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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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고구려 이래 한국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석각 천문도로, 1395년(태조 4년) 또는 144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464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3중 원과 12국분야, 성수분도 등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의 우주관 영향을 보여주는 논천기사가 포함되어 있다. 경복궁, 창경궁 등을 거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마모되었으나 복각본을 통해 내용 복원이 가능하다. 이 유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로, 조선 건국과 함께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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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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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
유형 | 국보 |
![]() | |
이름 |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영어 이름 | Celestial Chart Stone |
지정 번호 | 228 |
지정일 | 1985년 8월 9일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
소유자 | 국유 |
수량 | 1점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청 ID | 11,02280000,11 |
2. 제작
이 각석을 만든 배경에 대해서는 석각에 새겨져 있으며, 권근(1352∼1409)의 《양촌집》 천문도시조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예전에 평양에는 천문도를 그린 각석이 있었는데, 전란으로 강에 빠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탁본마저 매우 희귀해졌다. 그러던 차에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옛 천문도의 탁본을 바쳤다. 이에 태조는 그것을 매우 귀중히 여겨 돌에 다시 새기도록 하였다. 당시 천문ㆍ측후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에서 그 연대가 오래되어 별자리들의 위치가 조금 바뀌어 생긴 오차를 바로 잡아 새 천문도를 작성하기로 하고, 새로 《중성기》 한 편을 편찬하여 그에 근거하여 천문도를 작성하였다고 한다.[1]
이 유물은 제작된 이후 경복궁에 있었으나, 영조 46년(1770년)에 경복궁에서 임진왜란 이후 사라졌던 석각본이 다시 발견되어 관상감(觀象監) 흠경각(欽敬閣)을 짓고 숙종 때 만든 새 천문도 각석과 함께 보관했다.[1]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1년과 1963년에는 창경궁 명정전 뒤에 방치 상태로 보관되기도 하였다.[1]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윗부분에는 12국분야, 성수분도(星宿分度), 일수(日宿), 월수(月宿), 천(天) 그리고 8개 방향에 대한 짧은 설명이 사방에 있고, 석판 중앙에 지름 76cm의 3중원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안에 모두 1,464개의 별들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고, 별자리의 이름이 해당 위치에 새겨져 있다.
이 석각은 고구려 이래의 한국 우주관을 도식적으로 잘 보여주는 점, 중국 남송(南宋)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돌에 새긴 천문도인 점, 제작 연대가 분명하고 그것도 조선시대 국초에 해당되는 점 등에서 더없이 중요한 천문 과학 문화재로 평가된다.
석각본의 제작 연대는 대체로 조선 태조 4년(1395년)으로 보고 있으나, 《서운관지》에 세종 15년(1443년)에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는 기록이 있어, 1395년에 그려진 천문도를 각석한 시기는 1443년일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1]
3. 유물
석각은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을 거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유물은 그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작은 글자를 완전히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1] 석판 위쪽 끝의 모서리는 깨졌고, 십이국분야급성수분도(十二國分野及星宿分度)를 비롯하여 일수·월수·천의 기사는 거의 모두 마모되었고, 큰 원 안에 새겨진 별들은 마모되었으나, 이십팔수거극분도(二十八宿去極分度)는 거의 다 판독할 수 있을 정도이다.[1] 제일 아랫단의 천문도 설명 부분과 서운관 부분에서는 557자 중에서 78자만이 해독할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마모되었다.[1] 그런데 본 유물이 이처럼 마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물 제837호인 복각본이 남아 있어 그 내용의 복원은 가능하다.[1]
4. 구성
아랫부분에는 논천(論天)과 28수 거극분도(去極分度), 천문도 작성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 제작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과 이름을 적고 맨 끝에 홍무(洪武) 28년 12월에 제작하였다는 제작 연도가 새겨져 있다.
석각의 중심 부분인 별자리 그림에는 중심에 북극을 두고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黃道)와 남ㆍ북극 가운데로 적도(赤道)를 나타내었다. 또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들이 총망라되어, 황도 부근의 하늘을 12등분 한 후, 1,464개의 별들을 점으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으로 해, 달, 5행성(수성, 금성, 토성, 화성, 목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를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 새겨진 별의 수 1,464개는 중국에서 3세기 초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었으나 전해지지 않는 삼가성도(三家星圖)의 283좌 1,464개와 일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이 천문도 아랫부분에 새겨진 논천기사(論天記事)는 조선 초기 천문학자들이 중국의 옛 전통적 우주관의 영향을 받았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당시의 우주관은 하늘과 땅이 생긴 모양을 대체로 둥근 하늘 아래 평평한 땅이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한 개천설(蓋天說)과 하늘은 껍질과 같고 땅은 노른자위 같은 달걀 모양이라는 혼천설(渾天說)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역사적 의의
한국의 역대 왕조는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 왕조의 운명을 내다보기 위해 천체의 관측과 그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지식의 핵심은 천문도로 작성하여 규격화하였고, 그것을 왕조의 권위를 위한 상징물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이 석각 역시 태조 이성계의 개국과 함께 제작된 점으로 미루어 왕권을 표상하고 새 왕조가 천명을 받아서 탄생하였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권력의 정당성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었으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는 유물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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