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열후
1. 개요
조 열후는 진(晉)나라의 조씨 가문의 인물로, 기원전 403년 한(韓) 경후, 위(魏) 문후와 함께 주(周)나라 위열왕으로부터 제후로 인정받아 조나라를 건국했다. 그는 아버지 조완을 제후로 추증했으며, 재위 3년 만에 사망했다. 조 열후는 음악을 좋아하여 가수를 총애했지만,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국정을 쇄신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아들 조장이 어렸기에 동생 조무공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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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0년 사망 -
트라시마코스
트라시마쿠스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펼쳐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쟁의 발단이 되었으며, 그리스 수사학 발전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활동과 주장에 대한 기록은 제한적이다. -
조나라의 군주 (전국) -
조 무령왕
조 무령왕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군주로, 호복기사라는 군사 개혁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북방 민족과의 관계 개선 및 영토 확장에 기여했으나, 만년에 왕실 내 권력 다툼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여 사마천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
조나라의 군주 (전국) -
조 효성왕
조 효성왕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군주로, 재위 기간 동안 강성해진 진나라의 위협에 직면하여 장평 전투 발발의 원인이 되었으나 이목과 방연을 등용하여 국력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
전국 시대의 군주 -
위 문후
위 문후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군주로서 이회, 오기 등 인재를 등용하고 법가적 개혁을 통해 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법치를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여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전국 시대의 군주 -
제 선왕
제 선왕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소진과 맹자를 등용하여 국정을 자문하고 정치 이론에 대한 조언을 구했으며, 한나라를 구원하고 위나라를 격파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직하를 번성시켰다.
2. 생애
진나라(晉)의 육경(六卿)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은 조 양자 무휼과 조 헌자 조완의 활약으로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지만, 명목상으로는 진나라의 신하로 있었다. 기원전 403년, 한 경후, 위 문후와 함께 주나라(周)의 위열왕에게 제후로 인정받아 진나라에서 분리되었다. 조 열후는 아버지 조완을 제후로 추증하고, 재위 3년만에 사망하였다.
아들인 조장이 있었으나, 나이가 어려 다른 제후국들의 내정 간섭을 우려하여 동생인 무공이 즉위하였다.
2.1. 조나라 건국
진나라(晉)의 유력 가문이었던 조씨 가문은 조 양자 무휼과 조 헌자 조완의 활약으로 사실상 독립국과 다름없는 세력을 갖추게 되었다. 기원전 403년, 조 열후는 한 경후, 위 문후와 함께 주나라 위열왕에게 제후로 인정받아 정식으로 조나라를 건국하였다. 아버지 조 헌자 조완을 제후로 추증하였다.
2.2. 이른 죽음과 후계
조 열후는 제후로 즉위한 지 3년 만에 사망하였다. 아들인 조장이 있었으나, 나이가 어렸다. 조나라는 제후국으로 인정받은 지 불과 3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후국들의 내정 간섭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열후의 동생인 무공이 즉위하였다.
3. 일화
열후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특히 정나라 출신 가수를 총애했다. 상국 공중련에게 가수의 신분을 높여달라고 요청했으나, 공중련은 악공의 신분을 높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거절했다. 대신 밭을 주라는 명에는 따르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끌며 열후가 마음을 바꾸기를 기다렸다. 결국 열후는 우축, 서월, 순흔 등의 현자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꿔 가수에게 밭을 주는 것을 보류하고, 현자들을 등용했다.
3.1. 음악 애호와 공중련의 간언
조 열후는 음악을 좋아하여 정나라 출신 가수를 총애했다. 어느 때 상국 공중련에게 악인의 신분을 높여주라고 명했다. 그러나 공중련은 "악인을 부유하게 해 주는 것은 좋지만, 신분을 높여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열후는 "밭 1만 이랑을 주어라"라고 명했다. 공중련은 따랐지만 그럴 마음은 없었다. 언젠가 열후가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개월 후, 열후는 그 후의 일을 물었지만 공중련은 "아직 적당한 밭을 찾지 못해서"라고 말을 흐렸다. 그 후에도 열후는 물어왔지만 그때마다 공중련은 병을 핑계로 입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입궐하여 우축, 서월, 순흔 등을 추천했다. 열후는 끈질기게 가수에게 줄 밭에 대해 물었지만, 공중련은 말을 흐렸다.
3.2. 현자들의 등용과 국정 쇄신
정나라 출신의 가수를 좋아한 열후는 어느 때 상국 공중련에게 악인의 신분을 높여주라고 명했다. 그러나 공중련은 악인을 부유하게 해주는 것은 좋지만 신분을 높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열후는 밭 1만 이랑을 주라고 명했으나, 공중련은 따르지 않았다. 1개월 후, 열후는 그 후의 일을 물었지만 공중련은 "아직 적당한 밭을 찾지 못해서"라고 말을 흐렸다. 그 후에도 열후는 물어왔지만 그때마다 공중련은 병을 핑계로 입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입궐하여 우축, 서월, 순흔 등을 추천했다.
열후는 끈질기게 가수에게 줄 밭에 대해 물었지만, 공중련은 말을 흐렸다. 우축은 인의의 도를, 순흔은 현자를 선택하여 관직에 앉혀 그 재능을 사용할 것을, 서월은 재화를 검약하고 공로를 따져 상을 줌에 마땅하지 않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 세 사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열후는 공중련에게 급사를 보내 가수에게 줄 밭에 관한 일을 보류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우축을 스승으로, 서월을 내사로, 순흔을 중위로 임명하고, 공중련에게도 의상 두 벌을 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