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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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만년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군리에서 시작하여 현령, 광릉상, 우부풍, 태복을 역임했다.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을 지녔으나 외척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렸을 때 밤늦도록 병문안을 갔고, 병길의 추천으로 어사대부가 되었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된 지 7년 후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진함은 소부까지 올랐다.

진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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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군리(郡吏)였다가 찰거(察舉)되어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이었으나,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또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려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갔을 때,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병길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었고,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1. 초기 관직 생활

군리(郡吏)를 지내다가 찰거(察舉)로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쳤다.승상 병길이 몸져 누워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다녀간 일이 있었는데,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나중에 병길의 병세는 위독해졌고,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어보니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2. 중앙 관직 진출과 처세

군리(郡吏)를 지내다가 찰거(察舉)로 현령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쳤다. 또 승상 병길이 몸져 누워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다녀간 일이 있었는데,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나중에 병길의 병세는 위독해졌고, 선제가 친히 병길을 찾아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어보니 병길은 우정국·두연년·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2.3. 어사대부 임명과 사망

진만년은 군리(郡吏)였다가 찰거(察舉)되어 현령(縣令)이 되었고, 광릉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우부풍, 태복을 역임하였다.

진만년은 신중하고 공평한 성품이었으나, 외척 허(許)씨·사(史)씨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승상 병길이 병에 걸려 여러 관료들이 문병을 갔을 때, 가승(家丞)까지 돌아갔는데도 진만년은 홀로 남아 밤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갔다. 병길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선제가 뒷일을 맡길 만한 신하를 물었고, 병길은 우정국, 두연년, 진만년을 추천하였다. 진만년은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7년 후 죽었다.

아들 진함은 관직이 소부에 이르렀다.

3. 아들 진함과의 일화

4.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