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흔 (군위)
1. 개요
조흔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조림의 아들이자 성양후이다. 원연 원년(기원전 12년)에 성양후에 봉해졌으며, 수화 2년(기원전 7년)에 성제가 조씨와 잠자리를 가진 후 갑작스럽게 죽자, 조씨가 성제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듬해 조흔은 조흠과 함께 관작을 빼앗기고 요서로 유배되었다. 그는 위위를 역임했으며,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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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외척 -
박소 (전한)
박소는 전한 고제 유방의 후궁 박씨의 동생으로, 문제 유항 즉위에 기여하여 중용되었으나, 사자를 살해한 죄로 자결하여 외척 처벌의 전례가 되었다. -
전한의 외척 -
여통 (연왕)
여통은 고황후 여씨의 외척으로, 추후에 봉해졌다가 연영왕 유건 사후 연왕이 되었으나, 여씨 일족 주살 때 함께 죽임을 당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
조흔은 전한의 인물로, 아버지 조림의 뒤를 이어 원연 원년(기원전 12년)에 성양후(成陽侯) 작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수화 2년(기원전 7년) 성제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에 연루되어 정치적으로 몰락하였다. 이듬해(기원전 6년), 조흔은 조흠과 함께 관작을 박탈당하고 요서군으로 유배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성양후 즉위
원연 원년(기원전 12년), 아버지 조림의 뒤를 이어 성양후(成陽侯)에 봉해졌다.
수화 2년(기원전 7년), 조씨와 잠자리를 가진 성제가 옷을 입으려다 갑자기 죽었다. 이 때문에 조씨가 성제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아 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조흔은 조흠과 함께 관작을 빼앗기고 요서로 유배되었다.
2.2. 전한 성제의 죽음과 몰락
수화 2년(기원전 7년), 성제가 조씨와 잠자리를 가진 후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조씨는 자결하였고, 조흔은 이듬해 조흠과 함께 관작을 박탈당하고 요서군으로 유배되었다.
2.2.1. 조흔의 몰락과 중도진보적 해석
원연 원년(기원전 12년), 아버지 조림의 뒤를 이어 성양후(成陽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수화 2년(기원전 7년), 조씨와 잠자리를 가진 성제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성제의 죽음이 조씨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의 여파는 조흔에게도 미쳐, 이듬해(기원전 6년)에 조흠과 함께 관작을 박탈당하고 요서군으로 유배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였다. 성제의 급사와 관련된 이 일련의 과정은 당시 권력 구도 속에서 조씨 가문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3.1. 위위 재임
기원전 8년, 순우장의 뒤를 이어 위위에 임명되었다. 위위는 전한 시대 수도의 경비와 궁궐 수비를 담당하던 구경 중 하나였다. 조흔의 후임으로는 조현이 임명되었다. 이 내용은 반고의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등에 기록되어 있다.
4. 가계
아버지는 조림이다.
5. 출전
* 반고, 《한서》
권11 애제기
권18 외척은택후표
** 권19하 백관공경표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