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1. 개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1945년 8월 18일에 임화와 김남천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로,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좌익 계열이 주도했으나, 초기에는 좌우를 아우르는 개량적 노선을 취했다. 하지만 좌익 강경파의 반발과 우익의 탈퇴로 분열을 겪었으며, 조선공산당의 지시로 1945년 12월 13일 김태준의 주도 하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과 통합하여 조선문학동맹으로 재출범했다. 해방 후 한국 문화예술계 재건에 기여했으나, 이념 갈등으로 인해 좌우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 이름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
| 영문 이름 | Central Council for the Construction of Korean Culture |
| 약칭 | 문건 |
| 결성 | 1945년 8월 16일 |
| 해산 | 1945년 11월 |
| 성격 | 좌익 문화 단체 |
| 주요 활동 | 문화 예술 단체 조직 강연회 개최 기관지 발행 |
| 위원장 | 김기진 |
|---|---|
| 서기장 | 이태준 |
| 주요 인물 | 김남천 임화 이효석 정지용 박세영 이원조 백철 김사량 윤기정 이선근 채만식 안회남 이무영 정인섭 김진섭 조윤제 양주동 오장환 이헌구 서항석 김광섭 이석훈 함대훈 최재서 정병욱 김환태 |
| 산하 단체 | 조선문학가동맹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음악건설본부 영화건설본부 연극건설협의회 |
| 결성 배경 | 광복 직후 민족 문화 건설의 필요성 대두 좌익 계열 문화 예술인들의 주도 |
|---|---|
| 주요 활동 | 각 분야별 문화 예술 단체 결성 지원 강연회 및 강습회 개최를 통한 대중 계몽 기관지 '문화건설' 발행을 통한 이론 전파 |
| 해체 | 미군정의 좌익 세력 탄압 우익 문화 단체와의 갈등 심화 조선문학가동맹 등 산하 단체들의 독립적인 활동 강화 |
| 긍정적 평가 |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민족 문화 건설의 방향 제시 다양한 분야의 문화 예술인들을 결집하여 창작 활동 지원 대중 계몽 및 문화 향유 기회 확대에 기여 |
|---|---|
| 부정적 평가 | 좌익 편향적인 이념으로 인해 우익 문화 예술인들과의 갈등 심화 미군정의 탄압으로 인해 활동에 제약 단명한 활동으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함 |
| 관련 서적 | 해방 후 문학단체 연구 (김재용, 1983) 한국현대문학사 (김윤식, 김현, 1996) |
|---|---|
| 관련 논문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연구 (이선미,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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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은 1925년 염군사와 파스큐라가 합쳐져 결성된 좌익 문학 단체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계급 투쟁을 선전하고 계몽하는 것을 목표로 조직적인 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나, 내부 갈등과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해산되었다. -
임화 -
조선문학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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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문학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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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미술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8일 창설된 미술 단체로, 해방 직후 연합군 환영 사업과 미술전람회 개최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나 조선미술협회로 발전적 해체 후 좌우익 대립으로 미술계 분열을 초래했다. -
대한민국의 예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하여 2005년 9월 29일 출범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지원 기관으로,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사무처장은 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사무를 처리한다. -
대한민국의 예술 -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1962년 국립극장 소속으로 창단되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대한민국의 오페라 단체로서, 정기 공연, 국내외 교류, 교육 사업 등을 통해 오페라 발전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2. 창립과 구성
태평양 전쟁 종전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임화와 김남천이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구성하고, 8월 18일 다른 분야의 단체들과 함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로 발전시켰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는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분야의 산하 단체가 설치되었다.
전반적으로 좌익 계열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좌파 단체로 분류되기도 하나, 과도기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좌파 색채를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았다. 동반자 작가나 우파 계열과도 두루 연합하여 성립된 단체였다. 많은 핵심 참가자들이 후에 월북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중심이 되었다.
2.1. 주요 참여 인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소장파 출신 임화는 회장을, 김남천은 서기장을 맡았다.
3. 노선 갈등과 분열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문건)는 극단적인 친일 행적이 없는 한 우익 예술인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개량적인 노선을 택했다. 이에 좌익 강경파는 문건의 노선에 불만을 품고, 송영, 이기영 등 카프(KAPF) 구주류 계열이 조선문학건설본부에서 탈퇴하였다. 9월 17일, KAPF 구주류 계열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조직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곧바로 조선음악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 조선영화동맹 등 타 분야 단체를 흡수하였다. 9월 30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결성하여 문건과 대립하는 범예술인 단체를 출범시켰다. 이 무렵 우익 계열 또한 좌파적 노선에 반발하여 탈퇴하고, 전조선문필가협회 등 우파 중심 단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문건은 위기를 맞았다.
4. 통합과 해체
같은 좌파 단체가 양립하는 것에 대한 범좌익 계열의 우려를 반영하여 조선공산당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통합 지시를 내렸다. 결국 옌안에서 귀국한 국문학자 김태준 주도로 12월 13일에 통합이 이루어졌다. 양 단체는 통합 후 조선문학동맹을 출범시켰다.
5. 의의와 평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극단적인 친일 행적이 없는 한 우익 계열 예술가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개량적인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좌익 강경파는 불만을 가졌고,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송영, 이기영 등 KAPF 구 주류 계열이 탈퇴하여 1945년 9월 17일 조선 프로레타리아 문학 동맹을 조직했다.
조선 프로레타리아 문학 동맹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마찬가지로 조선음악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 프로레타리아 연극 동맹, 조선영화동맹 등 다른 분야의 단체를 흡수하여 1945년 9월 30일 조선 프로레타리아 예술 동맹을 결성,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대립했다. 이 시기부터 우익 계열이나 좌익 노선에 반발하는 이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전조선문필가협회 등 우파 중심 단체가 결성되면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위기를 맞았다.
좌파 단체의 양립에 대한 우려 속에 조선공산당은 두 단체의 통합을 지지했다. 그 결과, 옌안에서 귀국한 김태준의 주도로 1945년 12월 13일 통합이 이루어졌고, 양 단체는 조선문학동맹을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