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농총동맹
1. 개요
조선노농총동맹은 1924년 결성된 노동 및 농민 단체 연합체이다. 노농계급 해방,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 등을 강령으로 내세웠으며, 노동 쟁의와 소작 쟁의를 지원하고, 6·10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일제의 탄압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1927년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
조선노농총동맹
조선노농총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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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농총동맹 깃발
결성 및 해산
| 결성 | 1924년 4월 27일 |
|---|---|
| 해산 | 1927년 12월 |
주요 인물
| 주요 지도자 | 강달영 김약수 박헌영 주종건 |
|---|
관련 단체
| 관련 단체 | 조선노동총동맹 조선농민총동맹 |
|---|
역사
| 배경 | 3·1 운동 이후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의 활성화 |
|---|---|
| 결성 |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의 통합 |
| 활동 | 노동자, 농민의 권익 옹호 및 사회주의 이념 확산 |
| 해산 | 내부 분열 및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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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성
1924년, 전국의 노동단체와 농민단체 167개가 모여 결성되었다. 강령으로 '노농계급 해방', '완전한 신사회 실현',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 '노농계급의 복리 증진 및 경제적 향상 도모'를 내세웠다. 중앙집행위원은 50명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서울청년회 화요회 출신의 사회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