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화석공주
1. 개요
장경화석공주는 건륭제 치세인 1781년에 가경제와 화유황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8년 귀족 박이제길특 색특납목다포제와 결혼했으며, 1811년 천연두로 30세에 사망했다. 자녀는 없었으며, 사후 7년 뒤 7촌 시조카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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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
숙가황귀비
숙가황귀비 김씨는 조선 출신으로 건륭제의 후궁이 되어 네 아들을 낳았고, 사후 황귀비로 추봉되었으며, 그녀의 아들들은 청나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녀의 가문은 가경제 때 만주 성씨를 하사받았으며, 현대 대중 문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
건륭제 -
철민황귀비
철민황귀비는 건륭제의 황귀비로, 건륭제의 측실 시절 첫째 아들 영황을 낳았으며 사후 철비로 추증되었다가 황귀비로 재추증되어 철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1811년 사망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활동한 독일의 극작가, 소설가, 시인으로,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남겼으며 사회적 고립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20세기 초에 재평가되어 천재적인 극작가로 인정받았다. -
1811년 사망 -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은 프랑스 군인이자 탐험가, 과학자, 작가로서 프랑스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수행하고 『세계 일주기』를 출판하여 폴리네시아를 묘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이름은 부겐빌레아 식물과 부겐빌 섬에 기념되고 해양 탐험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점이 평가받는다. -
화석공주 -
화석화가공주
화석화가공주는 청나라 건륭제의 딸로, 부찰 부항의 차남 복륭안과 혼인했으며 23세에 사망했고, 소설 《황제의 딸》의 하자미의 모티브가 되었다. -
화석공주 -
화석각순장공주
숭덕제의 딸인 화석각순장공주는 순치제의 명으로 오삼계의 아들 오응웅과 정략 결혼하여 건녕장공주로 봉해졌다가 후에 개칭되었으며, 오삼계의 난 이후 남편과 장남이 처형되는 비극을 겪었지만 강희제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은 정치적 격변기 황족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생애
장경화석공주는 1781년 12월 17일 할아버지 건륭제 치세 때 아버지 가경제와 그의 측실인 화유황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6년 아버지 가경제가 건륭제의 선위(禪位)를 받아 보위에 올랐으며, 1798년 할아버지 건륭제 생전에 2년 연하의 귀족 자제 박이제길특 색특납목다포제(博爾濟吉特 索特納木多布濟)와 결혼하였다.
1811년 3월 12일 천연두로 30세에 사망하였으며,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사후 7년이 지난 1818년 그녀의 7촌 시조카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이 7세 나이로 가경제로부터 명첩(命牒)을 받고 공주 부부에게 양자 입후(養子 入後)되었다.
2.1. 출생과 혼인
1781년 12월 17일, 할아버지 건륭제의 치세 때 아버지 가경제와 그의 측실인 화유황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6년 아버지 가경제가 건륭제의 선위(禪位)를 받음으로써 보위에 올랐으며, 1798년 할아버지 건륭제의 생전에 2년 연하의 귀족 자제 박이제길특 색특납목다포제(博爾濟吉特 索特納木多布濟)와 결혼하였다.
2.2. 요절과 양자 입적
1811년 3월 12일에 천연두 발병으로 인하여 향년 30세로 사망하였으며,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사후 7년이 지난 1818년 그녀의 7촌 시조카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이 당시 7세의 나이에 가경제로부터 명첩(命牒) 하달을 받고 공주 부부에게 양자 입후(養子 入後)되었다.
3. 가계
가경제(嘉慶帝)의 딸로, 어머니는 화유황귀비(和裕皇贵妃)이다. 1798년 박이제길특 색특납목다포제(博爾濟吉特 索特納木多布濟)와 결혼하였다. 1811년 사망 당시 자녀가 없었으며, 1818년 보르지기트 셍게린첸(博爾濟吉特 僧格林沁)이 양자로 입적되었다.
3.2. 배우자
1798년 할아버지 건륭제의 생전에 2년 연하의 귀족 자제 박이제길특 색특납목다포제(博爾濟吉特 索特納木多布濟)와 결혼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사후 7년이 지난 1818년 그녀의 7촌 시조카 보르지기트 셍게린첸(博爾濟吉特 僧格林沁)이 당시 7세의 나이에 가경제로부터 명첩(命牒)을 하달받고 공주 부부에게 양자 입후(養子 入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