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 (동해정왕)
1. 개요
조림(曹林)은 위(魏)의 황족으로,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아들이자 동해정왕(東海定王)이다. 222년에 하동왕에 봉해졌으며, 232년에 동해왕으로 개봉되었다. 그는 조비의 유언에 따라 형인 조예의 총애를 받았으나, 가정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다. 249년 또는 250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조계가 뒤를 이었고, 다른 아들 조모는 황제가 되었다. 시호는 정왕이다.
| 이름 | 조림 (曹霖) |
|---|---|
| 작위 | 동해왕 (東海王) |
| 재위 기간 | 232년 – 251년 2월 5일 |
| 이전 작위 | 관도왕 (館陶王) (225–232년) |
| 이전 작위 | 하동왕 (河東王) (222년 4월 8일 – 225년) |
| 사후 작위 | 정왕 (定王) |
| 출생 | 알 수 없음 |
|---|---|
| 사망 | 251년 2월 5일 |
| 가문 | 조씨 |
| 아버지 | 조비 |
| 어머니 | 구부인 (邱夫人) |
| 자녀 | 조기 (曹 Qi), 조모 |
-
조비의 황자 -
조예
조예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2대 황제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군주였지만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고를 탕진했다는 비판도 받으며, 촉한의 제갈량의 침공을 막아내고 요동의 공손씨를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나 사후 조상의 실각과 사마의의 권력 찬탈로 위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조림은 조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구소의(仇昭儀)이다. 조림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조계(曹啓)는 동해왕 작위를 이었고, 차남 조모는 고귀향공(高貴鄕公)이었다가 254년 곽태후에 의해 위의 제4대 황제로 옹립되었다. 조모는 황실 관례에 따라 조예의 사후 양자가 되었다. 동해 왕국의 과세 가구 수는 조계의 재위 기간 동안 6,200호까지 증가했다.
2.1. 초기 생애 및 작위 변동
황초 3년(222년)에 하동왕(河東王)에 봉해졌고, 황초 6년(225년)에는 관도왕(館陶王)으로 봉국이 옮겨졌다. 형 조예가 즉위하고서는 아버지가 남긴 뜻대로 총애를 받았으나, 성정이 추포하여 규방 내의 비첩들을 많이 죽였다. 태화 6년(232년)에 동해왕(東海王)으로 개봉되었다.
2.2. 이복형 조예와의 관계
조비가 죽은 후, 조림의 이복 형제인 조예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의 제2대 황제가 되었다. 조예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조림을 매우 관대하게 대했다. 그러나 조림은 가정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하인과 첩을 가리지 않고 학대하고 죽였다.
2.3. 동해왕 책봉과 죽음
222년 황초 3년에 하동왕(河東王)에 봉해졌고, 225년 황초 6년에는 봉국이 관도현(館陶縣)으로 옮겨졌다. 형 조예가 즉위하고서는 아버지가 남긴 뜻대로 총애를 받았으나, 성정이 추포하여 규방 내의 비첩들을 많이 죽였다. 232년 태화 6년에 동해왕(東海王)으로 개봉되었고, 249년 가평 원년 혹은 250년 2년 12월 27일 갑진일에 죽어 아들 조계(曹啓)가 뒤를 이었다. 다른 아들 조모는 고귀향공(高貴鄕公)이 되었다가, 조방이 폐위된 후 제위에 옹립되었다.
3. 가계
조림은 황초 3년(222년)에 하동왕에 봉해졌고, 6년(225년)에는 봉국이 관도현으로 옮겨졌다. 형 조예가 즉위하고서는 아버지가 남긴 뜻대로 총애를 받았으나, 성정이 추포하여 규방 내의 비첩들을 많이 죽였다. 태화 6년(231년)에 동해왕으로 개봉받았고 가평 원년(249년) 혹은 2년(250년) 12월 27일 갑진일에 죽었다. 아들 조계가 뒤를 이었고, 다른 아들 조모는 고귀향공이 되었다가 조방이 폐위된 후 제위에 옹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