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하인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짐 하인스는 미국의 육상 선수이자 미식축구 선수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100m와 4 x 100m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1983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에는 NFL 선수로 활동했으나, 미식축구 선수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은퇴 후에는 청소년들을 위해 일했으며, 1994년 텍사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23년 사망했다.

짐 하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68년의 하인스
1968년의 하인스
본명제임스 레이 하인스
출생일1946년 9월 10일
사망일2023년 6월 3일
사망 장소캘리포니아주 헤이워드
1.83m
몸무게81kg
종목육상
세부 종목단거리
개인 최고 기록
100m9.95 (멕시코 시티, 1968년)
200m20.59 (베이커스필드, 1967년)
대학
대학팀텍사스 서던 타이거스
올림픽 메달
메달남자 육상
대회하계 올림픽
금메달1968 멕시코 시티 100m
금메달1968 멕시코 시티 4×100m 계주
NFL 정보
포지션와이드 리시버
등번호99, 81
6ft 0in
몸무게175lbs
드래프트 년도1968년
드래프트 라운드6라운드
드래프트 순번146번째
고등학교오클랜드 (캘리포니아주) 맥클리몬즈
대학교텍사스 서던
과거 팀마이애미 돌핀스 (1968년~1969년)
캔자스시티 치프스 (1970년)
리셉션2
리시빙 야드23
러싱 야드7
킥 리턴 야드22
PFRHineJi00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칸소주 출신 - 빌 카
    미국의 육상 선수 빌 카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400m와 4x400m 계주 2관왕을 차지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나, 1933년 교통사고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한 후 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아칸소주 출신 - 댈러스 롱
    댈러스 롱은 미국의 육상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996년 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은퇴 후 치과의사이자 응급 의학 전문의로 활동하다 2024년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 2023년 사망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미디어셋 설립, 포르차 이탈리아 창당, 친미 외교 정책, 탈세 및 성 스캔들 등 여러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렸다.
  • 202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1946년 출생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엘리자베스 슬레이든은 잉글랜드 배우로, BBC SF 드라마 《닥터 후》에서 사라 제인 스미스 역을 맡아 세 번째, 네 번째 닥터의 컴패니언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스핀오프 드라마 《사라 제인 어드벤처》에서 주연을 맡았다.
  • 1946년 출생 - 변인선
    변인선은 평양 출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으로, 인민군 상장까지 진급하여 제7군단 및 제4군단 사령관,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4년 예편 후 목함 지뢰 도발을 일으켜 2015년 총살형을 당했다.

2. 육상 경력

아칸소주 듀마스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야구 선수였으나, 고등학교 시절 육상 코치 짐 콜먼에게 발탁되어 단거리 육상 선수로 전향했다. 텍사스 서던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8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전미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 100m 경기에서 수동 계측 9.9초를 기록하며 공식적으로 10초의 벽을 깬 최초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같은 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미국 내 인종 폭동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 등 사회적 긴장 속에서도 100m 결승에 진출하여 9.95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전자동 계시 방식으로 측정된 최초의 9초대 기록이었다. 또한 4 × 100m 계주에서도 미국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금메달과 함께 또 다른 세계 신기록(38.24초) 수립에 기여했다. 그의 100m 세계 기록은 1983년 캘빈 스미스가 9.93초로 경신하기 전까지 약 15년간 유지되었다.

올림픽 이후, 1968년 AFL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마이애미 돌핀스에 지명되어 미식축구 선수로 전향했으나, 프로 무대에서는 육상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69년 마이애미 돌핀스 소속으로 10경기에 출전하여 리시빙 2회 약 21.03m 획득, 러싱 1회 약 6.40m, 킥오프 리턴 1회 약 20.12m를 기록했으며, 1970년 캔자스시티 치프스로 이적하여 1경기에 출전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23년 6월 3일,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1. 유년 시절 및 선수 발탁

아칸소주 듀마스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자랐다. 1964년 맥클리먼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에는 야구 선수였으나, 달리기 재능을 눈여겨본 육상 코치 짐 콜먼에게 발탁되어 단거리 육상 선수로 전향했다. 이후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 서던 대학교에 진학하여 타이거스 육상팀 소속으로 활동했다.

1968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전미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US Championship) 100m 준결승에서 하인스는 인류 최초로 10초의 벽을 깨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기록은 수동 계측으로 9.9초, 전자 계측으로는 10.03초였다. 같은 날 다른 준결승에서 찰스 그린(전자 10.09초)과 로니 레이 스미스(전자 10.13초) 역시 전자 계측 기록과 별개로 수동 계측 9.9초를 기록하며 공식적으로 세계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1968년 6월 20일 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날의 경기들은 육상 역사학자들에 의해 "[[스피드의 밤]]"(Night of Speed영어)으로 불리게 되었다.

2.2. 10초의 벽을 깨다 (1968년)

1968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하인스는 100m 달리기에서 10초의 벽을 깬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당시 기록은 수동 측정으로 9.9초였으며, 전자 계시로는 10.03초였다. 같은 날 로니 레이 스미스(전자 계시 10.13초)와 다른 준결승의 찰스 그린(전자 계시 10.09초) 역시 수동 측정 9.9초를 기록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968년 6월 20일 저녁, 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는 육상 역사학자들에 의해 "스피드의 밤"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하인스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 서던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몇 달 후 열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미국 내 인종 폭동과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회 참가 허용 문제(결국 불참), 그리고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클럽과 연관된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에 대한 반발로 인해 미국 선수단 내 흑인 선수들의 보이콧 위협이 이는 등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인스는 100m 결선에 진출하여 9.95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 기록은 전자동 계시 시스템(FAT)으로 측정된 최초의 10초 미만 기록으로, 새로운 세계 신기록으로 공인되었다. 당시 결승선 통과 시 기록은 9.89초로 측정되었으나, 공식 사진 판독 후 9.95초로 정정되었다. 전자 계시 기록(9.95초)과 수동 계시 세계 기록(9.9초, 하인스는 이 레이스에서도 수동 9.9초로 측정됨)을 어떻게 비교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전자 계시는 총성과 동시에 시작되는 반면 수동 계시는 측정자의 반응 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완전 자동 타이밍이 세계 기록의 기준으로 요구된 것은 1977년부터였다. 이 100m 결승은 올림픽 역사상 세 번째로 시상대 전체가 흑인 선수들로 채워진 경기이기도 했다. 하인스는 이 대회 4 x 100미터 릴레이에서도 최종 주자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고 또 다른 세계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2.3.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텍사스 서던 대학교 재학 중이던 하인스는 미국 내에서 인종 폭동이 심화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올림픽 참가 허용 문제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가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컨트리 클럽과 연관되었다는 사실 등에 대한 불만으로 미국 선수단의 흑인 선수들이 보이콧을 위협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참가했다.

하인스는 100m 결선에 진출하여 9.95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전자동 계시로 측정된 인류 최초의 9초대 기록이자 새로운 세계 신기록으로 공인되었다. (수동 계시 기록은 9.9초). 당시에는 전자 계시 기록(9.95초)과 수동 계시 기록(9.9초)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완전 자동 타이밍 방식이 세계 기록 측정의 공식 기준으로 채택된 것은 1977년부터였다. 이 100m 결승은 올림픽 역사상 세 번째로 시상대 전체를 흑인 선수들이 차지한 경기이기도 했다.

하인스는 또한 400m 계주에서도 미국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 경기에서도 38.24초의 세계 신기록 수립에 기여했다.

그가 올림픽에서 세운 100m 세계 기록 9.95초는 1983년 캘빈 스미스가 9.93초를 기록하며 경신하기 전까지 약 15년 동안 유지되었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대회장소종목결과기록
1968올림픽멕시코시티(멕시코)100m9.95초 (WR)
1968올림픽멕시코시티(멕시코)4 × 100m 계주38.24초 (WR)

3. 미식축구 경력

올림픽에서의 성공 이후, 1968년 NFL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마이애미 돌핀스에 지명되었다. 하지만 하인스는 미식축구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1968년 시즌은 돌핀스의 연습생 명단에서 보냈다. 당시 팀 동료들은 그에게 '웁스(Oop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969년 마이애미 소속으로 10경기에 출전하여 패스 캐치 2회(약 21.03m), 런 1회(약 6.40m), 킥오프 리턴 1회(약 20.12m)를 기록하며 총 약 47.55m의 전천후 야드를 기록했다. 1970년에는 캔자스시티 치프스로 이적하여 단 한 경기에 출장한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데드스핀의 작가 제프 펄먼은 하인스를 역대 최악의 NFL 선수 10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4. 은퇴 이후

수년간 휴스턴 도심부의 청소년들을 위해 일했으며, 도시 외곽의 유전 굴착 회사(석유 시추 시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의 세계 기록은 1983년 캘빈 스미스가 9.93초를 기록하며 깨질 때까지 유지되었다. 1984년에는 UCLA에서 열린 마스터스 육상 대회 100m 경기에 출전했다.

1994년 텍사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6년에는 텍사스 육상 코치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2023년 6월 3일, 캘리포니아주 헤이워드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업적 및 평가

짐 하인스는 1968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미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100m 달리기 역사상 처음으로 10초의 벽을 깬 선수이다. 당시 수동 측정으로는 9.9초, 전자 계시로는 10.03초를 기록했다. 이 날 저녁 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에서는 하인스 외에도 로니 레이 스미스(전자 10.13초)와 찰스 그린(전자 10.09초)이 같은 공식 기록(수동 9.9초)을 세웠으며, 육상 역사학자들은 이 날을 "스피드의 밤"이라고 부른다.

몇 달 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1968년 하계 올림픽은 미국 내 인종 폭동,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참가 논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의 인종차별 및 반유대주의적 행보 등으로 인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개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인스를 포함한 미국의 흑인 선수들은 대회 보이콧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인스는 100m 결선에서 전자 계시 9.95초(초기 발표 9.89초에서 정정)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전자동 계시 시스템(FAT)이 완전히 도입되기 전이라 수동 계시 기록(하인스의 경우 9.9초)과 전자 계시 기록 중 어떤 것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1977년부터 전자동 계시 기록만이 세계 기록으로 공인되면서 하인스의 9.95초가 공식 세계 기록이 되었다. 이 경기는 올림픽 100m 결선 시상대에 흑인 선수들만 오른 세 번째 사례이기도 했다. 하인스는 이 대회 4 × 100m 릴레이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금메달을 따며 또 다른 세계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하인스가 세운 100m 세계 기록 9.95초는 1983년 캘빈 스미스가 9.93초를 기록할 때까지 약 15년간 유지되었다. 이는 남자 100m 세계 기록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기록 중 하나이다.

육상 선수 은퇴 후, 하인스는 미식축구로 전향하여 1968년 NFL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마이애미 돌핀스에 지명되었다. 그는 1968년 시즌을 돌핀스의 연습생 명단에서 보냈고, 1969년 10경기에 출전하여 총 52야드의 전천후 야드를 기록했다. 이후 1970년 캔자스시티 치프스에서 한 경기를 뛴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스포츠 작가 제프 펄먼은 그를 역대 최악의 NFL 선수 10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이후 하인스는 수년간 휴스턴 도심부의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으며, 도시 외곽의 유전 굴착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하인스는 1994년 텍사스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2016년에는 텍사스 육상 코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