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연년
1. 개요
두연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곽광이 소제를 옹립할 때 군사공으로 참여했다. 익주 오랑캐의 반란을 진압하고, 상관걸과 상홍양의 모반을 곽광에게 고하여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건평후에 봉해졌다. 이후 태복과 급사중을 역임하며 무제의 잦은 원정을 반면교사 삼아 검소한 정치를 곽광에게 진언하고, 선제 옹립에 기여했다. 곽광 사후 숙청 위기를 겪었지만, 북지태수와 서하태수를 거쳐 어사대부에 이르렀다. 말년에 은퇴하여 몇 달 후 사망했으며, 시호는 경(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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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2년 사망 -
조충국
조충국은 전한 시대의 무장으로, 흉노 정벌, 강족 반란 진압 등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선제 즉위에 기여하여 영평후에 봉해지고 흉노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감로 2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장이라 받았다. -
기원전 52년 사망 -
유순 (성양강왕)
유순은 전한의 제후왕으로 성양혜왕 유무의 아들이며, 기원전 98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양왕이 되었고 기원전 52년 사망하여 아들 유회가 왕위를 계승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의 공신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공신후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두연년은 아버지 두주처럼 법률에 밝았으며, 형제들과 달리 유연한 통치를 펼쳤다. 그는 소제 옹립, 상관걸 모반 진압, 선제 옹립에 큰 공을 세워 건평후에 봉해졌다. 무제의 빈번한 원정을 거울삼아 검소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곽광에게 진언하였고, 천하의 어진 이를 발탁하고 술, 소금, 철의 전매를 논의하는 등 정책 제안에도 적극적이었다.
선제 치세에는 태복과 급사중을 지내며 많은 상을 받았으나, 곽광 사후에는 그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숙청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승상 위상의 비리 고발로 파면되고 식읍이 깎였으나, 이후 북지태수, 서하태수를 거쳐 어사대부에 올랐다. 오봉 3년(기원전 55년)에는 아버지 두주가 일했던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아버지의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자리에 앉는 등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보였다. 감로 2년(기원전 52년)에 은퇴하여 몇 달 후 사망했으며, 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1. 초기 활동
대장군 곽광이 소제를 옹립하였을 때, 두연년은 곽광의 군사공(軍司空)이었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 익주의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연년은 교위(校尉)가 되어 남양 출신 병사들을 이끌고 진압하였고, 귀환하여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좌장군 상관걸, 어사대부 상홍양이 연날왕을 옹립하려는 음모를 연창이 대사농 양창에게 밀고하였는데, 양창은 겁이 나 병을 핑계로 두연년에게 알렸다. 두연년은 곽광에게 보고하여 모반을 진압하였다. 이 공으로 두연년은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곧 태복·우조급사중(右曹給事中)이 되었고, 곽광이 혹독한 형벌을 시행하려 할 때 이를 말렸다.
두연년은 무제의 빈번한 원정을 거울삼아 검소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곽광에게 진언하였다. 천하의 어진 이를 발탁하고, 술·소금·철의 전매를 논의한 것은 모두 두연년이 제창한 것이었다.
소제의 병세가 위독해져 천하의 명의들이 소집되었을 때, 두연년은 처방과 약품을 관리하였다. 이후 소제의 뜻으로 창읍왕이 뒤를 이었으나 폐위되었는데, 두연년은 곽광과 장안세에게 유병이를 추천하여 황제로 즉위하게 하였다. 선제는 즉위 후 자신을 옹립한 대신들에게 포상을 내렸고, 두연년은 식읍을 더 받았으며, 문제를 옹립하는 데 힘쓴 주허후 유장에 비견되는 공적을 세웠다.
2.2. 상관걸 모반 진압
연창이 좌장군 상관걸과 어사대부 상홍양이 연날왕을 황제로 세우려 한다는 것을 대사농 양창에게 알렸다. 겁이 난 양창은 병을 핑계로 두연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두연년은 대장군 곽광에게 보고하였고, 모반은 진압되었다. 두연년은 이 공으로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곧 태복·우조급사중(右曹給事中)이 되었고, 곽광이 혹독한 형벌을 시행하려 할 때 두연년은 이를 말렸다.
2.3. 선제 옹립
곽광이 소제를 옹립했을 때, 두연년은 곽광의 군사공(軍司空)이었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 익주의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연년은 교위(校尉)가 되어 남양 출신 병사들을 이끌고 진압했고, 귀환하여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좌장군 상관걸·어사대부 상홍양이 연날왕을 제위에 앉히려 하자, 연창이 이를 대사농 양창에게 밀고했다. 겁이 난 양창은 병을 핑계로 두연년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두연년은 곽광에게 보고하여 모반을 진압했다. 두연년은 이 공적으로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곧 태복·우조급사중(右曹給事中)이 되었고, 곽광이 혹독한 형벌을 시행하려 할 때 두연년은 이를 말렸다.
두연년은 무제의 빈번한 원정을 거울삼아 검소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곽광에게 진언했다. 천하의 어진 이를 발탁하고, 술·소금·철의 전매를 논의한 것은 모두 두연년이 제창한 것이었다.
소제의 병세가 위독해져 천하의 명의들이 소집되었을 때, 두연년은 처방과 약품을 관리하였다. 이후 소제의 뜻으로 창읍왕이 뒤를 이었으나 폐위되었는데, 두연년은 곽광과 장안세에게 유병이를 추천하여 황제가 되게 하였다. 선제는 즉위 후 자신을 옹립한 대신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두연년은 식읍을 더 받았고, 문제를 옹립하는 데 힘쓴 주허후 유장에 공적이 비견되었다. 선제 치세에도 두연년은 태복과 급사중을 지냈고, 받은 상과 선물이 매우 많았다.
2.4. 선제 치세
대장군 곽광이 소제를 옹립하였을 때, 두연년은 곽광의 군사공(軍司空)이었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 익주의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연년은 교위(校尉)가 되어 남양 출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압하였고, 귀환하여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좌장군 상관걸·어사대부 상홍양이 연날왕을 제위에 앉히려 하자, 연창이 이를 대사농 양창에게 밀고하였다. 겁이 난 양창은 병을 핑계대며 두연년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두연년은 곽광에게 보고하여 모반을 진압하였다. 두연년은 이 공적으로 건평후(建平侯)에 봉해졌다. 곧 태복·우조급사중(右曹給事中)이 되었고, 곽광이 혹독한 형벌을 시행하려 할 때 두연년은 이를 말렸다.
두연년은 무제의 빈번하였던 원정을 거울 삼아 검소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고 곽광에게 진언하였다. 천하의 어진 이를 발탁하고, 술·소금·철의 전매를 논의하던 일은 모두 두연년의 제창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제의 병세가 위독해져 천하의 명의들이 소집되었을 때, 두연년은 처방과 약품을 관리하였다. 이후 소제의 뜻으로 창읍왕이 뒤를 이었으나 폐위되었는데, 두연년은 곽광과 장안세에게 유병이를 추천하여 그로 하여금 황제가 되게 하였다(선제). 선제는 즉위한 후 자신을 옹립한 대신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두연년은 식읍을 더 받았고, 예전에 문제를 옹립하는 데에 힘쓴 주허후 유장에 공적이 비견되었다. 선제 치세에도 두연년은 태복과 급사중을 지냈고, 받은 상과 선물이 매우 많았다.
곽광 사후, 그의 아들 곽우가 반란을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주살되었다. 선제는 두연년이 곽광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를 숙청하려 하였고, 마침 승상 위상이 두연년의 비리를 일러바쳤다. 문초해 보니 말 여러 마리가 죽은 것·관아의 노비들의 옷과 음식이 부족했던 것 정도밖에 없었으나, 두연년은 파면되고 식읍이 깎였다.
몇 달 후 북지태수에 임명되었으나, 두연년은 본래 구경의 반열에 들었던 자인만큼 변방의 일에 익숙지 않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 선제가 직접 글을 보내 질책하니, 두연년은 뛰어난 부하를 선발하고 호족들을 체포하여 군을 잘 다스렸다. 선제는 두연년의 공적을 치하하여 서하태수로 전임시켰다. 두연년은 서하 또한 잘 다스렸다.
오봉 3년(기원전 55년), 두연년은 황패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되었다. 아버지 두주가 일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두연년은 감히 두주가 생전에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자리에 앉았다.
감로 2년(기원전 52년), 두연년은 연로함을 이유로 은퇴를 청원하였다. 선제는 일단 허락하지 않았으나, 두연년이 재차 청원하니 수레와 말을 내려주고 관직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