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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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숙은 후한 말 유장 휘하의 광한태수를 지낸 인물로, 동생 장송이 유비를 주군으로 삼으려 하자 유장에게 밀고하여 장송이 처형당하게 했다. 장송의 밀고 이후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유비를 섬긴 장표가 장숙의 아들인지 장송의 아들인지에 대한 기록이 엇갈린다. 또한, 유비가 장송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구절을 근거로 장숙의 자(字)가 '군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장숙은 후한 시대 사람으로, 동생 장송과는 달리 용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위엄이 있었다. 익주자사 유장 밑에서 광한태수를 지냈으며, 조조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어 광한 태수 관직을 받기도 했다.[1]
《화양국지》에 기록된 유비의 발언을 근거로, 장숙의 자(字)가 '군교(君矯)'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장숙의 밀고로 장송이 죽은 후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8]
2. 생애
건안 18년(213년), 장송이 유장을 몰아내고 유비를 새로운 주군으로 맞이하려 하자, 장숙은 이 사실을 유장에게 알렸다. 유장은 장송을 잡아 처형했다.[2] 장숙은 동생 장송이 법정과 함께 유비를 익주로 불러들이는 계획을 세웠고,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유장에게 밀고한 것이었다.[3][2]
장송이 처형된 후 장숙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비를 섬긴 장표는 『익부기구전』에는 장숙의 아들, 『화양국지』에는 장송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4]
2. 1. 용모와 초기 관직
동생 장송과는 달리 용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위엄이 있었으며, 유장 밑에서 광한태수를 지냈다.[6] 유장을 섬기며 조조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어 광한태수 관직을 받았다.[1][2]
2. 2. 장송의 배반과 밀고
건안 18년(213년), 장송이 유장을 축출하고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려 하자 장숙은 이를 유장에게 알렸다.[2] 유장은 곧바로 장송을 붙잡아 처형하였다.[2]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62회에 등장한다. 유비가 익주에 들어와 유장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철수하겠다고 알렸는데, 유비에게 내응하고 있던 장송이 이를 만류하는 편지를 썼고, 장숙은 이 편지를 입수하여 동생의 배반을 유장에게 밀고했다.
2. 2. 1. 밀고의 배경
장송은 조조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나, 연전연승하던 조조에게 존중받지 못했다[1]。장송은 이에 분노했고, 평소부터 유장의 그릇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법정과 함께 익주에 유비를 맞이하는 계획을 진행했다[3]。이 계획을 알게 된 장숙은 자신에게 재앙이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유장에게 밀고했다[2]。
2. 3. 이후 행적과 평가
장송이 처형된 이후 장숙의 행적은 불분명하다.[2] 이후 유비를 섬긴 장표는 『익부기구전』에 따르면 장숙의 아들이며, 『화양국지』에 따르면 장송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4]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62회에 등장한다. 이미 익주에 들어와 있던 유비는 유장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철수하겠다고 알렸는데, 유비에게 내응하고 있던 장송도 이를 믿고 만류하는 편지를 썼다. 장숙은 이 편지를 입수하여 동생의 배반을 유장에게 밀고했다.
3. 장숙의 자(字)에 대한 논란
君矯殺吾內主乎|군교살오내주호중국어
이 문장은 '''君矯 / 殺 / 吾 / 內主 / 乎'''로 끊어 "군교(君矯)가 내 내주[7]를 죽였구나!"라고 해석하여 '군교'를 장숙의 자로 보기도 하고, '''君 / 矯殺 / 吾 / 內主 / 乎'''로 끊어 "군(君)이 내 내주를 교살(絞殺)[9]하였구나!"라고 해석하여 장숙의 자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3. 1. '군교(君矯)'로 보는 견해
《화양국지》에 따르면, 장송이 죽은 후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교(君矯)가 내 내주[7]를 죽였구나!"
이 문장은 '군교(君矯)'를 장숙의 자로 보는 견해이다.
3. 2. '군교(君矯)'가 아니라는 견해
《화양국지》에 따르면, 장숙의 밀고로 장송이 죽은 후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8]
君矯殺吾內主乎|군교살오내주호중국어
이 문장은 대개 '''君矯 / 殺 / 吾 / 內主 / 乎'''로 끊어 "군교(君矯)가 내 내주[7]를 죽였구나!"라고 해석하며, '군교'를 장숙의 자로 본다.
그러나 '''君 / 矯殺 / 吾 / 內主 / 乎'''로 끊어 "군(君)이 내 내주를 교살[9]하였구나!"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러할 경우 장숙의 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된다.
4. 가계
장숙은 후한 시대 인물로, 유장 밑에서 광한태수(廣漢太守)를 지냈다.[5] 동생 장송과는 달리 용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위엄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 | 장숙(張肅) |
---|---|
시대 | 후한 |
자 | 군교(君矯)?[6] |
본관 · 출신 | 익주 촉군 성도현[5] |
관직 | 광한태수(廣漢太守)〔유장〕 |
건안 18년(213년), 장송이 유장을 축출하고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려 하자 이를 유장에게 알렸다. 유장은 곧바로 장송을 붙잡아 처형하였다.
4. 1. 친족 관계
장송은 장숙의 동생이다.[2]4. 2. 아들 장표에 대한 기록
《익부기구전》과 《화양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장표가 장숙의 아들인지, 장송의 아들인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전해진다.[4]참조
[1]
서적
三国志
[2]
서적
三国志
[3]
서적
三国志
[4]
서적
三国志
[5]
서적
화양국지(華陽國志)
[6]
문서
장숙의 자
[7]
문서
내주(內主)
[8]
문서
[9]
문서
교살(矯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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