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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보병사단 (독일 국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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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61보병사단은 1939년 폴란드 침공에 참여하여 북부집단군에 배속되었으며, 므와바 전투와 바르샤바 공략전에 참전했다.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벨기에와 됭케르크에서 전투를 치렀으며, 이후 브리타니에 주둔했다. 1941년 동프로이센으로 이동하여 소련 침공에 참여,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투입되었으며, 1944년 에스토니아로 후퇴했다. 1944년 10월 국민척탄병사단으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서 계속 전투를 벌였으며, 동프로이센에서 소련군에 포위되어 1945년 3월에 붕괴되었고, 잔존 병력은 21보병사단에 흡수, 사단 지휘부는 쾨니히스베르크로 철수하여 종전과 함께 소련군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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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보병사단 (독일 국방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부대 정보
부대 명칭제61보병사단
원어 명칭61. Infanterie-Division
제61보병사단 휘장
국가나치 독일
군종보병
소속독일 국방군 육군
창설일1939년 8월 16일
해체일1945년 5월 8일
규모사단
별칭없음
전투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됭케르크
프랑스 전투
리가
발트 제도
티흐빈
지휘관
주요 지휘관알 수 없음

2. 부대 역사

제61보병사단은 1939년 8월 제2차 동원 시기에 창설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의 여러 주요 전역에 참전했다. 창설 초기에는 동프로이센 인스터부르크에 사령부를 두고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폴란드 침공에 참가, 므와바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이후 나레브강과 부크강을 건너 바르샤바 공략전에도 참가했다.

1939년 12월 서부로 이동한 사단은 벨기에 공격, 프랑스 침공에 참가하여 됭케르크 전투 등에서 주요 전투를 치렀다. 프랑스 항복 후에는 브르타뉴 점령군 임무를 수행했다.[1]

1941년, 동프로이센으로 이동하여 바르바로사 작전에 따라 소련 침공에 참가했다.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탈린과 발틱 섬 작전(베오울프 작전)에 참가하여 사레마섬히우마섬 점령에 기여했다.[2] 이후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투입되어 1944년 초까지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격전을 벌였다.

1944년, 에스토니아로 후퇴하여 나르바 전투 등에서 방어전을 치렀다. 같은 해 10월에는 61국민척탄병사단으로 개편되어 북부집단군 및 중부집단군 예하에서 계속 전투를 이어갔다.[1] 동프로이센으로 철수한 후, 하일리게네바일 가마솥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되어 격전을 치렀고, 1945년 3월 가마솥이 붕괴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1] 결국 21 보병사단에 병력과 장비를 넘겨주고 쾨니히스베르크로 철수했으나, 종전과 함께 소련군에 항복했다.[1]

2. 1. 창설 및 초기 활동

사단은 1939년 8월 제2차 동원 시기에 창설되었으며, 동프로이센의 인스터부르크에 사령부를 두었다. 창설 직후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폴란드 침공에 참가하여 므와바 전투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이후 나레브강과 부크강을 도하했으며, 9월 18일에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공략전에 참가했다. 게오르크 폰 큄러의 제3군에 배속되어 북부 집단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푸우투스크 인근의 나레프 강을 건너 9월 18일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에 접근하여 캠페인 종료 시까지 그 인근에 머물렀다.

2. 2. 서부 전선

1939년 12월, 제61보병사단은 서부로 이동하여 1940년 5월 10일 제4군단 소속으로 벨기에 공격에 참가했다. 프랑스 침공 당시 61 보병사단은 벨기에와 됭케르크에서 전투를 벌였다. 벨기에 진격 중 제61사단 제151보병연대는 5월 11일 에벤-에마엘 요새를 공격하는 독일 공수부대와 연결되었고, 벨기에 수비대는 같은 날 요새를 항복했다. 사단은 또한 덩케르크 전투에 참전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에는 브르타뉴 점령군으로 주둔하며 군정을 실시했다.[1] 서부 전역에서의 손실은 전사 348명, 부상 1052명, 실종 106명이었다.[1]

2. 3. 동부 전선

1941년 초, 사단은 동프로이센으로 이동하여 바르바로사 작전에 따라 소련 침공에 참가했다.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탈린과 발틱 섬 작전(베오울프 작전)에 참가, 소련군을 격퇴하고 섬들을 점령했다.[2] 탈린 함락 후, 독일군은 해상 수송로 확보를 위해 발트해 섬들을 점령해야 했다. 제61사단은 베오울프 작전에 따라 해군에 의해 사레마섬으로 수송되어 전투를 벌였다. 소련군은 소르베 반도에서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10월 5일 독일군이 섬을 점령했다. 이후 10월 12일, 북쪽 섬인 히우마섬을 공격하여 2주 만에 점령하고 16,000명의 포로와 100문의 포를 노획했다.[2]

이후 사단은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투입되었으며, 1944년 1월까지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전투를 벌였다. 소련군의 공세에 밀려 에스토니아로 후퇴, 나르바 전투 등에서 방어전을 수행했다. 1944년 7월, 북부집단군에서 "완전히 전투 가능한" 몇 안 되는 사단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2. 4. 국민척탄병사단으로의 개편과 종전

1944년 10월, 61 보병사단은 61 국민척탄병사단(Volksgrenadier)으로 개편되어 동부 전선에서 북부집단군 및 중부집단군 예하에서 계속 전투를 벌였다.[1] 동프로이센으로 철수한 뒤 사단은 진격하는 소련군과 비스툴라 석호 사이에 갇혀 하일리게네바일 가마솥이라 불린 곳에서 전투했다.[1] 1945년 3월, 가마솥이 붕괴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은 사단은 21 보병사단에 남은 병력과 장비를 넘겨주고, 사단 지휘부는 쾨니히스베르크로 철수했으나, 종전과 함께 소련군에 항복했다.[1]

3. 주요 전투 및 작전

1939년, 폴란드 침공에 참전하여 므와바 전투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렀고, 나레브강과 부크강을 건너 바르샤바 공략전에 참가했다.[1]

1940년 프랑스 전투에서 벨기에와 됭케르크에서 전투를 치렀고, 프랑스 항복 후 브르타뉴에 점령군으로 주둔했다.[1]

1941년 초, 동프로이센으로 이동하여 바르바로사 작전에 따라 제18군 소속으로 소련 침공에 참가했다. 탈린과 문순드 제도 점령에 참여했다.[2] 베오울프 작전의 일환으로 사레마 섬을 점령하고, 소르베 반도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소련군을 몰아냈다. 이후 히우마 섬을 점령하여 16,000명의 포로와 100문의 포를 노획했다.[2]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참가하여 1944년 1월까지 전투를 벌였다. 소련의 공세에 밀려 에스토니아로 후퇴했고, 나르바 전투 중 나르바 공세 (1944년 3월 18일~24일)에서 싸웠다.

1944년 10월, '''제61국민척탄병 사단'''으로 재편되어 동부 전선에서 계속 싸웠다. 동 프로이센으로 철수한 뒤 하일리겐바일 포켓에서 전투를 벌였다. 1945년 3월, 포켓이 붕괴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고, 남은 병력과 장비는 제21보병사단에 인계되었다. 사단 지휘부는 쾨니히스베르크로 철수했으나, 전쟁 말 소련군에 포로가 되었다.

4. 부대 편제

제61보병사단은 초기 전쟁 표준 보병 편제를 갖추었다. 각 연대에는 보병대대 3개, 포병 중대 1개, 대전차 중대 1개가 있었다. 포병 연대에는 총 9개의 105mm 경야포 포대와 3개의 150mm 중야포 포대로 구성된 4개 대대가 있었다. 또한 3대의 장갑차를 포함한 정찰 대대도 갖추었다. 장비는 독일제였으며, 병력은 15,500명이었다. 기동성을 위해 500대 이상의 트럭과 기타 차량 및 오토바이를 보유했으며, 거의 5,000마리의 말을 보유했다. 병사들은 도보로 전투에 참여했다.[1]

1940년 2월, 사단은 제8차 병력 동원 시기에 창설된 제291보병사단을 위해 보병대대 1개와 일부 포병을 제공했으며, 이 부대는 재창설되었다. 1940년 11월에는 제14차 병력 동원 시기에 창설된 제336보병사단을 위해 각 보병연대에서 보병대대 1개씩을 제공했고, 이 대대들은 대체되었다.[1]

러시아 전역에서 특히 보병의 큰 피해를 입어, 1942년 여름까지 보병대대 3개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각 보병연대는 대대 2개만 남게 되었고, 대전차 대대와 정찰 대대가 합쳐져 신속(schnelle, 빠른) 대대가 편성되었다.[1]

1943년까지 변경된 사단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부대
제151척탄병연대
제162척탄병연대
제176척탄병연대
제161포병연대
제161공병대대
제161대전차대대
제161정보대대
제161보급부대사령부


4. 1. 1940년

부대
제151보병연대
제162보병연대
제176보병연대
제161포병연대
제161공병대대
제161대전차대대
제161정찰대대
제161통신대대
제161보급부대


4. 2. 1942년

부대
제151척탄병연대
제162척탄병연대
제176척탄병연대
제161포병연대
제161공병대대
제161대전차대대
제161정보대
제161통신대
제161보급중대


4. 3. 1944년 (국민척탄병사단)

1944년, 사단은 국민척탄병사단(Volksgrenadier)으로 개편되었다.[1] 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 제151척탄병연대[1]
  • 제162척탄병연대[1]
  • 제176척탄병연대[1]
  • 제61사격병대대 (61 후질리어 대대)[1]
  • 제161포병연대[1]

5. 역대 지휘관

이름계급임기 시작임기 종료
지그프리트 헤니케보병대장1939년 8월1942년 3월
프란츠 쉴디스소장1942년 3월1942년 4월
베르너 휘흐너중장1942년 4월1943년 2월
귄터 크라페중장1943년 2월1943년 4월
고트프리트 베버중장1943년 4월1943년 5월
귄터 크라페중장1943년 5월1943년 12월
요아힘 알브레히트 폰 블뤼허소장1943년 12월1944년 2월
귄터 크라페중장1944년 2월


  • 귄터 크라페 중장은 모두 3번 사단장을 역임했다.

6. 훈장 수훈

제61보병사단 소속 37명이 철십자 기사 훈장을 받았다. 주요 수훈자로는 사단장 지크프리트 해니케, 베르너 휘너, 고트프리트 베버(제162보병연대 제1대대장 역임), 귄터 크라페 등이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Verlustliste der 61 http://www.lexikon-d[...] 2022-11-29
[2] 서적 Russo-German War, Autumn 1941: Defeat of Barbarossa
[3] 서적 Die 61st Infanterie Division
[4] 서적 Nafziger, German Order of Battle: Infantry in World War II
[5] 문서 현재의 칼리닌그라드주의 체르냐홉스크다. 원래 독일령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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