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탁 (후한)
1. 개요
정탁은 후한 말 유장의 휘하 종사로, 유비의 익주 공략 당시 초토작전을 유장에게 건의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파서와 자동의 백성을 이동시키고 곡식을 불태워 수비를 강화하자는 계책을 제시했으나, 유장은 백성을 괴롭힌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며, 《화양국지》에서는 유장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며, 일본에서는 유장의 결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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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중국 사람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3세기 중국 사람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유
위유는 후한 말 유우의 동조연으로,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할 때 만류했으며 이민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을 건의했으나 193년에 병사한 인물이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한나라 사람 -
하묘
후한 말기 하진의 이복 형제인 하묘는 도살업에 종사하다가 여동생이 황후가 되면서 등용되어 관직을 역임했지만, 환관 문제로 하진과 대립하다가 하진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동탁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었다. -
한나라 사람 -
최원 (후한)
2. 생애
212년 유비가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익주를 공격하자, 213년 정탁은 유비군이 본거지에서 멀리 떠나왔고 군사 물자가 별로 없는 것을 이용해 파서와 자동의 백성들을 옮기고 성 바깥의 곡식을 불태운 다음 농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유장은 백성들을 괴롭게 한다는 이유로 정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1. 유비의 익주 침공과 청야전술 제안
212년 유비가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익주를 공격하자, 213년 정탁은 유비군이 본거지에서 멀리 떠나왔고 군사 물자가 별로 없는 것을 이용해 파서와 자동의 백성들을 옮기고 성 바깥의 곡식을 불태운 다음 농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유장은 백성들을 괴롭게 한다는 이유로 정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장은 "적을 막고 백성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백성을 이동시켜 적을 피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정탁의 초토작전 제안을 거부했다. 유비 또한 정탁의 계책을 듣고 두려워했지만, 법정이 "채택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고, 그대로 되었다.
2.2. 유장의 결정에 대한 평가
212년 유비가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익주를 공격하자, 213년 정탁은 유비군이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 물자가 부족한 점을 이용해 파서와 자동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성 밖의 곡식을 불태운 후 농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장은 백성들을 괴롭게 한다는 이유로 정탁의 제안을 거부했다. 유비 또한 정탁의 계책을 듣고 두려워했으나, 법정이 "채택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고, 그대로 되었다.
『화양국지』 권10 "광한사녀(広漢士女)"에는 정탁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바른 논리를 진언하고 성실한 헌책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진규, 충모막수(進規、忠謀莫受)")"라고 평가하며, 유장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사료와 동일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나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삼국지』에서도 이 장면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백성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오히려 유장의 결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2.3. 그 후의 행적
유비의 익주 공략 이후 정탁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화양국지』 권10 "광한사녀(広漢士女)"에는 정탁의 사적이 기재되어 있으며, "바른 논리를 진언하고 성실한 헌책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진규, 충모막수(進規、忠謀莫受)")"라고 평하며, 유장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사료와 동일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나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삼국지』에서도 이 장면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백성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오히려 유장의 결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