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전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현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원연 3년 광록훈으로 승진하여 수화 원년에는 태자태부에 임명되었다. 성제 시기 유경을 정도왕에 봉하는 문제에 대해 태자 유흔을 지지하다가 좌천되었고, 건평 2년에는 부태후의 사주를 받아 부희를 탄핵하는 데 동참했다가 애제의 추궁을 받고 탄핵당했다. 조현은 사형에서 감면되었지만, 함께 탄핵을 받은 주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현 (전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태자태부 - 응우옌반뜨엉
  • 태자태부 - 방현령
    방현령은 당나라 초기의 재상으로, 당 태종을 보좌하여 정관의 치를 이룩하고, 제도 정비와 역사서 편찬에 기여했으며, 능연각 24공신에 선정되었다.
  • 전한의 태부 - 복식
    복식은 전한 무제 시대에 재산을 기부하고 관직에 나아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며, 염철 전매 정책 폐지를 주장하다가 좌천되었다.
  • 전한의 태부 - 심이기
    심이기는 전한 초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유태공을 보좌하다 고황후 여치의 측근으로 우승상까지 올랐으나 여후 사후 면직되었고, 회남왕 유장에게 살해당한 후 유후로 시호를 받았으나 아들의 모반으로 후국이 단절되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행적

건평 2년(기원전 5년), 부태후승상 주박에게 평소 자신이 원망하던 부희를 탄핵할 것을 사주하였다. 주박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어사대부 조현은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주박이 설득하여 동참하였다. 주박은 부희만 탄핵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예전에 죄를 짓고 쫓겨난 하무도 함께 탄핵하였다.

애제는 부태후가 부희와 사이가 나빴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의심하여 조현을 추궁하였다. 조현은 모두 사실대로 말하였고, 대신들은 조현과 주박을 탄핵하였다. 조현은 사형에서 3등급이 감면되었고, 주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 초기 관직 생활

원연 3년(기원전 10년), 조현은 상서복야(尙書僕射)에서 광록훈으로 승진하였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태자태부에 임명되었다. 이때 성제초효왕의 손자 유경을 정도왕(定陶王)에 봉하여 정희(丁姬)를 모시게 하였다. 태자 유흔은 성제에게 감사를 표하려 하였는데, 태자소부 염숭은 《춘추》를 인용하며 반대하였고 조현은 찬성하였다. 유흔은 조현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제에게 감사장을 보냈으나 도리어 성제는 조서를 내려 그 이유를 물었고, 상서(尙書)의 탄핵을 받아 조현은 중소부(中少府)로 좌천되고 사단이 태자태부가 되었다.

건평 2년(기원전 5년), 부태후승상 주박에게 평소 자신이 원망하던 부희를 탄핵할 것을 사주하였다. 주박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어사대부 조현은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주박이 설득하니 동참하였다. 주박은 부희만 탄핵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예전에 죄를 짓고 쫓겨난 하무도 함께 탄핵하였다.

그러나 애제는 부태후가 부희와 사이가 나빴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의심하여 조현을 추궁하였다. 조현은 모두 사실대로 말하였고, 대신들은 조현과 주박을 탄핵하였다. 조현은 사형에서 3등급이 감면되었고, 주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2. 태자 유흔의 책봉 문제

수화 원년(기원전 8년), 조현은 태자태부에 임명되었다. 이때 성제초효왕의 손자 유경을 정도왕(定陶王)에 봉하여 정희(丁姬)를 모시게 하였다. 태자 유흔은 성제에게 감사를 표하려 하였는데, 태자소부 염숭은 《춘추》를 인용하며 반대하였고 조현은 찬성하였다. 유흔은 조현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제에게 감사장을 보냈으나, 도리어 성제는 조서를 내려 그 이유를 물었고, 상서(尙書)의 탄핵을 받아 조현은 중소부(中少府)로 좌천되고 사단이 태자태부가 되었다.

2.3. 부태후와의 갈등과 좌천

원연 3년(기원전 10년), 조현은 상서복야(尙書僕射)에서 광록훈으로 승진하였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는 태자태부에 임명되었다. 이때 성제초효왕의 손자 유경을 정도왕(定陶王)에 봉하여 정희(丁姬)를 모시게 하였다. 태자 유흔은 성제에게 감사를 표하려 하였는데, 태자소부 염숭은 《춘추》를 인용하며 반대하였고 조현은 찬성하였다. 유흔은 조현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제에게 감사장을 보냈으나 도리어 성제는 조서를 내려 그 이유를 물었고, 상서(尙書)의 탄핵을 받아 조현은 중소부(中少府)로 좌천되고 사단이 태자태부가 되었다.

건평 2년(기원전 5년), 부태후승상 주박에게 평소 자신이 원망하던 부희를 탄핵할 것을 사주하였다. 주박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어사대부 조현은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주박이 설득하니 동참하였다. 주박은 부희만 탄핵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예전에 죄를 짓고 쫓겨난 하무도 함께 탄핵하였다.

그러나 애제는 부태후가 부희와 사이가 나빴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의심하여 조현을 추궁하였다. 조현은 모두 사실대로 말하였고, 대신들은 조현과 주박을 탄핵하였다. 조현은 사형에서 3등급이 감면되었고, 주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출전

* 班固중국어,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권83 설선주박전
권88 유림전
권97하 외척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