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건설본부
1. 개요
조선미술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에 창설된 예술 단체이다. 위원장 고희동, 서기장 정현웅을 중심으로 동양화, 서양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인 185명이 참여했다. 연합군 환영 초상화 제작, 해방기념문화대축전 미술전람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조선미술협회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좌우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 한글 | 조선미술건설본부 |
|---|---|
| 한자 | 朝鮮美術建設本部 |
| 로마자 표기 | Joseon Misul Geonseol Bonb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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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술 단체 -
한국미술협회
한국미술협회는 1961년 창립되어 한국예총 산하에서 대한민국미술대전 개최 및 국제 교류 등 미술계 활동을 펼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미술인 단체이다. -
대한민국의 미술 단체 -
언니모자
언니모자는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산 및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단체이다. -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문학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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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
조선영화건설본부
조선영화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에 영화계 재건을 목표로 결성되었으나,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조선영화동맹으로 재편되었다. -
대한민국의 미술사 -
한국미술협회
한국미술협회는 1961년 창립되어 한국예총 산하에서 대한민국미술대전 개최 및 국제 교류 등 미술계 활동을 펼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미술인 단체이다. -
대한민국의 미술사 -
박서보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교육자인 박서보는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하고 묘법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여 한국 단색화의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미술계 발전에 기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 발족과 구성
8월 18일, 쇼와 천황의 항복 선언 사흘 후 예술인 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조직되면서 그 산하에 창설된 단체이다. 위원장으로는 미술계의 원로인 고희동이 추대되었고, 서기장은 정현웅이 맡았다.
분과로는 동양화부와 서양화부, 조각부, 공예부, 아동미술부, 선전미술대가 설치되었다. 동양화부 위원장 노수현, 위원 김용준, 변관식, 허백련, 서양화부 위원장 김주경, 위원 길진섭, 오지호, 이병규, 이종우, 조각부 위원 김두일, 문석오, 공예부 위원 이순석, 아동미술부 위원장 이병규, 선전미술부 부장 길진섭, 위원 이순석 등 총 186명이었다. 당시 조각부 위원 문석오는 평양에서 활동하였으며, 후에 동양화부 김용준, 서양화부 위원장 김주경, 서양화부 위원 길진섭 등은 월북하였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출신인 임화와 김남천이 각각 의장과 서기장을 맡아 좌익 문인들이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념 대립에 따른 정치색이 드러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참여 단체인 조선미술건설본부에는 후에 좌파, 우파로 분류되는 미술인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다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친일 활동 이력이 눈에 띄는 김은호, 심형구, 김인승, 김경승, 이상범, 윤효중, 배운성, 송정훈 등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
분단이 가시화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군정이 설치되는 지역까지 포함하여 전국에서 185명의 회원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