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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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비 신씨는 고려 우왕의 총애를 받은 구비삼옹주 중 한 명으로, 판사를 지낸 신아의 딸이다. 평산 신씨이며, 신아는 전리판서 신집의 손자이자 이부상서 신익지의 아들이다. 1388년 우왕의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우왕이 폐위된 후 사가로 쫓겨났다. 우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으며, 이후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정비 신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
재위1385년 ~ 1388년
배우자우왕
자녀없음
왕조고려
아버지신아
출생일미상
사망일미상
매장지미상
국적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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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계

정비 신씨는 고려 말 우왕의 후궁으로 구비삼옹주 중 한 명이다. 아버지는 신아이며, 본관평산 신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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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관계
신중명(申仲明)고조부
신집(申諿)증조부
신익지(申翼之)조부
신아(申雅)아버지
우왕남편

2.1. 가계 개관

우왕의 후궁으로, 구비삼옹주 중 한 명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지낸 신아이며, 본관평산 신씨이다. 신아는 전리판서 등을 지낸 신집의 손자이자 이부상서 신익지의 아들이다. 신아는 1357년(공민왕 6년)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이 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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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인물
| 도관직랑 좌대언(정3품) 신중명(申仲明)
| 봉익대부(종2품) 전리판서 수문전 대제학(종2품) 신집(申諿)
| 영록대부(종2품) 이부상서 신익지(申翼之)
| 신아(申雅, 생몰년 미상)
| 우왕(禑王, 1365~1389, 재위:1374~1388)

2.2. 상세 가계도

* 고조부 : 신중명(申仲明) - 고려 도관직랑 좌대언(정3품)
* 증조부 : 신집(申諿) - 고려 봉익대부(종2품) 전리판서 수문전 대제학(종2품)
* 조부 : 신익지(申翼之) - 고려 영록대부(종2품) 이부상서
* 아버지 : 신아(申雅, 생몰년 미상)
** 남편 : 제32대 고려 우왕(禑王, 1365~1389, 재위: 1374~1388)

3. 생애

우왕은 1385년(우왕 11년) 음력 10월 아버지 신아의 집에 행차했다가 정비 신씨를 처음 만났고, 이후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1388년(우왕 14년) 음력 3월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같은 해 음력 6월 우왕이 폐위되면서 사가로 쫓겨났다. 아버지 신아는 유배되었다가 잠시 풀려나기도 했으나, 1391년(공양왕 3년) 음력 5월 다시 개경에서 추방되었다. 정비 신씨는 우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지 못했으며, 이후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3.1. 왕비 이전

고려 말 우왕의 총애를 받은 구비삼옹주 중 한명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지낸 신아이며, 본관평산이다. 신아는 전리판서 등을 지낸 신집의 손자이자 이부상서 신익지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년) 신아가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이 되면서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3.2. 왕비 시절

1385년(우왕 11년) 음력 10월 우왕이 신아의 집에 행차하였는데, 이때 우왕이 신아의 딸을 취하게 되었다. 이어 같은 달에 신씨를 정식으로 맞아들이고, 우왕은 몇 번이고 신아의 집에서 머물렀다.

1387년(우왕 13년) 음력 8월 동지밀직사사(종2품)에까지 오른 신아는 본인과 그 가족들이 남의 땅을 불법으로 빼앗는 바람에 우왕으로부터 유배형에 처해져 각산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의 딸은 바로 이듬해인 1388년(우왕 14년) 음력 3월 영비 최씨, 선비 왕씨 등과 함께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어 정비(正妃)가 되었다. 한편 정비 등이 책봉될 당시 우왕의 후비들에게 들어가는 물자가 지나치게 많아 국가의 창고가 바닥났을 뿐 아니라, 3년분의 공물을 미리 걷어도 부족해 결국에는 세금을 불법적으로 더 걷어들이는 등 그 폐단이 심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3. 우왕 폐위 이후

1388년(우왕 14년) 음력 6월, 우왕이 폐위되고 근비 이씨 소생의 창왕이 즉위하면서 근비를 제외한 우왕의 후비들은 모두 사가로 쫓겨났다. 정비 신씨 역시 사가로 쫓겨났으며, 모든 후비의 아버지들은 원지로 유배되었고 생활비 지급도 모두 끊어졌다. 아버지 신아 등은 두 달 뒤인 음력 8월 7일 창왕의 생일을 맞아 유배지에서 풀려났으나, 1391년(공양왕 3년) 음력 5월 공양왕이 신아를 비롯한 우왕 후비들의 아버지들을 개경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는 허응의 건의를 받아들여 다시 유배되었다.

이후 정비 신씨의 생애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으며, 우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