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노 카펠로
1. 개요
지노 카펠로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1920년 파도바에서 태어나 공격수로 활약했다. 파도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AC 밀란, 볼로냐, 노바라 등에서 뛰었으며, 볼로냐에서는 10년간 245경기 80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50년과 1954년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60년 승부 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되었다. 선수 시절 심판 폭행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으며, 1945-46 시즌 코파 알타 이탈리아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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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지노 카펠로 4세 |
|---|---|
| 출생일 | 1920년 6월 2일 |
| 출생지 | 이탈리아 왕국 파도바 |
| 사망일 | 1990년 3월 28일 |
| 키 | 180cm |
| 포지션 | 공격수 |
| 1939–1940 | 파도바 (60경기, 39골) |
|---|---|
| 1940–1943 | 밀란 (74경기, 29골) |
| 1944 | 파도바 (10경기, 6골) |
| 1945–1956 | 볼로냐 (245경기, 80골) |
| 1956–1958 | 노바라 (22경기, 5골) |
| 총 경력 | 411경기, 159골 |
| 1949–1954 | 이탈리아 (11경기, 3골) |
|---|---|
| 1950 | 이탈리아 B (1경기, 2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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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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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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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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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잔프랑코 졸라
잔프랑코 졸라는 나폴리, 파르마, 첼시에서 활약하며 다수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고 뛰어난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로 첼시 팬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및 이탈리아와 영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팀의 감독과 코치를 역임한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안젤로 디 리비오
안젤로 디 리비오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유벤투스와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피오렌티나의 강등 후에도 팀에 남아 승격에 기여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파도바 출신인 카펠로는 고향 클럽 파도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세리에 B에서 2년을 보냈다. 1940년 세리에 A의 밀란으로 이적하여 3년간 활약했으나, 당시 밀란은 우승 경쟁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볼로냐로 이적하여 10년 동안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세리에 B의 노바라에서 2년을 보낸 뒤, 1958년 4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파도바와 밀란 (1938-1943)
파도바 토박이인 카펠로는 고향 클럽 파도바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세리에 B에서 2년을 보낸 후, 1940년 세리에 A의 밀란으로 이적하며 1부 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는 밀란에서 3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 내 두 번째 득점 선수였지만, 당시 밀란은 우승 경쟁을 할 만한 강팀은 아니었다.
2.2. 볼로냐에서의 전성기 (1945-1956)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5년, 카펠로는 볼로냐로 이적하여 10년(혹은 11시즌) 동안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는 볼로냐 소속으로 총 245경기에 출전하여 80골을 기록했고, 이는 팬들에게 그를 잊을 수 없는 선수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볼로냐에 합류한 첫 해에는 Coppa Alta Italia이탈리아어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볼로냐 시절에는 논란도 있었다. 1948년에는 나폴리 사건(Caso Napoli이탈리아어)이라 불리는 스캔들에 연루되어 2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한 1952년 여름에는 심판 폭행 혐의로 이탈리아 축구 연맹으로부터 한때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재판을 통해 해당 행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징계 수위가 1년 출장 정지로 감경되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카펠로는 볼로냐의 주전 선수로서 활약을 이어갔다.
2.3. 노바라와 은퇴 (1956-1958)
볼로냐에서 10년 넘게 활약한 후, 카펠로는 세리에 B의 노바라로 이적하여 선수 경력의 마지막 2년을 보냈다. 그는 노바라에서 두 시즌을 뛰고 1958년에 은퇴를 결정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카펠로는 1949년 5월 22일,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 이탈리아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치른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한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4년 뒤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 대회는 등번호 착용이 의무화된 첫 월드컵이었는데, 카펠로는 등번호 10번을 받아 이탈리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이 상징적인 번호를 달고 뛰었다. 그는 이 대회 본선에서 벨기에를 4-1로 이긴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카펠로가 출전한 두 번의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모두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유망주 시절에는 기술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이후 능수능란한 기술력을 지닌 창의적인 공격수로 늦게 만개했다. 그는 페인트, 정교한 볼 컨트롤, 그리고 드리블 능력으로 유명했지만, 활동량이 적고 경기력에 기복이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나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카펠로는 최전방 공격 라인의 어느 위치에서든 활약할 수 있었으며, 측면이나 중앙 미드필더 역할도 소화 가능했다. 타고난 직감과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점차 센터 포워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경기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경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몇 번의 공 터치만으로 결정적인 도움이나 결승골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기발하면서도 천재적인 선수였지만, 동시에 방종하고 까다로운 성격, 프로 선수로서 부족한 마음가짐으로도 회자되었다. 이로 인해 선수 생활 동안 두 차례나 영구 제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특히 1952년에는 경기 도중 주심을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켜 12개월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으나, 이후 사면되었다.
5. 논란과 사건
지노 카펠로는 기발하면서도 방종한 면모, 까다로운 성격, 프로 의식 부족 등으로 알려진 그는 선수 생활 중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선수 시절 두 차례 큰 징계를 받았는데,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심판 폭행으로 12개월 징계를 받았고, 1960년에는 승부조작 시도(카펠로 사건)로 인해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되었다.
5.1. 1952년 심판 폭행 사건
지노 카펠로는 기발하면서도 방종한 면이 있었고, 까다로운 성격과 프로답지 못한 마음가짐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향은 경기장 내에서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1952년에 발생했다. 카펠로는 1952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을 당시, 경기 도중 주심을 주먹으로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12개월의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으나, 이후 사면되었다.
5.2. 1960년 승부조작 사건 (카펠로 사건)
1960년, 아탈란타 BC 소속의 옛 팀 동료 조반니 카토초에게 제노아 CFC와의 경기에서 고의로 패배해달라고 제안하며 금품을 건네려 했다. 카토초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아탈란타 구단 회장에게 보고했으며, 이후 조사를 통해 카펠로는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한, 당시 세리에 A 최하위로 강등이 예정되어 있던 제노아는 이 사건으로 인해 추가로 승점을 모두 박탈당해 1959-60 시즌을 승점 0점으로 마감했다. 다음 시즌 세리에 B에서도 승점 7점이 감점된 상태로 시즌을 시작하는 불이익을 받았다(이 사건은 '카펠로 사건'으로 불린다).
6. 수상 경력
(내용 없음)
6.1. 볼로냐
* 코파 알타 이탈리아 (Coppa Alta Italia이탈리아어): 19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