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 (전한)
1. 개요
조관은 전한 무제 시기에 어사대부를 지낸 유학자이다. 무제가 유학을 숭상하며 조관을 등용했으나, 노자를 숭상하던 두태후의 반대로 인해 왕장과 함께 자결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이 전하며, 기원전 139년 어사대부를 역임했다.
조관 (전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139년 사망 -
비리아투스
비리아투스는 기원전 2세기 로마 공화정에 맞서 루시타니아 부족을 이끈 지도자로, 게릴라 전술로 로마에 큰 위협이 되었으나 배신으로 암살당했으며 현재 포르투갈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
기원전 139년 사망 -
왕장 (낭중령)
왕장은 《시경》에 능통하고 한무제 때 낭중령을 지냈으나 두태후의 반대로 자결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2. 생애
조관은 경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제가 유학을 숭상하면서, 왕장과 함께 부름을 받은 유생이었다. 조관은 어사대부에, 왕장은 낭중령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노자를 숭상하였던 두태후는 무제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조관과 왕장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무제를 꾸짖었다. 결국 조관과 왕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 초기 활동과 유교 진흥
경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제는 유학을 숭상하기로 하고, 유생 조관과 왕장을 불러들여 각기 어사대부·낭중령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노자를 숭상하였던 두태후는 무제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곧 조관과 왕장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무제를 꾸짖었다. 결국 조관과 왕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