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신성 전쟁
1. 개요
제2차 신성 전쟁은 기원전 458년 또는 기원전 457년 포키스인들이 도리스를 점령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스파르타는 포키스인들을 격파하고 도리아인들의 지배를 회복시켰으며,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점령을 둘러싸고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개입했으며,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의 시기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제시한다. 이 전쟁은 고대 시대에 "신성 전쟁"으로 불린 두 개의 전쟁 중 하나이며, 델포이 통치의 변화가 피티아 순례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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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9년 -
칼리아스 평화조약
칼리아스 평화조약은 기원전 450/449년경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에 체결되었다고 전해지는 조약으로, 델로스 동맹의 반란 진압을 도왔지만, 조약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
코로네이아 전투
기원전 447년, 아테네의 보이오티아 장악 시도에 맞서 보이오티아 연합군이 스파르톤의 지휘 하에 아테네 군을 격파하여 톨미데스 장군을 잃게 하고 보이오티아에서 철수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아테네의 영향력 약화와 삼십년 평화 조약 체결의 배경이 되었다. -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
타나그라 전투
타나그라 전투는 기원전 457년 보이오티아의 타나그라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 제국 간 긴장 속에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 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장악했다. -
델포이 -
피톤
피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가이아의 아들로 델포이 신탁소를 지키던 거대한 뱀 괴물이며, 아폴론에게 죽임을 당한 후 아폴론이 신탁을 내리게 되었고, 대지의 정령 정복 과정으로 해석되거나 점치는 영으로 언급되며, "python"의 어원이기도 하다. -
델포이 -
피티아 제전
피티아 제전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에서 아폴론 신을 기려 4년마다 열린 범그리스 제전으로, 예술 경기와 체육 경기가 펼쳐졌으나 로마 제국 시대에 중단되었다가 현대에 국제 문화 교류 행사로 부활했다.
2. 배경
그리스에서도 유수한 신탁소를 갖춘 델포이의 합병을 전부터 노리고 있던 포키스 인들이 델포이의 신전을 점령한 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 이에 개입한 스파르타는 델포이로 군대를 진행, 델포이의 신전을 점령하고 델포이에게 반환했다. 반면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 군이 떠나자 곧 군대를 이끌고 델포이를 다시 점령하고 포키스의 현인들에게 주었다.
기원전 458년 또는 기원전 457년에 포키스인들은 스파르타의 중심지인 도리스에 있는 세 개의 도시를 점령했다. 스파르타군은 도리스로 진군하여 포키스인들을 격파하고 도리아인들의 지배를 회복시켰다.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는 길에 아테네 군대가 스파르타군을 공격했지만 격퇴되었고, 스파르타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5년 평화 조약 이후 스파르타는 "중앙 그리스에서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꺾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3. 전개
포키스가 델포이 신전을 점령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파르타는 군대를 보내 델포이 신전을 점령하고 델포이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 군이 떠난 후 군대를 이끌고 델포이를 다시 점령하여 포키스에게 넘겨주었다.
4. 시기 논쟁
그리스 역사가 필로코로스의 저술을 받아들여 카를 율리우스 벨로흐, 벤자민 딘 메리트, 테오도어 웨이드-게리, 말콤 프랜시스 맥그리거가 이끄는 역사가 그룹은 스파르타가 포키스인을 추방한 사건이 기원전 449년에 발생했고, 아테네인들이 그들을 기원전 447년에 재설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놀드 와이콤 고메와 펠릭스 야코비가 이끄는 역사가들은 필로코로스의 연대기를 거부하며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대신 그들은 델포이에 대한 두 차례의 진군이 모두 기원전 448년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