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석
1. 개요
임문석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인물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관료로 활동하며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전라남도 내무국장, 변호사, 대구변호사회 회장,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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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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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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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일제강점기 활동
1927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졸업했으며 193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평안북도 내무부 산업과 속(屬, 1931년 ~ 1933년)과 평안북도 지사관방 속(屬, 1934년)으로 근무했고 1933년 11월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및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4년 8월 28일 평안북도 운산군수, 1935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선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으며 1937년 7월 14일 황해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산업과장, 물산진열관장, 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8년 6월 23일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39년 5월 27일 전라북도 임시국세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 재직 시절에 일어난 중일 전쟁 당시 중국 각지에 파병된 일본군을 위문하는 한편 전라북도 내에서 위문보고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1941년 1월 24일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겸 관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9월 30일 충청남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 산업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43년 12월 1일 충청남도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재직 시절 징병제와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으며 충청남도 광공부장 재직 시절 군수물자 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1944년 11월 22일 전라남도 도사무관 겸 재무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받은 서위는 고등관 3등과 종5위였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1. 주요 관직
1927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졸업하고 1930년 같은 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부터 평안북도 내무부 산업과 속 및 지사관방 속으로 근무했고,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및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4년 평안북도 운산군수, 1935년 평안북도 선천군수, 1937년 황해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산업과장, 1938년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을 역임했다.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 위문 및 위문보고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했고, 1940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겸 관세부장, 1943년 충청남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 산업부장, 광공부장, 1944년 전라남도 도사무관 겸 재무부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당시 고등관 3등과 종5위였다. 광복 후 1945년 전라남도 내무국장, 1947년 변호사로 선임된 뒤 대구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2.2. 친일 행적
임문석은 1927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졸업했으며 193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평안북도 내무부 산업과 속 및 평안북도 지사관방 속으로 근무했고, 1933년 11월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및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4년 8월 28일 평안북도 운산군수, 1935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선천군수로 임명되었다. 1937년 7월 14일 황해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산업과장, 물산진열관장, 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으로, 1938년 6월 23일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 1939년 5월 27일 전라북도 임시국세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으로 있던 중 중일 전쟁 당시 중국에 파병된 일본군을 위문하고 전라북도 내에서 위문보고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1월 24일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겸 관세부장, 1943년 9월 30일 충청남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 산업부장, 1943년 12월 1일 충청남도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으로 있을 때 징병제와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글을, 충청남도 광공부장 시절에는 군수물자 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1944년 11월 22일 전라남도 도사무관 겸 재무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고등관 3등과 종5위에 서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전라남도 내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1947년 변호사로 선임된 뒤부터 대구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50년 민주국민당 경상북도 도당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52년 경북대학교 연합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4대와 제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66년 신한당 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된 것은 그의 일제 강점기 행적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보여준다.
3.1. 정계 활동
1927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졸업했으며 193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평안북도 내무부 산업과 속(屬, 1931년 ~ 1933년)과 평안북도 지사관방 속(屬, 1934년)으로 근무했고 1933년 11월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및 사법과에 합격했다.
1934년 8월 28일 평안북도 운산군수, 1935년 11월 27일 평안북도 선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으며 1937년 7월 14일 황해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산업과장, 물산진열관장, 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8년 6월 23일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39년 5월 27일 전라북도 임시국세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전라북도 도이사관 겸 내무부 지방과장 재직 시절에 일어난 중일 전쟁 당시 중국 각지에 파병된 일본군을 위문하는 한편 전라북도 내에서 위문보고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1941년 1월 24일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겸 관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9월 30일 충청남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 산업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43년 12월 1일 충청남도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광주세무감독국 사무관 재직 시절 징병제와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으며 충청남도 광공부장 재직 시절 군수물자 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1944년 11월 22일 전라남도 도사무관 겸 재무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받은 서위는 고등관 3등과 종5위였다. 광복 이후인 1945년 전라남도 내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1947년 변호사로 선임된 뒤부터 대구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50년 민주국민당 경상북도 도당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52년 경북대학교 연합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4대와 제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66년 신한당 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2. 기타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전라남도 내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1947년 변호사로 선임된 뒤부터 대구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50년 민주국민당 경상북도 도당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52년 경북대학교 연합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4대와 제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66년 신한당 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4. 평가
5. 역대 선거 결과
임문석은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경북 영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13,036표(44.15%)를 얻어 2위로 낙선했다. 1958년 제4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경북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13,677표(38.44%)를 얻어 당선되었으나, 당선재결정으로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총선에서는 같은 선거구에서 20,750표(53.61%)를 득표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1963년 제6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경북 대구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11,388표(23.58%)를 얻어 2위로 낙선했다. 1967년 제7대 총선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24,534표(41.65%)를 얻어 2위로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