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네이아 전투
1. 개요
코로네이아 전투는 기원전 447년에 벌어진 고대 그리스의 전투이다. 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장악하려 했으나, 보이오티아의 저항으로 인해 아테네는 패배했다. 이 전투는 델로스 동맹의 세력 약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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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
제2차 신성 전쟁
제2차 신성 전쟁은 기원전 5세기 중반에 델포이 신전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고대 그리스 분쟁으로, 포키스인들의 신전 점령으로 시작되어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개입 속에 델포이 지배 세력이 교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
타나그라 전투
타나그라 전투는 기원전 457년 보이오티아의 타나그라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 제국 간 긴장 속에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 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장악했다. -
테베의 전투 -
만티네이아 전투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에서 테베와 스파르타-아테네 연합군 간에 벌어진 만티네이아 전투는 테베의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에파메이논다스의 전사로 테베 패권 쇠퇴를 가속화하며 그리스 세계의 혼란을 심화시킨 전투이다. -
테베의 전투 -
레우크트라 전투
레우크트라 전투는 기원전 371년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동맹군이 사선진 전술로 스파르타 군을 격파하여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고 스파르타의 쇠퇴를 가져온 전투이며, 이후 전술 발전에 영향을 미쳐 그리스의 힘의 균형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
아테네의 전투 -
만티네이아 전투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2년 만티네이아에서 테베와 스파르타-아테네 연합군 간에 벌어진 만티네이아 전투는 테베의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에파메이논다스의 전사로 테베 패권 쇠퇴를 가속화하며 그리스 세계의 혼란을 심화시킨 전투이다. -
아테네의 전투 -
살라미스 해전
살라미스 해전은 기원전 480년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 제국 해군에 맞서 싸워 승리하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이 된 해전이다.
2. 배경
기원전 457년 아테네는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보이오티아 군을 격파하고 테바이를 제외한 보이오티아 전역을 점령했다. 이는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며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2.1. 보이오티아의 저항
기원전 448년 제2차 신성 전쟁 이후, 망명했던 보이오티아인들이 오르코메노스와 카이로네이아 등 보이오티아의 여러 지역을 아테네로부터 되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테네의 지배에 저항하며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3. 코로네이아 전투 (기원전 447년)
기원전 457년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테바이를 제외한 보이오티아 전역을 장악했다. 그러나 기원전 448년 제2차 신성 전쟁 이후, 망명한 보이오티아인들이 오루코메노스와 카이로네이아 등 보이오티아의 여러 지역을 아테네로부터 되찾기 시작했다. 이에 아테네는 톨미데스 휘하의 중장보병 1,000명과 동맹군을 보내 카이로네이아를 점령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팔아 수비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들은 코로네이아로 진격하던 중, 스파르톤이 이끄는 보이오티아, 로크리스, 에우보이아 연합군의 습격을 받아 패배했고, 톨미데스는 전사했다.
3.1. 전투의 결과
아테네는 포로 반환을 조건으로 보이오티아에서 철수해야 했고, 보이오티아는 독립을 회복했다. 이 패배로 에우보이아와 메가라 등 아테네에 대항하는 동맹국들의 반란이 잇따랐다. 아테네는 이러한 반란에 대처하는 동시에,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의 전투도 치러야 했다. 결국 기원전 446년 또는 445년에 아테네는 스파르타 및 그 동맹국들과 30년 평화 조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