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군
1. 개요
영성군은 조선 선조와 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로, 1606년에 태어났다. 인조 재위 기간에 종의 비행과 본인의 불참 등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으며, 1649년에 4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효경의 시호를 받았다. 부인은 창원 황씨이며, 회원군 등을 자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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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1606년 출생 -
샤쿠샤인
샤쿠샤인은 17세기 중반 홋카이도 히다카 지방의 메나시쿨 집단 소을명으로, 마쓰마에 번의 착취에 저항하여 1669년 봉기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고, 그의 봉기는 아이누 민족 저항과 마쓰마에 번의 억압적 지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념되고 있다. -
1606년 출생 -
윤문거
윤문거는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효종 때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성리학에 비판적인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
조선의 왕족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왕족 -
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2. 생애
영성군 이계(㻑중국어)는 1606년(선조 39년) 음력 12월 24일 선조와 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이, 이름은 계(㻑), 본관은 전주이다. 흥안군, 경평군, 정화옹주의 친동생이며, 광해군, 정원군과는 이복 형제이다.
1632년(인조 10년) 음력 6월 15일 영성군의 종이 무단으로 감옥에 들어가 갇혀있던 죄수들을 시켜 관원들을 욕보이게 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대간들은 영성군의 종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인조는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갔다. 이듬해 인목왕후 연제에는 경평군과 함께 병을 핑계로 불참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인조의 배려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1649년(효종 원년) 4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있다. 사후 효경(孝景)의 시호를 받았다.
2.1. 출생과 가계
영성군 이계(㻑중국어)는 1606년(선조 39년) 음력 12월 24일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와 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이, 이름은 계(㻑), 본관은 전주이다. 흥안군, 경평군, 정화옹주의 친동생이며, 광해군, 정원군과는 이복 형제이다.
2.2. 논란과 사망
1632년(인조 10년) 음력 6월 15일 영성군의 종이 무단으로 감옥에 들어가 갇혀있던 죄수들을 시켜 관원들을 욕보이게 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대간들은 영성군의 종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인조는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갔다. 이듬해 인목왕후 연제에는 경평군과 함께 병을 핑계로 불참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인조의 배려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1649년(효종 원년) 4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있다. 사후 효경(孝景)의 시호를 받았다.
3. 가족 관계
창원 황씨(昌原 黃氏) 황이중(黃履中)의 딸과 혼인하여 딸 둘과 적자 회원군을 낳았고, 노비 출신 측실인 승춘에게서 서자 회천도정 이선을 낳았다. 정부인 황씨는 회산군부인(檜山郡夫人)에 봉해졌다.
3.1. 왕실과의 관계
* 부왕 : 제14대 선조 (1552 ~ 1608, 재위 : 1567 ~ 1608)
* 생모 : 온빈 한씨 (1581 ~ 1664)
* 형 : 흥안군 이제 (1598 ~ 1624)
* 형 : 경평군 이륵 (1600 ~ 1673)
* 누나 : 정화옹주 (1604 ~ 1667)
* 정부인 : 회산군부인 창원 황씨 - 황이중(黃履中)의 딸
| 구 분 | 성 명 | 출생 | 사망 | 비 고 |
|---|---|---|---|---|
| 적장녀 | 이덕이(李德伊) | 1629년 | ? | 전의 이씨 이양원(李養源)에게 출가, 양외손자 이만익(李萬榏) |
| 적차녀 | 전주 이씨 | 1633년 | ? | 남양 홍씨 홍수범(洪受範)에게 출가, 외손자 홍우협(洪禹協, 1655 ~ ?), 홍우채(洪禹采, 1658 ~ ?), 외손녀 여흥 민씨 민사성(閔思誠)의 처(1663 ~ ?) |
| 적장남 | 회원군 이윤(李倫) | 1636년 | 1731년 | 며느리 함풍군부인(咸豊郡夫人) 함평 이씨는 이초로(李楚老)의 딸, 친손자 이규령(李奎齡, 1654 ~ 1664) |
| 측실(노비) | 승춘(承春) | |||
| 서장남 | 회천도정 이선(李僎) | 1645년 | ? | 며느리 함평 이씨는 함릉부원군(咸陵府院君) 이해(李澥)의 서녀, 손녀 이영애(李穎愛, 1665 ~ ?), 이우애(李又愛, 1667 ~ ?), 이남징(李男徵, 1669 ~ ?), 이우징(李又徵, 1674 ~ ?) |
* 적장남 회원군 이윤(李倫)의 양손자 : 함평군(咸平君) 이홍(李泓, 1675 ~ 1738)
3.2. 배우자와 자녀
夫人중국어 창원 황씨 황이중(黃履中)의 딸과 결혼하여 딸 2명과 적자 회원군을 낳았으며, 노비 출신 측실인 승춘에게서 서자 회천도정 이선을 낳았다. 정부인 황씨는 회산군부인(檜山郡夫人)에 봉해졌다.
4. 후손
회원군은 1636년에 태어나 영조 재위 기간까지 살면서 사옹원, 종친부, 도총부 등에서 관직을 두루 거쳤다. 1724년(영조 즉위년) 회원군의 나이가 90세에 가까워지자 영조는 그의 손자들을 가자하였고, 1731년(영조 7년) 음력 8월 6일 96세로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관으로 쓸 재료와 3년분의 녹미를 지급하였다.
회원군은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세종의 5남 광평대군의 7대손을 양자로 들여 함평군에 봉하여 후사를 이었다. 함평군은 아들을 6명이나 두었으나, 현재 영성군파는 총 200세대 미만으로 그 수가 적은 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재항 등이 영성군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