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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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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연흥은 1940년 평양에서 조만식과 전선애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7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 등을 거쳐 임원진으로 승진하여 총무국장, 제작국장, 전무이사를 역임하고 2007년 정년퇴직했다. 퇴임 후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초빙되었으며, 저서로는 《아마존 야성기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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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흥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조만식의 넷째 아들로 194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6년 아버지 조만식이 소련군정에 의해 고려호텔에 감금되자, 어머니 전선애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67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에서 사회부장, 정치부 차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으며, 1988년 이사대우로 승진하며 임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전무이사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30여 년간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2. 1. 유년 시절

194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조만식과 그의 후처 전선애 사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1월, 아버지 조만식이 평양의 고려호텔에 감금되자 어머니 전선애를 따라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3년 부산 초량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중앙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56년 중앙중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1959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여 1967년 졸업하였다.

2. 2. 조선일보 기자 생활

1967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문화부, 사회부 등에서 기자로 근무했으며, 이후 주요 보직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연도직책
1979년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1984년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1984년조선일보 주간조선담당 부장
1984년조선일보 총무부 부장
1985년조선일보 사회부 부장
1987년조선일보 총무국 부국장 겸 사업부장
1988년조선일보 총무국 국장 (이사대우 승진)


2. 3. 조선일보 임원 생활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조선일보 총무국장 이사대우를 지냈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총무국장 겸 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제작국장 겸 이사,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담당 상무이사를 맡았다. 2004년에는 제작담당 전무이사로 승진했으며, 같은 해 한국신문협회 신문잉크 비상임 이사로도 활동했다. 2007년 조선일보 전무이사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였다.

3. 경력

1967년 조선일보에 평기자로 입사하여 문화부, 사회부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30여 년간 조선일보에 재직하며 임원직까지 올랐다. 2007년 정년퇴직 후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직책소속/비고
1967년기자조선일보 입사 (문화부, 사회부)
1979년사회부 차장조선일보
1984년정치부 차장조선일보
1984년주간조선담당 부장조선일보
1984년총무부 부장조선일보
1985년사회부 부장조선일보
1987년총무국 부국장 겸 사업부장조선일보
1988년총무국 국장, 이사대우조선일보
1993년 ~ 1994년총무국장 이사대우조선일보
1994년 ~ 1996년총무국장 겸 이사조선일보
1996년 ~ 2001년제작국장 겸 이사조선일보
2001년 ~ 2004년제작담당 상무이사조선일보
2004년제작담당 전무이사조선일보
2004년신문잉크 비상임 이사한국신문협회
2007년전무이사 정년퇴직조선일보
2007년이사장방일영문화재단


4. 저서


  • 《아마존 야성기행》 (1974)

5. 취미

테니스골프를 즐긴다.

6.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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