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비핵지대
1. 개요
중앙아시아 비핵지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5개국이 핵무기 개발 및 배치를 금지하기 위해 2006년 체결한 조약이다. 1992년 알마티 선언을 시작으로, 2006년 조약 서명, 2009년 발효되었으며,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는 2014년 조약 의정서에 서명하여 핵무기 사용 위협 금지를 약속했다. 이 조약은 핵무기 및 방사성 폐기물의 연구, 개발, 제조, 저장, 획득, 소유, 관리를 금지하며,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경험은 북한 비핵화 해법 모색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 명칭 | 중앙아시아 비핵무기지대 조약 |
|---|---|
| 원어 명칭 | Central Asian Nuclear-Weapon-Free Zone Treaty |
| 서명일 | 2006년 9월 8일 |
| 서명 장소 | 세미팔라틴스크 |
| 효력 발생일 | 2009년 3월 21일 |
| 종류 | 핵 군축 |
| 당사국 수 | 5개국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비고 | 녹색 - 서명 및 비준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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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핵무기 없는 지대 (NWFZ) 개요 중앙아시아 NWFZ 이니셔티브 의회, CANWFZ 조약 비준 및 외부 차입 프로그램 승인 중앙아시아 비핵 지대, 토요일 발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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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관계 -
경제 협력 기구
경제협력기구(ECO)는 1985년 이란, 파키스탄, 튀르키예가 설립한 사회·경제 발전 목표의 지역 정부기구로, 1992년 7개국 추가 가입 후 회원국 경제 개발 지원, 역내 무역 증진, 무역 장벽 철폐, 세계 경제 통합 등을 목표로 다양한 분야에서 회원국 간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 -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관계 -
중앙아시아연합
중앙아시아연합은 구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을 위해 제안된 정치·경제적 연합체이며, 1990년대 경제 연합 결성 및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고, 2018년부터 정상 회의를 통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
2009년 발효된 조약 -
리스본 조약 (2007년)
유럽연합의 효율성과 국제적 역할 강화를 목표로 유럽연합 조약과 유럽공동체 설립 조약을 개정하는 리스본 조약(2007년)은 2005년 유럽 헌법 조약 부결 이후 대안으로 추진되어 유럽 의회 및 각국 의회의 권한 강화, EU 외교 정책 효율성 증대, 의사 결정 방식 변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2007년 서명 후 각국 비준을 거쳐 2009년 발효되었다.
2. 역사
1992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알마티 선언을 하여, 비핵지대 창설을 주장했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은 유엔총회에서 중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 방안을 제안했다. 1997년 2월, 중앙아시아 5개국은 알마티에서 정상 회담을 갖고 비핵 지대 구상을 발표했으며, 이후 UN에 조약 초안 작성을 지원을 요청했다. 유엔 총회는 비핵지대 창설을 지지했으며, 2000년 이를 재확인했다. UN 아시아 태평양 평화 군축 센터의 지원으로 1998년부터 UN의 지원 하에 조약 초안 작성을 위한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었다.
핵 강국이 동남아시아 비핵지대 조약에 대한 지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의 5개 상임 이사국이 협상에 참여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조약을 승인했지만, 미국, 프랑스, 영국은 타슈켄트 조약에 러시아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약이 이전 국제 협정에 따른 서명국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조항에 반대했다. 미국은 또한 "지역 및 국제 안보에 해를 끼치거나 유엔 헌장에 보장된 개인 또는 집단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는 기존 안보 협정을 방해하는" 어떠한 지역의 설립에도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미국은 이란의 조약 가입 가능성과 핵무기의 영토 통과 금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2년 9월 사마르칸트 전문가 회의에서 조약안 협상이 종료되었고, 2005년 2월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역내 회의에서 조기 서명을 목표로 하는 "타슈켄트 선언"이 발표되었다. 2006년 9월, 카자흐스탄 구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조약 서명식이 개최되어 5개국이 조약에 서명했다. 2년 동안 각국의 비준절차를 거쳐 2009년 3월 21일 조약이 발효되었다.
안전 보장 이사회의 5개 상임 이사국(또한 5개의 NPT 핵무기 보유국)은 2014년 5월 6일 조약의 의정서에 서명하여 CANWFZ 조약 당사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지 않겠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장을 제공했다. 2016년 5월 현재 미국을 제외한 안전 보장 이사회의 모든 상임 이사국이 의정서를 비준했다.
2.1. 조약 체결 과정
1992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알마티 선언을 하여, 비핵지대 창설을 주장했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은 유엔총회에서 중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 방안을 제안했다. 1997년 2월, 중앙아시아 5개국은 알마티에서 정상 회담을 갖고 비핵 지대 구상을 발표했으며, 이후 UN에 조약 초안 작성을 지원을 요청했다. 유엔 총회는 비핵지대 창설을 지지했으며, 2000년 이를 재확인했다. UN 아시아 태평양 평화 군축 센터의 지원으로 1998년부터 UN의 지원 하에 조약 초안 작성을 위한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었다.
핵 강국이 동남아시아 비핵지대 조약에 대한 지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의 5개 상임 이사국이 협상에 참여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조약을 승인했지만, 미국, 프랑스, 영국은 타슈켄트 조약에 러시아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약이 이전 국제 협정에 따른 서명국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조항에 반대했다. 미국은 또한 "지역 및 국제 안보에 해를 끼치거나 유엔 헌장에 보장된 개인 또는 집단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는 기존 안보 협정을 방해하는" 어떠한 지역의 설립에도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미국은 이란의 조약 가입 가능성과 핵무기의 영토 통과 금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2년 9월 사마르칸트 전문가 회의에서 조약안 협상이 종료되었고, 2005년 2월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역내 회의에서 조기 서명을 목표로 하는 "타슈켄트 선언"이 발표되었다. 2006년 9월, 카자흐스탄 구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조약 서명식이 개최되어 5개국이 조약에 서명했다. 2년 동안 각국의 비준절차를 거쳐 2009년 3월 21일 조약이 발효되었다.
안전 보장 이사회의 5개 상임 이사국(또한 5개의 NPT 핵무기 보유국)은 2014년 5월 6일 조약의 의정서에 서명하여 CANWFZ 조약 당사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지 않겠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장을 제공했다. 2016년 5월 현재 미국을 제외한 안전 보장 이사회의 모든 상임 이사국이 의정서를 비준했다.
2.2. 핵보유국의 입장과 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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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서명 | 기탁 |
|---|---|---|
| 2014년 5월 6일 | 2015년 8월 17일 | |
| 2014년 5월 6일 | 2014년 11월 17일 | |
| 2014년 5월 6일 | 2015년 6월 22일 | |
| 2014년 5월 6일 | 2015년 1월 30일 | |
| 2014년 5월 6일 |
3. 주요 내용
중앙아시아 비핵지대는 체약국에 의한 핵무기 또는 핵폭발 장치의 연구, 개발, 제조, 저장, 획득, 소유, 관리를 금지한다. 또한 체약국에 의한 자국 영토 내에서의 타국의 방사성 폐기물 폐기 허가 등을 금지한다.
의정서에서는 핵무기 보유국이 체약국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조약 또는 의정서 위반에 기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4. 가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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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서명 | 기탁 |
|---|---|---|
2009년 3월 현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5개국이 중앙아시아 비핵지대 조약에 가맹하고 있다. 가맹국들은 2006년 9월 8일에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 가맹 순서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순이다.
5.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경험과 한국에의 시사점
1991년 소련이 멸망하면서 카자흐스탄이 독립했다. 갑자기 세계 4위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소련의 핵탄두 1400여기를 포함해 100여기의 ICBM, 40여대의 전략핵폭격기, 핵실험장, 우라늄 광산과 원자로, 재처리시설을 물려받은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1994년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현금과 기술 원조를 받았다. 핵탄두와 ICBM 등도 러시아로 모두 이전했다.
미국은 1991년부터 16억 달러를 지원해 옛 소련이 카자흐스탄에 배치한 핵무기를 폐기했다.
카자흐스탄은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의 '사파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1994년 고농축우라늄(HEU)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이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현금과 기술 원조를 받았다.
카자흐스탄은 1992~1995년 핵무기 1,000여기 등을 러시아에 넘겼다.
카자흐스탄 북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 폐기에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옛 소련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를 위해 샘 넌, 리처드 루가 미국 상원의원이 1991년 공동으로 발의한 넌-루가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위협감축 협력 프로그램(CTR)을 통해 핵무기와 화학무기, 운반체계 등을 폐기하기 위해 위 법에 따라 기술과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이 위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지원한 총 금액은 16억 달러다. 그 결과 ICBM 537기, 폭격기 128대, 공대지 핵미사일 708개, SLBM 496기, 핵잠수함 27척, 핵실험 터널 194곳을 폐기했다. 아울러 핵 개발에 동원된 옛 소련 과학자 등의 인력을 대상으로 전직(轉職) 훈련과 직장 알선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가진 핵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유출되는 일을 방지했다.
모스크바에 국제과학기술센터(ISTC)를 설립해 핵무기, 화학무기, 미사일 분야 종사자들에게 직업과 연구기회를 제공됐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핵 전문인력도 지원을 받아 원자력 에너지 연구와 교육 부문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2017년까지 ISTC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만 7만 5000명에 이르렀다.
미국은 존 볼턴이 참여했던 리비아 모델인 CVID를 북한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리비아 모델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면서, 매우 반대한다. 그래서 주장되는 것이 카자흐스탄 모델이다. 비핵화를 완료했고, 미국의 경제 지원을 받았으며, 정권도 보장되었다. 2019년 4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북한 비핵화 해법을 찾고 있다.
5.1.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과정
1991년 소련이 멸망하면서 카자흐스탄이 독립했다. 갑자기 세계 4위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소련의 핵탄두 1400여기를 포함해 100여기의 ICBM, 40여대의 전략핵폭격기, 핵실험장, 우라늄 광산과 원자로, 재처리시설을 물려받은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1994년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이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현금과 기술 원조를 받았다. 핵탄두와 ICBM 등도 러시아로 모두 이전했다.
미국은 1991년부터 16억 달러를 지원해 옛 소련이 카자흐스탄에 배치한 핵무기를 폐기했다.
카자흐스탄은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의 '사파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1994년 고농축우라늄(HEU)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이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현금과 기술 원조를 받았다.
카자흐스탄은 1992~1995년 핵무기 1,000여기 등을 러시아에 넘겼다.
카자흐스탄 북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 폐기에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옛 소련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를 위해 샘 넌, 리처드 루가 미국 상원의원이 1991년 공동으로 발의한 넌-루가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위협감축 협력 프로그램(CTR)을 통해 핵무기와 화학무기, 운반체계 등을 폐기하기 위해 위 법에 따라 기술과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이 위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지원한 총 금액은 16억 달러다. 그 결과 ICBM 537기, 폭격기 128대, 공대지 핵미사일 708개, SLBM 496기, 핵잠수함 27척, 핵실험 터널 194곳을 폐기했다. 아울러 핵 개발에 동원된 옛 소련 과학자 등의 인력을 대상으로 전직(轉職) 훈련과 직장 알선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가진 핵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유출되는 일을 방지했다.
모스크바에 국제과학기술센터(ISTC)를 설립해 핵무기, 화학무기, 미사일 분야 종사자들에게 직업과 연구기회를 제공됐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핵 전문인력도 지원을 받아 원자력 에너지 연구와 교육 부문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2017년까지 ISTC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만 7만 5000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