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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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양 조씨는 고려 시대 조지수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조지수는 덕원부 용진현에 세거하며 고려 시대에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후손들은 고려 말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한양 조씨는 조선 시대에 분파되었으며, 주요 본관은 서울특별시의 옛 지명인 한양이다. 한양 조씨는 조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대한민국에 33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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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한양 조씨(漢陽 趙氏)는 서울특별시의 옛 지명인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시대 인물이다.
조선 건국 이후, 조돈의 증손들은 조선 태조의 처남을 비롯하여 조선 개국 공신으로 활약하였다. 조인벽은 사도도지휘사, 조인경(仁瓊)은 검찬성, 조인규는 검한성을 지냈다. 조인옥(仁沃)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내고 태조묘에 배향되었다. 조선 개국공신 조온(溫)은 찬성사, 좌명공신 조연(趙涓)은 우의정, 조사(趙師)는 첨지중추원사를 지냈다.
한양은 백제 근초고왕 때 한산으로 불렸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점령당했다. 이후 신라 진흥왕 때 신주, 한산주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한주, 한양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주목, 남경, 한양부 등으로 불렸고, 조선 태조 때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성부로 개칭되었다. 1910년 경성부로 바뀌었다가 1945년 서울시, 1949년 서울특별시로 승격되었다.
2. 1. 시조 및 고려 시대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 : 현 함경남도 문천시, 원산시 일대)에 대대로 살아온 토착 사족(士族)의 후예로 고려 시대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냈다.1258년(고종 45년) 조지수의 아들 조휘(趙暉)는 군사를 일으켜 동북면병마사 신집평 등을 죽이고 화주(和州) 이북의 땅을 들어 몽골에 투항하였고, 그 공으로 초대 쌍성총관이 되어 대대로 세습했다.
1356년(공민왕 5년) 조휘의 증손이자 조양기(趙良琪)의 손자인 조소생(趙小生)이 4대째 쌍성총관으로 있었는데, 조양기의 아들이자 조소생의 숙부인 조돈(趙暾)이 공민왕의 명을 받은 동북면병마사 유인우(柳仁雨)에게 협조하여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고 고려가 철령 이북의 옛 땅을 되찾는 데 공을 세웠다.
2. 2. 조선 시대
조지수(趙之壽)의 아들 조휘(趙暉)는 1258년(고종 45년) 군사를 일으켜 동북면병마사 신집평 등을 죽이고 화주(和州) 이북의 땅을 들어 몽골에 투항하여 초대 쌍성총관이 되었고, 이후 대대로 세습했다.1356년(공민왕 5년) 조휘의 증손이자 조양기(趙良琪)의 손자인 조소생(趙小生)이 4대째 쌍성총관으로 있을 때, 조양기의 아들이자 조소생의 숙부인 조돈(趙暾)이 공민왕의 명을 받은 동북면병마사 유인우(柳仁雨)에게 협조하여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고 고려가 철령 이북의 옛 땅을 되찾는 데 공을 세웠다.
조양기(趙良琪)는 쌍성총관 겸 부원수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조돈(趙暾)은 원나라에 협조하였던 조상들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고려에 귀의한 이후 고려의 최고 벼슬인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조돈의 증손들은 조선 태조의 처남을 비롯하여 조선 개국 공신으로 활약하였다. 조인벽은 사도도지휘사(四道都指揮使), 조인경(仁瓊)은 검찬성을 지냈고, 셋째 조인규(趙仁珪)는 검한성을 지냈다. 넷째 조인옥(仁沃)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내고 태조묘에 배향되었다. 조선 개국공신인 조온(溫)은 찬성사를, 좌명공신인 조연(趙涓)은 우의정을, 조사(趙師)는 첨지중추원사를 지냈다.
정암(靜菴) 조광조는 개혁 정치가로 특히 유명하다. 한양조씨 최초의 족보인 갑신단권보(甲申單卷譜)를 편수한 문절공(文節公) 조원기(元紀)와 두 번째 족보인 신묘삼권보(辛卯三卷譜)의 서문을 쓴 문간공(文簡公) 조경(絅)은 청백리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인 백기당(白旗堂) 조웅(熊), 산서공(山西公) 조경남(慶男) 등이 있다.
2. 3. 현대
현대에는 시인이자 교육자인 조병화, 조지훈, 독립운동가 조병옥과 그의 아들들인 국회의원 조윤형,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과 주일대사를 지낸 조세형, 헌법재판관을 지낸 조승형, 국방부장관을 지낸 조성태, 제22대 공군참모총장 조근해, 국문학자 조동일, 역사학자 조동걸, 통일부 장관 조명균, 학교법인 우암학원 설립자 우암 조용기, 기업인이면서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준희 등이 있다.3. 본관
한양(漢陽)은 서울특별시의 옛 지명이다. 371년(백제 근초고왕 26년) 백제가 점령하여 한산이라 하였다. 392년(고구려 광개토대왕 2)에 고구려가 점령했고, 475년(장수왕 63)에는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553년(신라 진흥왕 14) 신주(新州)로 개칭하였다가 557년(진흥왕 18) 9주 중 한산주(漢山州)에 속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한주(漢州)라 개칭하면서 한양군(漢陽郡)으로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양주목(楊州牧)으로 승격되었고, 1067년(문종 21)에는 남경(南京)이 되었다가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로 개칭하였다. 1393년(태조 3)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이듬해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였다. 1910년에는 경성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5년에 서울시로 개편하고, 1949년 서울특별시로 승격되었다.
4. 분파
5. 집성촌
6. 항렬자
7.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8. 인구
한양 조씨의 인구는 1985년 조사에서 64,881가구 273,408명이었다. 2000년 조사에서는 95,206가구 307,746명으로 증가하였고, 2015년에는 332,580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호적상 한양 조씨로 등록된 인구를 모두 합한 것으로, 조돈의 후손이 아닌 인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양조씨정통대종회에서 발간한 족보에는 사망자를 포함하여 167,676명이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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