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년
1. 개요
진만년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군리에서 시작하여 현령, 광릉상, 우부풍, 태복을 역임했다.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을 지녔으나 외척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렸을 때 밤늦도록 병문안을 갔고, 병길의 추천으로 어사대부가 되었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된 지 7년 후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진함은 소부까지 올랐다.
-
기원전 44년 사망 -
공우
공우는 전한 원제 시대의 청렴결백한 유학자 관료로, 원제의 탕진을 막고 민생 안정에 힘썼으나 종묘 제도 개혁은 실패했다. -
기원전 44년 사망 -
유회 (성양대왕)
유회는 성양강왕 유순의 아들로서 성양대왕이며, 그의 아들 유경이 뒤를 이어 성양효왕이 되었고, 유현 등은 각각 제후에 봉해졌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군리(郡吏)였다가 찰거(察舉)되어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이었으나,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또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려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갔을 때,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병길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었고,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1. 초기 관직 생활
군리(郡吏)를 지내다가 찰거(察舉)로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쳤다. 또 승상 병길이 몸져 누워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다녀간 일이 있었는데,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나중에 병길의 병세는 위독해졌고,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어보니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2. 중앙 관직 진출과 처세
군리(郡吏)를 지내다가 찰거(察舉)로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쳤다. 또 승상 병길이 몸져 누워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다녀간 일이 있었는데,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나중에 병길의 병세는 위독해졌고,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어보니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3. 어사대부 임명과 사망
진만년은 군리(郡吏)였다가 찰거(察舉)되어 현령(縣令)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 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이었으나,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려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갔을 때,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병길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선제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었고, 병길은 우정국, 두연년, 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