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윌리엄스 (쿡 제도)
1. 개요
조 윌리엄스(1934년~2020년)는 쿡 제도 출신의 의사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68년 쿡 제도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보건부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해외 선거구 의원으로 재선되었다. 윌리엄스는 림프사상충증 연구 및 퇴치에 기여하여 세계 보건 기구로부터 감사장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쿡 제도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왕 공로 훈장 동반자 작위를 받았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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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 윌리엄스 |
|---|---|
| 원어 이름 | Joseph George Williams |
| 출생일 | 1934년 10월 4일 |
| 출생지 | 아이투타키, 쿡 제도 |
| 사망일 | 2020년 9월 4일 |
| 사망지 | 뉴질랜드 오클랜드 |
| 학력 | 오타고 대학교 더니든 의과대학, 하와이 대학교 |
| 정당 | 쿡 제도당 |
| 쿡 제도 총리 | 재임 기간: 1999년 7월 29일 – 1999년 11월 18일 이전: 제프리 헨리 이후: 테레파이 마오아테 |
|---|---|
| 외무부 장관 | 재임 기간: 1999년 7월 29일 – 1999년 11월 18일 총리: 본인 이전: 이나티오 아카루루 이후: 로버트 우온톤 |
| 보건 및 교육부 장관 | 재임 기간: 1974년 – 1978년 총리: 앨버트 헨리 |
| 보건, 관광, 교통 및 국영 기업부 장관 | 재임 기간: 1994년 – 1996년 총리: 제프리 헨리 |
| 국회의원 (해외 선거구) | 임기: 1994년 3월 24일 – 2004년 9월 7일 이전: 이아베타 아서 이후: 없음 (선거구 폐지) |
| 부총리 | 노먼 조지 투포우 페이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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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 대표 | 아페네라 쇼트 |
| 훈장 | 뉴질랜드 공로 훈장(Q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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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제도의 총리 -
마크 브라운
마크 브라운은 2010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어 2022년 총리로 재임명되었으며, 2023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고 2024년 3자 방위 협정을 지지했다. -
뉴질랜드의 정치인 -
데이비드 롱이
뉴질랜드의 제32대 총리이자 노동당 당수였던 데이비드 롱은 급진적인 경제 개혁인 로저노믹스를 단행하고 강력한 반핵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동성애 법 개혁 및 마오리어 공식 언어 지정 등 사회 개혁에도 힘썼다. -
뉴질랜드의 정치인 -
주디스 콜린스
주디스 콜린스는 뉴질랜드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국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여러 장관직을 거쳤으며, 2020년에는 국민당 당수를 역임했으나, 2023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7개 부처 장관직을 동시에 맡았다. -
2020년 사망 -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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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사망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2. 초기 생애 및 가족
윌리엄스는 1934년 10월 4일 아이투타키에서 태어났으며, 팔머스턴섬 출신 윌리엄 마스터스의 후손이다. 그는 1947년 뉴질랜드로 건너가 정부 장학금을 받아 노스랜드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3. 의료 경력
윌리엄스는 1960년 오타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하와이 대학교에서 공중 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4년 쿡 제도로 돌아와 의료 감독관, 외과 의사, 내과 의사, 보건부 국장, 사회 서비스 사무관 등 다양한 의료 및 행정직을 역임했다.
3.1. 림프사상충증 연구 및 퇴치 활동
1964년 쿡 제도로 돌아온 후, 윌리엄스는 열대병, 특히 사상충증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쿡 제도가 림프사상충증의 공중 보건 문제를 해결했음을 세계 보건 기구(WHO)로부터 인정받는 데 필요한 연구와 공중 보건 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세계 보건 기구 집행 이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98년부터 2004년까지는 림프사상충증 퇴치를 위한 글로벌 프로그램 검토 그룹에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쿡 제도 정부에 의해 세계 보건 기구 수장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선출되지는 못했다.
3.2. 논란
1999년, 윌리엄스는 환자 중 한 명을 오진하고 유통 기한이 지난 약을 처방하여 뉴질랜드 보건 및 장애 위원회로부터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2년, 윌리엄스는 쿡 제도에서 제안된 의료 임상 시험과 관련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시험은 당뇨병 치료를 위해 돼지 세포를 인간에게 주입하는 내용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법적으로 시행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쿡 제도로 옮겨 추진되었다. 윌리엄스는 이 시험이 쿡 제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강력히 지지했지만, 이 계획은 많은 비판과 우려를 낳았다.
2015년 윌리엄스는 습진 치료에 대한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출판했다. 이후 2018년, 일부 환자들의 공개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스는 승인되지 않은 습진 치료법을 사용한 혐의로 벌금 10와 법원 비용 145를 부과받았으며, 3년 동안 감독 하에 진료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4. 정치 경력
윌리엄스는 1968년 선거에서 쿡 제도당 후보로 아이투타키 선거구에 출마하여 처음으로 쿡 제도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앨버트 헨리 총리 정부에서 1974년부터 1978년까지 보건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헨리 총리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했다. 보건부 장관 시절, 그는 뉴질랜드에서 의료 면허를 박탈당한 체코 출신 암 치료사 밀란 브리히가 쿡 제도에 진료소를 개설하는 것을 지지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선거 직전 쿡 제도당을 탈당하고 통합당 소속으로 아로랑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가 다시 쿡 제도당에 복당하여, 1994년 선거에서 해외 거주 쿡 제도인을 대표하는 해외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다시 보건부, 관광부, 교통부, 국영 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쿡 제도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총리이자 오랜 당 대표였던 제프리 헨리와는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당내 갈등 끝에 헨리가 사임한 후, 윌리엄스는 1999년 7월 쿡 제도당의 총리 후보로 선출되어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주로 해외에 거주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 연정 파트너였던 뉴얼라이언스당이 연정에서 탈퇴하면서 정치적 기반이 흔들렸다. 결국 1999년 11월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약 4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03년에는 해외 선거구가 폐지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윌리엄스는 뉴질랜드에서 정치 활동을 시도했다. 2005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뉴질랜드 퍼스트 당 후보로 마웅가키에키에 선거구에 출마하고 정당 명부 15위에 올랐으나 낙선했다. 2017년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는 '원 퍼시픽'이라는 정치 운동을 조직하고 마오리당과 협력하여 파시피카(태평양 도서국 출신 이주민) 후보를 마오리당 명부로 출마시키기도 했다.
4.1. 쿡 제도당 내분 및 탈당
윌리엄스는 1978년 쿡 제도 의회 선거 직전에 쿡 제도당을 떠난 세 명의 저명한 당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후 통합당 소속으로 아로랑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가 다시 쿡 제도당에 재가입하여, 1994년 쿡 제도 의회 선거에서 해외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쿡 제도당 소속이었지만, 1979년부터 2006년까지 당 대표를 지낸 제프리 헨리 총리(1989년~1999년 재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쿡 제도당 내에서는 뉴얼라이언스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에 대한 반대가 많았고, 몇 차례의 탈당 사태 끝에 헨리는 당내 지지 기반을 잃고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1999년 7월, 윌리엄스는 제프리 헨리의 뒤를 이어 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그가 주로 해외에 거주했다는 점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같은 해 10월, 연정 파트너였던 뉴얼라이언스당이 연립 정부에서 탈퇴하면서 윌리엄스 정부는 의회 과반수를 잃게 되었다. 윌리엄스는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려 했지만, 결국 다음 달인 11월에 제출된 불신임 결의안이 야당인 민주동맹당과 뉴얼라이언스당의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총리로는 테레파이 마오아테가 선출되었다. 윌리엄스는 2003년 해외 선거구가 폐지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4.2. 뉴질랜드 이주 및 재선
윌리엄스는 1978년 선거 낙선 이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그는 쿡 제도당에 다시 합류하여, 주로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해외 쿡 제도인을 대표하는 해외 선거구 후보로 1994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재선 후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보건부, 관광부, 교통부, 국영 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윌리엄스는 쿡 제도당 소속이었지만, 오랜 기간 당 대표(1979년~2006년)이자 당시 총리(1989년~1999년)였던 제프리 헨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쿡 제도당 내 다수는 뉴 얼라이언스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에 반대했으며, 몇 차례의 탈당 사태 이후 헨리는 당내 지지 기반을 잃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999년 7월, 윌리엄스는 당내 경선을 통해 어렵게 새로운 총리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가 주로 쿡 제도 밖에서 생활했다는 점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총리 취임 이후에도 정치적 기반은 불안정했다. 1999년 10월, 연정 파트너였던 뉴 얼라이언스당이 연립 정부에서 탈퇴하면서 과반수 의석을 상실했다. 윌리엄스는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려 시도했지만, 다음 달인 11월에 야당인 민주동맹당과 뉴 얼라이언스당이 제출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테레파이 마오아테가 새로운 총리로 취임했다. 윌리엄스는 2003년 해외 선거구가 폐지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윌리엄스는 뉴질랜드에서 정치 활동을 재개하려 했다. 2005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뉴질랜드 퍼스트 당의 정당 명부 15번 후보로 등록하고, 마웅가키에키에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에서 3위에 그쳤고, 뉴질랜드 퍼스트 당이 7석을 얻는 데 그쳐 비례대표로도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2017년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 'One Pacific영어'이라는 정치 운동을 조직하며 다시 뉴질랜드 정치에 참여했다. 원 퍼시픽은 이후 마오리당과 협력하여 마오리당의 정당 명부를 통해 파시피카(태평양계) 후보를 출마시키는 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4.3. 총리직 도전과 실패
쿡 제도당에 재가입한 윌리엄스는 해외에 거주하는 쿡 제도인(주로 뉴질랜드)을 대표하는 해외 선거구 후보로 1994년 쿡 제도 의회 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쿡 제도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보건부, 관광부, 교통부, 국영 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쿡 제도당 소속이었지만, 윌리엄스는 1989년부터 총리직을 맡고 있던 제프리 헨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쿡 제도당 내에서는 뉴 얼라이언스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결국 제프리 헨리는 당내 반대 세력에 밀려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1999년 7월, 윌리엄스는 쿡 제도당의 새로운 총리 후보로 가까스로 지명되었다. 하지만 그가 주로 쿡 제도 바깥에서 생활했다는 점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일었다. 총리 취임 이후에도 정치적 기반은 불안정했다. 1999년 10월, 연정 파트너였던 뉴 얼라이언스당이 연립 정부에서 탈퇴하면서 윌리엄스 정부는 의회 과반수를 잃게 되었다. 윌리엄스는 새로운 연정 구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다음 달인 11월, 야당인 민주동맹당과 뉴 얼라이언스당이 제출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테레파이 마오아테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윌리엄스는 2003년 해외 선거구가 폐지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4.4. 뉴질랜드 정치 활동
윌리엄스는 쿡 제도에서의 정치 활동 이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그는 이후 뉴질랜드에서 정치 경력을 쌓고자 했으며, 200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뉴질랜드 퍼스트 당 후보로 정당 명부 15위에 올랐고 마웅가키에키에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는 마웅가키에키에 선거구에서 3위를 기록했으나, 뉴질랜드 퍼스트 당이 총 7석을 얻는 데 그쳐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지는 못했다.
이후 윌리엄스는 2017년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 뉴질랜드 정치에 다시 참여하여, '원 퍼시픽' 운동을 창설했다. 이 운동은 후에 마오리당과 협력하여 마오리당의 정당 명부에 파시피카(태평양 도서국 출신 이주민) 후보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5. 서훈
윌리엄스는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다. 2004년에는 파시피카 의학 협회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2011년 2011년 뉴질랜드 신년 명예 훈장에서 쿡 제도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왕 공로 훈장 동반자로 임명되었다.
2015년, 윌리엄스는 파시피카 의학 협회 초대 후원자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림프사상충증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 보건 기구로부터 감사상을 받았다.
6. 사망
윌리엄스는 2020년 8월 13일, 뉴질랜드의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중 COVID-19 양성 판정을 받은 후 오클랜드의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2020년 9월 4일, 85세의 나이로 이 바이러스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