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고려-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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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8년에 발발한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다. 거란의 팽창 정책과 고려의 북방 정책, 그리고 송나라와의 관계가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이 전쟁은 고려의 국방력 강화와 국제 관계 재정립에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바치고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송나라와의 관계도 지속하며 자주적인 외교를 펼쳤다.

제3차 고려-거란 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제3차 고려-거란 전쟁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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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 고려 거란 침공
분쟁제3차 고려-거란 전쟁
전체 전쟁고려-거란 전쟁
날짜1018년 ~ 1019년
장소한반도 북부
결과고려의 승리
교전 세력
교전국 1고려
교전국 2요나라
지휘관
고려 지휘관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조원
박종검
유참
요나라 지휘관소배압
소굴렬
소한령
소요지
해리 †
아과달 †
작고 †
병력 규모
고려 병력208,000 명
요나라 병력100,000 명
사상자 규모
고려 사상자불명
요나라 사상자90,000 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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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고려-거란 전쟁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고려의 북방 정책, 거란의 팽창 정책, 송나라와의 관계 등이 얽혀 있었다.

3. 전개 과정

고려-거란 전쟁은 크게 세 차례의 침입으로 나눌 수 있다.

4. 결과 및 영향

거란은 1019년에 고려를 다시 침공하려 했으나, 양측 모두 서로를 군사적으로 제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1020년 현종은 다시 조공을 바쳤고, 1022년 거란은 현종의 통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4.1. 국제 관계 재정립

1020년, 고려 현종은 거란에 다시 조공을 보냈고, 1022년 거란은 현종의 통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같은 해 거란은 사신을 보내 현종을 국왕으로 책봉했고, 1031년 현종이 사망하자 왕흠 역시 요나라 조정으로부터 국왕으로 책봉받았다. 고려는 요나라의 속국으로 남았지만, 요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양국 관계는 평화롭게 유지되었다. 역사학자 비엘렌슈타인에 따르면, 고려는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유지했으며, 현종은 자신의 연호를 유지했고, 양국은 1022년에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를 맺었다.

5. 역사적 평가

고려-거란 전쟁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