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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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채종범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외야수와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 2000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주전 선수로 활약했으나,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기량이 성장한 김강민에게 밀려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KIA 타이거즈에서는 타격 부진으로 대타로 주로 기용되었고, 2011년 방출되었다. 은퇴 후에는 NC 다이노스와 kt 위즈에서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

채종범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선수명채종범
영어 표기Chae Jong-Beom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창원시 (舊 마산시)
생년월일1977년 12월 3일 ()
신장181cm
체중85kg
투구
타석
수비 위치외야수
프로 입단 년도2000년
드래프트 순위1996년 2차 12라운드 (2000년 입단)
첫 출장KBO / 2000년 4월 5일 대구 삼성
마지막 출장KBO / 2011년 8월 13일 광주 롯데전
계약금4,300만원
선수 경력
선수 경력SK 와이번스 (2000년 ~ 2008년)
KIA 타이거즈 (2008년 ~ 2011년)
코치 경력
코치 경력NC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2년)
KT 위즈 타격코치 (2013년 ~ 2015년)
KT 위즈 잔류군 야수코치 (2015년)
KT 위즈 타격보조코치 (2016년 ~ 2018년)
KT 위즈 2군 타격코치 (2018년)
NC 다이노스 타격보조코치 (2019년 ~ 2022년)
학력
학력마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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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시절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외야수로 전향했다. 2002년 2할대 타율, 17홈런, 68타점을 기록하고 3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하는 등 주전 좌익수로 맹활약하며 3년 연속 규정 타석을 채웠다.

2004년 어깨 부상으로 입원하던 중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2008년 소집 해제 후 복귀했지만, 김강민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2008년 5월 4일 3:2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2.1. SK 와이번스 시절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외야수로 전향했다. 2002년에는 2할대 타율, 17홈런, 68타점을 기록하고 3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하는 등 주전 좌익수로 맹활약하며 3년 연속 규정 타석을 채우는 팀의 주력 선수로 활약했다.

2004년 어깨 부상으로 입원하던 중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적발되어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2008년 소집 해제 후 복귀했지만, 그가 복무하는 동안 기량이 성장한 김강민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2008년 5월 4일 3:2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2008년 5월 4일 3:2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이적 후 타율 2할을 넘지 못하는 등 타격 부진에 빠졌고, 나지완, 신종길, 이종환 등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대타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대타로 간간히 출장해 1할대 타율, 4홈런, 16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 시범 경기 중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됐고, 부상의 여파로 이듬 해에는 29경기에 그쳤다. 2011년에는 단 1차례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됐다.

3.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NC 다이노스의 감독이었던 김경문의 부름을 받아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현역 시절 신생 팀에서 프로에 입문한 것처럼 지도자도 신생 팀에서 시작하였다. 하지만 2012년 시즌 후 NC 다이노스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 kt 위즈의 코치로 선임됐다.

2015년 잠시 1군 코치로 있었으나 코치진 개편으로 잔류군 야수코치로 이동했고, 2015년 시즌 후 타격보조코치로 1군에 복귀했다. 2019년부터 NC 코치로 복귀했다.

4. 에피소드

* 마산고등학교 시절 유격수로 활약하며 청소년 대표로 뽑혔다. 이때 함께 키스톤 콤비로 호흡을 맞춘 2루수는 1년 후배이자 kt 위즈의 내야수였던 신명철이었다. 신명철과는 이후 kt 위즈에서 다시 만나 함께 활동했다.
* 2002년 5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역대 2번째 6타수 6안타를 기록했다.
* 2007년 SK 와이번스 창단 첫 우승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 중이었고, 2008년에는 3:2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친정 팀의 우승을 함께하지 못했다. 2009년에는 시범 경기 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SK 와이번스는 자신이 없을 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KIA 타이거즈도 우승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3년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는 출전했다.

5. 별명

이름이 같은 이종범의 별명 중 하나인 '종범갑'에서 따온 '종범을'이라는 별명이 있다.

7.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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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경기수타수안타홈런득점타점도루4사구삼진타율
2000년SK13245711385552544590.247
2001년1173961411854381653490.355
2002년1274781391779681065700.291
2003년942335432015017340.242
2004년1043219474843244440.293
2005년8950410210.556
2008년KIA701472941316215330.197
2010년297718361307150.234
통산8시즌681210855350279246252473050.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