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베크 칸 (카자흐 칸국)
1. 개요
자니베크 칸은 15세기 중반, 카자흐 칸국을 건국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조치 울루스 좌익 오르다 울루스 휘하의 토카 테무르 가문 출신으로, 아불 하이르 칸의 우즈베크 세력에 대항하여 케레이와 함께 카자흐인들을 이끌고 모굴리스탄 칸국으로 이동했다. 에센 부카는 그들을 받아들여 추 강 유역에 정착하도록 지원했고, 이는 카자흐 칸국의 기반이 되었다. 자니베크는 지혜를 인정받아 "Äz"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그의 아들 카심 칸은 카자흐인의 법률을 성문화했다. 그의 후손들은 카자흐 칸국의 당주로 대대로 이어졌고, 18세기에는 히바 칸국의 당주로 초청받기도 했다.
-
1480년 사망 -
정현옹주
세종의 서녀인 정현옹주는 1436년 윤사로와 혼인하여 영천군부인이 되었고, 윤반과 윤린을 낳았다. -
1480년 사망 -
김국광
김국광은 조선 초 세조의 측근 문신으로, 《경국대전》 편찬에 기여하고 이시애의 난 토벌에 공을 세워 광산군에 봉해졌으며, 병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후 불천지위의 은전을 받았다. -
카자흐스탄의 역사 -
알라시 자치국
알라시 자치국은 1917년 카자흐족이 세운 자치 국가로,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과 연합했으나 1920년 소련 정부에 의해 해산되고 키르기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
카자흐스탄의 역사 -
사르마티아인
사르마티아인은 기원전 7~8세기 우랄산맥 남쪽에서 발생하여 흑해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4세기까지 세력을 유지했던 이란계 유목 민족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자니베크는 조치 울루스 좌익 오르다 울루스 휘하의 토카 테무르 가문에 속하는 왕족이었다. 그의 증조부 오로스 칸은 14세기 후반 조치 울루스의 당주가 되어 울루스를 우익·청장, 좌익·백장으로 재편한 인물이다. 오로스 칸 가문의 사람들은 티무르의 후원을 받은 토크타미쉬 등과 조치 울루스의 가독을 둘러싼 다툼을 벌였다. 그의 백부 토크타키야, 조부 쿠유르추크, 부친 바라크도 칸을 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중반, 조치 울루스의 시반 가문에서 발흥한 우즈베크인의 수장 아불 하이르 칸은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자니베크는 오로스 칸의 증손으로, 케레이와 함께 카자흐 분열파를 이끌고 우즈베크의 영향을 피해 킵차크 초원의 동쪽, 모굴리스탄으로 이동했다.
자니베크 등은 에센 부카 치하의 모굴리스탄 칸국으로 도망쳤으며, 에센 부카는 이들을 받아들여 추 강 유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것이 후일 카자흐 칸국의 기초가 되었다. 아불 하이르 칸이 죽은 후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자니베크에게 의탁하여 그의 세력은 200,000명에 달했다. 1468년에는 아불 하이르 칸의 후계자인 샤이크 하이다르를 격파하고 전사시켰다.
그의 지혜로움은 현자를 뜻하는 "Äz"라는 칭호로 칭송받았다. 그의 아들 카심 칸은 카자흐인의 법률을 성문화하였다. 현대 카자흐스탄에서는 자니베크와 케레이의 동방 이주를 카자흐 민족 형성과 독립의 중요한 계기로 평가한다. 다만, 15세기 후반 당시 조치 울루스 기원의 여러 집단에게 현재와 같은 "카자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학계의 의견도 존재한다.
카자흐 칸국에서 공동 창설자인 케레이의 왕통은 다음 대인 부룬두크까지였지만, 자니베크의 왕통은 대대로 카자흐 칸국의 칸위를 계승했다. 18세기에는 히바 칸국의 칸으로 추대되기도 했으며, 19세기 보케이 칸국 시대까지 이어졌다.
2.1. 가계와 배경
자니베크는 조치 울루스 좌익 오르다 울루스 휘하의 토카 테무르 가문에 속하는 왕족이었다. 그는 토카 테무르의 아들 울룬 테무르의 아들 아지키의 후손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토카 테무르 가문 출신 설과 함께 오르다 가문 출신 설이 병기되는 경우도 많다. 그의 증조부 오로스 칸은 14세기 후반 바투 가문, 오르다 가문이 단절된 혼란기에 조치 울루스의 당주가 되어 울루스를 우익·청장, 좌익·백장으로 재편한 인물이다. 오로스 칸 가문의 사람들은 티무르의 후원을 받은 토크타미쉬나 같은 토카 테무르 가문의 샤디 베크 등과 조치 울루스의 가독을 둘러싼 다툼을 벌였다. 그의 백부 토크타키야, 조부 쿠유르추크, 부친 바라크도 칸을 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2.2. 카자흐 칸국 건국
15세기 중반, 조치 울루스의 시반 가문에서 발흥한 우즈베크인의 수장 아불 하이르 칸은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했으며, 남부의 티무르 왕조나 모굴리스탄 칸국에도 점차 압력을 가했다. 자니베크는 오로스 칸의 증손으로, 케레이와 함께 카자흐 분열파를 이끌고 우즈베크의 영향을 피해 킵차크 초원의 동쪽, 모굴리스탄으로 이동했다.
자니베크 등이 이동한 시기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에센 부카 치하의 모굴리스탄 칸국으로 도망쳤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에센 부카는 이들을 받아들여 추 강 유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것이 후일 카자흐 칸국의 기초가 되었다.
아불 하이르 칸이 죽은 후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자니베크에게 의탁하여 그의 세력은 200,000명에 달했다. 1468년에는 아불 하이르 칸의 후계자인 샤이크 하이다르를 격파하고 전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