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날
1. 개요
좌절의 날은 2011년 6월 5일, 2011년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이후 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 계획한 추가 시위이다.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에서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방위군 간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사망 및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인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 5일 좌절의 날 시위에 시리아는 시위대의 국경 접근을 묵인했고, 이스라엘 방위군은 국경 접근을 막으려 했으나 충돌이 발생하여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부가 내부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시위를 조장했다고 비판했으며, 미국은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했다.
| 명칭 | 나크사의 날 |
|---|---|
| 영어 명칭 | Naksa Day |
| 의미 | 나크사 기념 |
| 관련 기념일 | 나크바의 날 |
| 날짜 | 6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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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사건 | 제3차 중동 전쟁 (1967년 6월 5일)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의 상실과 점령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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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결과 | 서안 지구, 가자 지구, 골란 고원, 시나이 반도 점령 팔레스타인 난민 발생 |
| 목적 |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저항 및 팔레스타인인의 권리 회복 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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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활동 | 시위 및 행진 연설 및 문화 행사 희생자 추모 |
|---|---|
| 주요 장소 |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레바논 등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
| 주요 내용 | 이스라엘 군과의 충돌 발생 시위대의 국경 접근 시도 인명 피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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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단체 |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및 관련 시민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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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중동 전쟁 -
1967년 팔레스타인인 탈출
1967년 팔레스타인인 탈출은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약 3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귀환 불허와 인권 침해 논란 속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
강제 이주 -
대서양 노예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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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 -
크로스로드 작전
크로스로드 작전은 미국이 1946년 비키니 환초에서 핵무기 영향을 평가하고 군사적 활용을 모색하기 위해 실시한 핵실험으로, 핵무기 경쟁 심화와 냉전 시대 긴장 고조, 비키니 환초 주민들의 환경 오염 및 건강 문제 야기, 핵무기 사용 윤리 논쟁을 초래했다.
2. 2011년 나크바의 날 및 좌절의 날 시위
2011년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와 6월 5일 좌절의 날(나크사 데이) 시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6월 5일 시위에서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시위대 간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시위대에게 국경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시위대는 이를 무시하고 국경 철조망을 넘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시위대가 멈추지 않자 시위대 하반신에 사격했으며, 12명이 부상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리아 언론은 23명이 사망하고 350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군이 지뢰를 설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 방위군은 지뢰 폭발이 국경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시리아 측에서 발생했으며, 시위대 일부는 화염병 투척과 타이어 소각으로 인해 국경에 도착하기 전인 쿠네이트라 근처에서 이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시리아 정부가 시리아 내전 등 내부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시위대와의 충돌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국무부는 인명 피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스라엘은 주권국으로서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시리아 국영 신문은 시리아 난민 60만 명이 "골란고원의 점령으로 인해 쫓겨난 마을과 논밭으로 행진할 것이다"며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2.1. 배경
يوم النكسة아랍어는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 문제를 기억하는 나크바의 날(5월 15일) 시위가 2011년 5월 15일에 발생하여, 시리아 측 마즈달샴스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팔레스타인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방위군 간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13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텔아비브에서 아랍인 트럭 운전 기사의 돌진으로 이스라엘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운동가들은 6월 5일 좌절의 날에 추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레바논에서는 운동가의 국경 근처 접근을 막았지만, 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국경 근처인 쿠네이트라와 마즈달샴스 근처로 이동하였다. 6월 5일 다마스쿠스 인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다수가 버스를 타고 국경 근처로 이동하였으며, 시리아군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2.2. 나크바의 날 시위 (5월 15일)
2011년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 때, 시리아 측 마즈달샴스에서 국경을 넘으려던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방위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팔레스타인인 13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한, 텔아비브에서는 아랍인 트럭 운전기사가 돌진하여 이스라엘인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운동가들은 6월 5일 좌절의 날에 추가 시위를 계획했다.
2.3. 좌절의 날 시위 (6월 5일)
2011년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에서 마즈달샴스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방위군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13명 이상이 사망하고, 텔아비브에서 아랍인 트럭 운전기사의 고의적인 차량 돌진으로 이스라엘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활동가들은 6월 5일 좌절의 날에 추가 시위를 계획했다.
레바논에서는 운동가들의 국경 접근을 막았지만,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국경 근처인 쿠네이트라와 마즈달샴스 근처로 이동했다. 6월 5일 다마스쿠스 인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다수가 버스를 타고 국경 근처로 이동했으며, 시리아군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국경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시위대는 이를 무시하고 국경 철조망을 넘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에 따르면 시위대가 멈추지 않아 시위대 하반신에 사격했으며, 이스라엘 방위군은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리아 언론은 23명이 사망하고 3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군이 지뢰를 설치했다고 주장했으나, 이스라엘 방위군은 지뢰 폭발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국경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시리아 측에서 터진 것이며, 시위대 일부는 화염병 투척과 타이어 소각으로 인해 국경에 도착하기 전인 쿠네이트라 근처에서 이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3. 각국의 반응 및 입장
2011년 5월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 당시 마즈달샴스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방위군 간의 충돌로 13명 이상이 사망하고,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6월 5일 좌절의 날에 추가 시위가 계획되었다.
레바논에서는 시위대의 국경 접근이 제한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시리아 국경 근처인 쿠네이트라와 마즈달샴스로 이동했다. 다마스쿠스 인근 팔레스타인인들은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이동했으며, 시리아군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 방위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국경 철조망을 넘자, 이스라엘 방위군은 시위대 하반신에 사격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12명이 부상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시리아 언론은 23명이 사망하고 350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군이 지뢰를 설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 방위군은 지뢰 폭발이 시리아 측에서 발생했으며, 시위대 일부는 화염병 투척과 타이어 소각으로 인해 국경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 시리아, 미국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3.1. 이스라엘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레바논과의 국경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는 점을 들어, 시리아 정부가 시리아 내전 등 내부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시위대와의 충돌을 조장했으며, 실질적으로 시위대에 허가를 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3.2. 시리아
시리아 국영 신문은 시리아 난민 60만 명이 "골란고원의 점령으로 인해 쫓겨난 마을과 논밭으로 행진할 것이다"며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3.3. 미국
미국 국무부는 인명 피해에 대해 염려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나, 동시에 이스라엘은 주권국으로서 여느 주권국과 같이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