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옹주
1. 개요
정화옹주는 조선 선조와 온빈 한씨의 딸로, 1604년에 태어났다. 벙어리였고 지각이 늦어 혼기가 늦어졌으나, 인조 때 부마 간택을 거쳐 1630년 권대항에게 하가했다. 1666년 남편과 사별하고, 이듬해 64세로 사망했으며, 자녀가 없어 조카 권덕휘를 후사로 삼았다. 권대항과 함께 양주 오등관곡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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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년 사망 -
교황 알렉산데르 7세
알렉산데르 7세는 1655년부터 1667년까지 재위한 교황으로, 로마 도시 계획과 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중국 전통 의례를 허용했으며 얀센주의를 비판하며 금서 목록을 발행했다. -
1667년 사망 -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스위스 출신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로마에서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하학적 구성의 건축물들을 남겼으나, 잔 로렌초 베르니니와의 경쟁과 격정적인 성격으로 자살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의 옹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옹주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2. 생애
1604년(선조 37년) 선조와 온빈 한씨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벙어리였고 지각이 없어 혼인이 늦어졌다. 1629년(인조 7년) 인조의 명으로 1630년(인조 8년) 동지중추부사 권익중의 아들 권대항과 혼인하였다. 권대항은 정화옹주의 이복언니 정선옹주의 남편 권대임의 재종동생이었다.
1666년(현종 7년) 남편과 사별하고, 이듬해인 1667년(현종 8년) 64세로 사망하였다. 자식이 없어 조카 권덕휘를 후사로 삼았으며, 남편과 합장되었다.
2.1. 출생과 혼인
1604년(선조 37년) 2월 22일, 선조와 온빈 한씨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벙어리였고 지각이 없어 혼기가 지나도록 혼인하지 못하였다.
1629년(인조 7년) 인조가 "왕녀로서 배필이 없을 수 없다"하여 예조에 정화옹주의 부마를 간택하도록 했다.
1630년(인조 8년), 동지중추부사 권익중의 아들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에게 하가하였다. 권대항은 이복언니 정선옹주의 남편 권대임의 재종동생이었다.
1666년(효종 7년) 남편 권대항과 사별하였다. 정화옹주 또한 다음해인 1667년(효종 8년) 9월 24일, 향년 64세에 졸하였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카 한산군수 권덕휘(權德徽)를 후사로 삼았다. 양주(楊州) 오등관곡(於登寬谷)의 언덕에 권대항과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