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고려-거란 전쟁
1. 개요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8년에 발발한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다. 거란의 팽창 정책과 고려의 북방 정책, 그리고 송나라와의 관계가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이 전쟁은 고려의 국방력 강화와 국제 관계 재정립에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바치고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송나라와의 관계도 지속하며 자주적인 외교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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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 고려와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인 고려-거란 전쟁은 서희의 외교 담판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등 주요 인물들의 활약과 고려군의 저항으로 거란의 침략을 격퇴하고 동아시아 세력 균형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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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의 입구
도이의 입구는 1019년 여진족 해적 '도이'가 고려 방면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쓰시마, 이키 섬을 공격하고 규슈 지역을 약탈한 사건으로,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만주족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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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 6주는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가 요나라로부터 확보한 압록강 동쪽의 여섯 지역으로, 과거 고구려 영토였으나 여진족이 거주하던 곳을 고려가 외교 및 군사적 정복을 통해 편입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거란의 침입을 막아 영유권을 확고히 한 지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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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고려-거란 전쟁
3. 전개 과정
고려-거란 전쟁은 크게 세 차례의 침입으로 나눌 수 있다.
4. 결과 및 영향
거란은 1019년에 고려를 다시 침공하려 했으나, 양측 모두 서로를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1020년 현종은 다시 조공을 바쳤고, 1022년 거란은 현종의 통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4.1. 국제 관계 재정립
1020년, 고려 현종은 거란에 다시 조공을 보냈고, 1022년 거란은 현종의 통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같은 해 거란은 사신을 보내 현종을 국왕으로 책봉했고, 1031년 현종이 사망하자 왕흠 역시 요나라 조정으로부터 국왕으로 책봉받았다. 고려는 요나라의 속국으로 남았지만, 요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양국 관계는 평화롭게 유지되었다. 역사학자 비엘렌슈타인에 따르면, 고려는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유지했으며, 현종은 자신의 연호를 유지했고, 양국은 1022년에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를 맺었다.
5. 역사적 평가
고려-거란 전쟁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