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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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도빈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9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그는 이조정랑, 대사간, 대사성, 병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충청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지내 민정을 다스리고 외교에도 기여했다. 경종 때 신임사화로 파직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재등용되어 공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고 영돈녕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정희이다.

조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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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경종 때 신임사화로 파직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재등용되어 우의정을 거쳐 영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2.1. 관직 생활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지평, 정언, 부수찬, 수찬, 부교리 등을 거쳐 옥당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교리, 부교리, 헌납, 수찬, 이조정랑, 겸사서 등을 역임했다. 다시 수찬, 겸사서, 헌납, 부응교를 거쳐 사간, 응교, 겸보덕, 부응교 등을 지냈다. 이후 겸필선, 응교, 사간, 부교리, 집의 등을 지낸 뒤 당상관이 되었다. 우부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다스렸다. 승지,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연이어 이조참의,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를 지냈다. 대사헌, 예조참판, 도승지, 대사성을 거쳐 대사헌,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동지정사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다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을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 우참찬을 지냈다. 평안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경종 때 형조판서로 복귀했다. 신임사화로 파직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재등용되어 공조판서가 되었다. 좌참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낸 뒤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후 영돈녕부사에 이르렀다.

2.2. 정치적 입장과 활동

숙종 17년(169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지평, 정언 등을 거쳐 옥당의 일원이 되었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우부승지가 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직하며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켰고, 승지,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연이어 이조참의,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를 지냈으며, 대사헌, 예조참판, 도승지, 대사성을 거쳐 대사헌,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동지정사로 중국에 다녀온 후 다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을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 우참찬을 역임하고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경종 때 형조판서로 복귀했지만, 신임사화로 파직되었다. 영조 즉위 후 다시 등용되어 공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를 거쳐 영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2.3. 신임사화와의 관계

경종 때 신임사화로 파직되었으나, 영조 즉위 후 재등용되어 공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이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 조도빈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3. 평가

조도빈은 시호가 정희(靖僖)로, 숙종 때부터 영조 때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당쟁이 심했던 시기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왕을 보좌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조도빈은 숙종 17년(169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2년에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우부승지, 충청도관찰사,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도승지, 대사헌, 예조참판,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우참찬, 평안도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경종 때 평안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신임사화로 인해 파직되었다. 그러나 영조 즉위 후 다시 등용되어 공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판중추부사와 영중추부사를 거쳐 영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그의 관직 생활과 정치적 행적은 조선 후기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