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거
1. 개요
조거는 조조의 아들이자 조비의 이복 형제로, 위나라 시기에 범양후, 완후, 공, 장릉왕, 팽성왕 등을 역임했다. 조비가 황제가 된 후 여러 차례 봉지가 변경되었고, 사사로이 금지된 물품을 제작한 죄로 봉읍이 삭감되기도 했다. 조방이 폐위된 후 사마사가 후계자로 옹립하려 했으나 곽태후의 의견에 따라 조모가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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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 | 팽성왕(彭城王) |
|---|---|
| 재위 기간 | 232년 – 260년대 초반 |
| 이전 작위 | 정요왕(定陶王) (224년–232년) |
| 기타 작위 | 제음왕(濟陰王) (222년 또는 이후 – 224년 또는 이전) 의양왕(義陽王) (222년 – 222년 또는 이후) 장릉왕(章陵王) (222년) |
| 출생 | 196년과 211년 사이 |
| 가문 | 조씨 |
| 아버지 | 조조 |
| 어머니 | 환비 (Consort Huan) |
| 자녀 | 조총 (曹琮) 조범 (曹範) 조천 (曹闡) |
| 이름 | 성: 조 (曹) 이름: 거 (據) |
| 가족 관계 | 조조의 아들 |
|---|---|
| 봉토 변화 | 222년: 장릉후(章陵侯)에 봉해짐 얼마 후: 의양왕(義陽王)으로 옮겨 봉해짐 얼마 후: 제음왕(濟陰王)으로 옮겨 봉해짐 얼마 후: 정요왕(定陶王)으로 옮겨 봉해짐 232년: 팽성왕(彭城王)으로 옮겨 봉해짐 |
| 기타 | 조조의 아들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음 환(桓) 소의(昭儀)의 아들 조충(曹沖)보다 나이가 어렸음 태화(太和) 6년에 팽성왕에 봉해짐 죽은 후 아들 조총(曹琮)이 뒤를 이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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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아들 -
조곤
조곤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황족으로 조조의 아들이며, 문장력이 뛰어나 조비와 조예 시대에 여러 왕에 봉해졌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여 조예의 칭송을 받아 사후 공왕으로 추증되었다. -
조조의 아들 -
조비
조비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황제로, 조조 사후 위왕과 승상 자리를 이어받아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구품관인법을 시행하는 등 내정을 정비했으나 오나라 정벌에 실패하고 요절했으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문장경국 사상을 내세우기도 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조거는 조조의 아들이자 조위의 황족이다. 어머니는 조조의 첩인 환부인이며, 친형제로는 조충과 조우가 있었다. 조거는 여러 차례 봉지를 옮겨다녔으며, 작위 또한 여러 번 바뀌었으나, 하위 섹션에 자세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므로 해당 내용을 생략한다.
2.1. 후한 시기
건안 16년(211년)에 범양후에 봉해졌다. 건안 22년(217년) 완후로 봉지가 옮겨졌다. 황초 2년(221년) 작위가 공으로 승격되었다. 이듬해 장릉왕에 봉해졌고, 같은 해에 의양으로 봉지가 옮겨졌다.
문제는 남쪽 땅이 지대가 낮고 습하며, 환태비가 팽성 사람인 것을 감안하여 다시 조거를 팽성에 봉했다. 이후 제음으로 봉지가 옮겨졌고, 황초 5년에 조서를 내려 조거의 봉지를 정도현으로 옮겼다.
태화 6년(232년) 왕들을 다시 봉하면서 모든 군을 국으로 격상시켰고, 조거는 다시 팽성에 봉해졌다. 팽성왕 시대의 상은 서서였다.
경초 원년(237년), 사사로이 사람을 중상방으로 보내 나라에서 금지하는 물품을 만든 죄로 봉읍 2,000호가 깎였다. 경초 3년(239년)에 봉읍을 되돌려받았고, 정원·경원 연간에 봉지가 더해져 모두 4,600호를 받았다.
2.2. 조위 시기
건안 16년, 조거는 범양후(范陽侯)에 봉해졌다. 건안 22년에는 봉지를 옮겨 완후(宛侯)가 되었다.
이복 형 조비가 조위를 건국하고 황제(문제)에 오른 후, 황초 2년에 조거의 작위는 공(公)으로 승격되었다. 황초 3년에는 장릉왕(章陵王)이 되었으나, 이후 의양, 팽성, 제음으로 봉지를 옮겨 다녔다. 팽성왕 시대의 상은 서서였다.
황초 5년, 제왕(諸王)들의 영읍(領邑)이 현(縣) 단위로 축소되면서 조거는 정도현(定陶縣)에 봉해졌다. 태화 6년, 조예 시대에 제왕들의 영읍이 군(郡) 단위로 확장되자 조거는 다시 팽성왕이 되었다.
경초 원년, 조거는 사사로이 금지된 물품을 만들게 한 죄로 봉읍 2,000호를 삭감당했지만, 경초 3년에 봉읍을 되돌려받았다.
가평 6년, 조방이 폐위되자, 사마사는 조거를 후계자로 옹립하려 했으나, 곽태후의 의견으로 조모가 즉위했다.
정원·경원 연간에 여러 차례 봉지가 더해져 모두 4,600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