국제공항)과 싱가포르 노선을 개설했다.[22][23]
1999년10월, 전일본공수는 항공 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에 9번째 회원사로 가입했다.[24] 스타얼라이언스 회원사와의 코드셰어를 통해 국제선 노선망 부족을 보완하고, 중복 노선에서 자사 운항편을 철수하며, 해외 인지도를 높이는 등 항공 동맹체 가입을 통해 자사의 약점을 보완하는 경영 전략으로 전환했다.
경영 악화에 따라 1999년 5월에 제정한 2002년도까지의 중장기 경영 계획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추진하여 구조 개혁을 추진했다.[179][180] 국제선은 기존의 허브 공항이었던 나리타 공항과 간사이 공항 2곳을 재검토하여 나리타 공항에 경영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간사이 공항 출발 유럽·호주 지역 장거리 노선은 철수 또는 코드셰어로 이관을 진행했다. 또한 간사이 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운항 회사인 에어 재팬에 2000년도부터 전일본공수의 간사이 공항 출발 노선 운항을 이관하여 비용 절감을 추진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주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 지바현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가는 전일본공수 747편이 미국 영토에 비행기 이착륙을 다시 허용한 조지 W. 부시 정부의 허가에 따른 최초의 비행기로 알려져 있다.
2. 6. 경영 재건
2001년 9월 발생한 미국 동시다발 테러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항공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영 실적이 악화되었다.[185] 이에 일본 국토교통성의 지원을 받아 일본항공 및 일본 에어시스템과 함께 일본정책투자은행으로부터 무이자 융자를 지원받아 경영 재건을 추진했다.[185] 그러나 2003년과 2004년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유행으로 항공 수요가 다시 감소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일본정책투자은행으로부터 총 500억 엔의 무이자 융자를 추가로 지원받았다.[186] 그 결과 2003년에는 흑자를 기록하고 배당을 재개했다.[186]
2004년에는 보잉이 개발 중인 보잉 787(개발명칭 7E7) 50대를 발주하여 런치 커스터머가 되었다.
2. 7. 명칭 변경
2003년, 전일본공수는 공식 명칭을 "전일본공수"에서 영문 사명 "'''A'''LL '''N'''IPPON '''A'''IRWAYS CO., LTD"의 머리글자를 딴 "'''ANA'''(에이・엔・에이)"로 변경하고 로고 마크도 "ANA"로 변경했다. 그룹 항공사 운항기(일부 기재 제외)를 포함, 기체 도장도 로고 마크 부분을 변경했다. 기체에 대한 기종명 표기는 이때 사라졌지만, 후에 도입된 보잉 787 등에서는 기종명을 표기하고 있다. 그룹 회사에 대해서도 대부분 사명의 "전일본공수"를 "ANA"로 변경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계속해서 "전일본공수"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매스미디어 각사의 보도 등에서는 "전일본공수"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같은 시기(2004년)에 그룹 항공사(에어니폰·에어재팬 등)의 운항편을 "ANA" 편명으로 변경했다.
1982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로고는 "ANA" 문자 옆에, 기체 도장에도 사용되고 있는 진한 파란색의 트리톤 블루(Triton Blue)와 옅은 파란색의 모히칸 블루(Mohican Blue)를 조합한 평행사변형 라인이 들어가 있다. 트리톤 블루는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잠재웠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 트리톤(Triton)에서 유래했으며,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되었다. 모히칸 블루는 1982년 도장 변경 이전의 "모히칸 도장"에 사용되었던 색이다. 2002년경까지는 평행사변형 라인의 오른쪽 또는 현재의 로고에 해당하는 부분 아래에 "전일본공수"를 병기하고 있었다.
트리톤 블루
모히칸 블루[206]
2. 8. 지주회사 전환
2012년 2월 17일, 전일본공수는 2013년 4월 1일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했다.[187][188] 지주회사의 명칭은 "ANA홀딩스 주식회사", 사업회사의 명칭은 "전일본공수 주식회사"가 되며, 회사 분할 방식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었다.[187][188]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앞서, 2012년 4월 2일에 사업을 인수할 자회사로 ANA홀딩스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사업 양수 시 "전일본공수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지주회사 전환 시 "전일본공수 주식회사"가 "ANA홀딩스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되었다.[187][188] ANA홀딩스(ANA Holdings Inc.)는 "항공업계의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저가 항공사(LCC)와의 경쟁을 그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다.[36]
또한, 2012년 4월부터 그때까지 사용해왔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헬리콥터 그림을 새긴 회사 로고와 회사기를 ANA 로고로 변경했다.[189] 2010년 이후 "Inspiration of Japan"(일본의 영감)이라는 슬로건이 추가되었다.
2. 9. 현재
2004년, 전일본공수는 저가 항공사인 에어 넥스트를 설립하고 나고야 코마키 공항에 본사를 둔 나카니혼 항공(NAL)의 대주주가 되었으며, 최초로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주문했다.[326] 2005년, 나카니혼 항공은 에어 센트럴로 명칭을 변경하고 주부 센토레아 국제공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326] 2010년 10월, 에어 넥스트와 에어 센트럴은 합병하여 ANA 윙스로 재편되었다.[326]
2011년, 말레이시아의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와의 합작 회사인 에어아시아 재팬과 피치 항공을 설립했다.[326] 2013년 4월에는 영국 스카이트랙스사가 운영하는 ‘에어라인 스타 랭킹’에서 일본 항공사 최초로 5성급을 획득했다.[192]
2014년 5월에는 ‘여객킬로미터(RPK)’[195]라는 항공 지표에서 처음으로 JAL(일본항공)을 넘어섰다. 2015년에는 도쿄에서 벨기에/브뤼셀 직항편을 자체 운항한다고 발표했다.[196]유럽 중앙에 위치한 브뤼셀에는 유럽 연합(EU) 본부와 NATO 본부가 있어 안정적인 수요가 기대된다.[196] 같은 해 6월에는 미국 휴스턴행 직항편을 신규 개설했다.[196]
2020년에는 COVID-19의 영향으로 국제선과 국내선 모두 매출이 대폭 감소하여 큰 손실을 입었다.[197][198] 사업 구조 개혁으로 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피치 항공에 이은 LCC “제3 브랜드” 운항을 2022년을 목표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200][201]
2023년 3월 7일, 니혼유센과 ANA홀딩스는 ANA가 닛폰 카고 에어라인(NCA)의 모든 주식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59][60]
2022년10월30일 현재, 에어두, 솔라시도 항공, 스타플라이어, 아이벡스 항공, 오리엔탈에어브리지, 일본에어커뮤터, 아마쿠사항공과 코드셰어(공동운항)를 실시하고 있다.[209]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은 일본 각지와 해외를 잇는 국내선과 국제선의 환승 거점으로, 나리타 공항은 일본을 출발 및 도착하는 수요에 더해 확대되는 북미~아시아 간 국제선의 환승 거점으로 각각 위치짓고 있으며, 이를 "'''수도권 듀얼 허브 모델'''"이라고 부르고 있다.[233]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으로 일부 노선이 운휴 또는 감편되었으나,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일본공수는 2014년 7월 31일, 에어버스 A320neo 7대, 에어버스 A321neo 23대, 보잉 777-9X 20대, 보잉 787-9 14대, 보잉 777-300ER 6대를 확정 주문했다.[77] 보잉은 ANA의 주문 규모를 목록 가격 기준으로 약 130억 달러로 평가했다. 2015년 2월 2일, ANA는 보잉 787-10 3대, 보잉 737-800 5대, 에어버스 A321 7대를 포함하여 에어버스와 보잉에 22억 달러 상당의 주문을 했다.[78] 2016년 1월 29일, ANA는 에어버스(Airbus)와의 구매 계약에 서명했는데, 여기에는 2018 회계연도부터 인도될 에어버스 A380 3대에 대한 확정 주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항공기는 도쿄(나리타) - 호놀룰루 노선에 투입된다.
전일본공수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최초 도입 고객으로, 2004년 4월 50대를 주문하고 추가로 50대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했다. ANA는 주문을 단거리형 787-3 30대와 장거리형 787-8 20대로 나누었으나, 이후 -3 주문을 -8 기종으로 변경했다.[81] 2011년 9월 21일, ANA는 세계 최초로 드림라이너를 인도받았으며, 2011년 10월 26일 도쿄 나리타에서 홍콩으로 가는 전세편으로 보잉 787 여객기의 첫 운항을 실시했다.[82] 또한, ANA는 2014년 7월 28일 보잉 787-9를 두 번째로 인도받은 항공사가 되었으며, 8월 4일 일본과 미국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관광 전세편으로 787-9의 첫 상업 운항을 실시했다.[83][84]
전일본공수는 여러 픽션 작품에 등장하거나 협찬을 제공했다. 2003년 TBS 일요극장에서 방영된 드라마 굿 럭을 후원하며 항공기, 정비창, 시뮬레이터 등의 시설을 제공했다.[348] 또한 기무라 타쿠야, 쓰쓰미 신이치, 시바사키 코우가 출연하는 항공 승무원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 드라마 굿 럭!!의 스폰서를 맡았다.
영화 해피 플라이트 촬영 시에는 보잉 747-400 항공기 1대(등록번호 JA8096)를 15일간 무상 대여하였으며,[125] 하와이행 ANA 항공편의 부기장과 승무원에 대한 영화의 스폰서를 맡았다. 여성 조종사를 다룬 일본 드라마 미스 파일럿에도 등장했다.
포켓몬스터 테마를 적용한 항공기를 운행하기도 했으며, 특정 기간 동안 승객들에게 특별 프로모션 카드를 제공하기도 했다.[126] 2005년 영화 월드 오브 워즈 촬영에는 ANA의 퇴역한 보잉 747-100SR (등록번호 JA8147)가 사용되었으며, 이 비행기 추락 세트는 현재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투어에 전시되어 있다.
日経스페셜 가이아의 여명 대공의 안전을 극한까지! ~여성 파일럿 탄생의 길~(2006년 5월 2일, TV 도쿄)[298], 日経스페셜 캄브리아궁전의 「핀치를 찬스로 바꿔 어려움을 헤쳐나가라!!」(2007년 1월 29일) - 전일본공수(ANA) 대표이사 회장 오하시 요우지 출연[299], 마침내 JAL을 넘어서! 전일본공수(ANA) 쾌진격의 비밀(2016년 11월 10일) - 전일본공수(ANA) 사장 시노베 오사무 출연[300], 테레토 경제 WEEK 제2탄! 1엔이라도 벌어라! 지옥을 본 ANA의 새로운 전략(2023년 12월 14일) - ANA홀딩스 사장 시바타 코우지 출연[301] 등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대공에 건배(1966년 영화), 무지개의 에어포트(1975년~1976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 F 파이널(2008년 영화), 루비콘의 결단(2010년 드라마), 수라지 더 라이징 스타(2012년~2013년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통과하는 길(2024년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거나 협력했다.
6. 자회사 및 제휴 회사
전일본공수(ANA)는 ANA 카고, ANA 윙스, 피치 항공 등 다양한 자회사 및 제휴 회사를 보유하고 있다.[48][54][259]
ANA 그룹 계열사 및 ANA 홀딩스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
ANA 그룹의 화물 서비스 브랜드인 ANA 카고는 2007년 6월 기준 국내 135개 노선, 937편의 항공편을 제공하며, 국제선은 에어재팬을 통해 28개 도시에 주간 700여 편을 운항한다.[49][50][51] 2021년 5월 기준, ANA는 보잉 767-300ER(BCF) 4대와 보잉 777F 2대를 포함하여 총 6대의 화물기를 운영하며 18개의 국제 노선과 6개의 국내 노선을 운항한다.[49]나하 공항에 야간 화물 허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 주요 지역을 연결한다.[49]
ANA 윙스는 2010년 10월 에어닛폰네트워크, 에어 넥스트, 에어 센트럴이 합병되어 재편된 지역 항공사로, 일본 전 지역을 연결하는 국내선을 운영한다.[48]
피치 항공은 일본의 저가 항공사로 2012년 3월부터 국내선을 시작으로 국제선 노선도 확대하고 있으며, 바닐라 에어를 2019년 10월 26일 흡수 합병했다.
일본화물항공(NCA)은 1978년 일본 유센 주식회사와 합작으로 설립되었으나, 2005년 ANA는 모든 지분을 일본 유센 주식회사에 매각하고 현재는 기술만 제휴하고 있다.[57] 2023년 3월, 니혼유센과 ANA홀딩스는 ANA가 NCA의 모든 주식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59][60][61]
이 외에도 에어 두(주요 주주), 필리핀항공(9.5% 주주), 베트남항공(5.62% 주주) 등에 출자하고 있으며,[48] IHG ANA 호텔 그룹 재팬에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올 닛폰 헬리콥터는 일본방송협회(NHK) 전용 항공 서비스를 제공한다.[48]
과거에는 에어아시아 재팬(피치 에비에이션에 통합), 에어 홋카이도(80% 지분, 2006년 3월 31일 운영 중단), ANA & JP 익스프레스(에어 재팬에 합병) 등을 운영했었다.[48]
7. 사건 및 사고
전일본공수는 여러 건의 항공 사고 및 사건을 겪었다. 1958년 8월 12일, 도쿄에서 나고야로 향하던 더글러스 DC-3(JA5045)기가 도쿄 도시마 인근 해상에 추락하여 탑승자 33명 전원이 사망했다.[128] 1960년 3월 16일에는 나고야 고마키 국제공항에서 일본항공자위대 소속 F-86D 세이버 전투기와 DC-3(JA5018)이 충돌하여 DC-3 탑승자 3명, 세이버 전투기 조종사가 사망했다.[130] 1966년 2월 4일, 전일본공수 60편 보잉 727(JA8302)이 도쿄 하네다 공항 접근 중 도쿄 만에 추락해 133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일본 내 모든 여객기에 조종석 음성 녹음장치와 항공기 데이터 기록장치 장착이 의무화되었다.[137] 같은 해 11월 13일, 전일본공수 533편 NAMC YS-11기가 마쓰야마 인근 세토 내해에 추락하여 50명 전원이 사망했다.[138]
1971년 7월 30일, 전일본공수 58편 보잉 727-200(JA8329)이 훈련 중이던 일본항공자위대 F-86F 세이버 전투기와 충돌, 727기 탑승자 162명 전원이 사망하고 F-86 조종사는 탈출하여 생존했다.[139] 1995년 6월 22일에는 전일본공수 857편 납치 사건이 발생, 범인은 체포되었고, 1999년 7월 23일에는 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에서 기장이 살해되었다.[143]
2007년 3월 13일, 전일본공수 1603편 봄바디어 DHC-8-402기가 고치 공항에 동체 착륙했으나, 탑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다.[144][145][146] 2011년 9월 6일, 전일본공수 140편에서 부기장의 조작 실수로 항공기가 급강하하는 사건이 발생, 승무원 2명이 경상을 입었다.[147] 2013년 1월 16일에는 보잉 787 692편이 배터리 문제로 다카마쓰 공항에 비상 착륙했고, 이 사고로 모든 787 항공기가 일시 운항 중지되었다.
2024년 1월 13일, 1182편 보잉 737-800기의 조종석 창문에 금이 가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착륙했다.[148][149]
2005년 이후에도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다. 2005년 5월 5일에는 승무원의 음주로 인한 규정 위반,[314] 2018년 10월 3일에는 파리 지점장의 기내 만취 및 폭행 사건이 있었다.[315] 2019년에는 승무원의 알코올 검출 관련 사건이 여러 건 발생했다.[316][320][321] 2019년 1월 10일에는 승무 중이던 승무원이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과로 및 산업재해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다.[317][318][319] 2020년 1월 3일에는 객실 승무원의 음주로 항공편이 지연되었다.[322] 2021년 3월에는 SITA사 시스템 해킹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고,[323][324] 2023년 4월에는 시스템 장애로 다수의 항공편이 결항 및 지연되었다.[325]
8. 사회 공헌 활동
전일본공수는 스포츠 및 문화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프로축구리그(J리그)의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후원했다. 이 과정에서 전일본공수 스포츠라는 운영 법인을 설립하고, 전일본공수 요코하마 축구 클럽을 지원했다. 그러나 전일본공수 요코하마 축구 클럽 보이콧 사건과 같이 클럽 운영권을 두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후 요코하마 플뤼겔스는 요코하마 F·마리노스와 합병되었고, 전일본공수는 2020년까지 클럽 스폰서로 활동했다. 또한, ANA 오픈 골프 토너먼트를 개최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공식 일본 항공사이기도 하다.[302][303][304] 그 외에도 전일본스키연맹, 일본수영연맹, 일본스케이트연맹, 일본탁구협회, 일본지적장애자탁구연맹, 일본배드민턴협회, 일본배구협회 등 다양한 스포츠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문화 사업으로는 2002년부터 만화 고시엔의 공식 항공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NHK 교향악단의 해외 공연 관련 연계 협정을 체결했다.[305]키자니아와 신국립극장에 ANA 장학금을 지원하고, 전미 벚꽃 축제를 후원하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9. 기타
2024년 6월 24일, 전일본공수는 Skytrax로부터 "세계 최고 공항 서비스" 및 "아시아 최고 항공사 직원 서비스"로 선정되었다. 같은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 객실 승무원" 및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항공사" 부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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