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영
1. 개요
정극영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1094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1104년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문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예종 때 서경유수판관, 예부원외랑 등을 거쳐 1116년 보문각직학사가 되었고, 이후 국자좨주와 중서사인 등을 역임하며 왕에게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 1122년 인종 즉위 후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나, 이자겸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복직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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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년 사망 -
리 인종
리 인종은 1066년부터 1127년까지 리 왕조를 통치한 제4대 황제이며, 7세에 즉위하여 친정을 시작하고 과거 제도를 시행하며 국자감을 설립하는 등 교육과 농업 발전에 힘썼다. -
1127년 사망 -
미나모토노 요시미쓰
미나모토노 요시미쓰는 헤이안 시대 후기의 무장으로, 가와치 겐지의 일족이자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의 아들이며, 신라 사부로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후삼년의 역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가이 겐지의 시조로서 여러 무가 가문의 선조이자 무예와 음악에 능통했으며, 대동류 합기유술의 개조로 여겨진다. -
고려의 문신 -
윤곤
윤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건국 후 완산부윤, 대장군 등을 지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명나라 사신, 의정부 참찬,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신, 무신, 정치인, 외교관이다. -
고려의 문신 -
태조 (조선)
2. 생애
정극영은 젊어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며 공부를 좋아했다. 1120년(예종 15) 국자좨주·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된 후 왕에게 신하들을 두루 만나 간언을 들을 것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렸다.
2.1. 초기 생애와 과거 급제
1094년(선종 11)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1104년(숙종 9) 추밀원사(樞密院使) 최홍사(崔弘嗣)를 따라 송에 들어갔는데, 문장에 뛰어났기에 저술로써 중국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106년(예종 2) 내인(內人)으로서 사천소감(司天少監) 최자현(崔資賢), 태사령(太史令) 음덕전(陰德全)·오지로(吳知老), 주부동정(注簿同正) 김위제(金謂磾) 등과 함께 서경(西京)에 가서 용언(龍堰)의 옛터를 보고 돌아왔다.
그 후 서경유수판관(西京留守判官)·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역임하다가, 1116년(예종 11)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정극영(鄭克永)으로 개명했다.
2.2. 송나라 파견과 외교 활동
1104년(숙종 9) 추밀원사(樞密院使) 최홍사(崔弘嗣)를 따라 송에 들어가 문장이 뛰어나 저술로 중국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118년(예종 13) 이지미(李之美)와 함께 송에 가서 송나라 황제가 친히 고려 유학생 권적(權適, 1094년 ~ 1147년) 등에게 제과(制科)를 베풀고 어필(御筆)과 조서(詔書)를 하사한 데 대하여 사례했다.
2.3. 관직 생활과 간언
1118년(예종 13) 이지미(李之美)와 함께 송에 가서, 송나라 황제가 고려 유학생 권적(權適, 1094년 ~ 1147년) 등에게 제과(制科)를 베풀고 어필(御筆)과 조서(詔書)를 하사한 데 대하여 사례했으며, 이듬해 국자좨주(國子祭酒)·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120년(예종 15) 국자좨주·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임명되었는데, 왕에게 신하들을 두루 만나 간언을 들을 것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같은 해 청연각(淸讌閣)에서 왕에게 『예기 禮記』의 월령편(月令篇)을 강론했고, 1122년(인종 즉위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2.4. 실록 편찬과 유배
1122년(인종 즉위년) 인종이 즉위하자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박승중(朴昇中),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 김부식(金富軾)과 함께 편수관(編修官)에 임명되어 『예종실록』 편찬을 지시받았다. 얼마 후 보문각학사로 옮겼으나, 한안인(韓安仁)의 이종4촌 동생이라는 이유로 이자겸(李資謙)에게 미움을 받아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자겸이 패망한 후인 1127년(인종 5) 소환되어 동경 유수(東京留守)로 복직되었고, 얼마 후 판위위시사(判尉衛寺事)·한림학사(翰林學士)·지제고(知制誥)로 옮겼으나, 그 해에 61세로 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