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공주
1. 개요
청하공주는 조조와 첩 유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조조는 청하공주를 정의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조비의 반대로 하후무와 혼인하였다. 조조는 정의의 총명함을 알고 조비의 결정을 후회했다. 하후무와 불화하며 하후무가 모반을 꾀한다는 무고 사건이 있었으나, 무고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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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직계가족 -
헌목황후
헌목황후는 후한 헌제의 황후이자 조조의 딸로, 복황후 폐위 후 황후가 되어 조비의 위나라 건국 시도에 저항했으며, 헌제 강등 후에는 산양공 부인으로서 백성을 보살폈고, 헌제 사후 합장되었다. -
조조와 직계가족 -
조간 (조왕)
조간은 조조의 아들로 태어나 조비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하여 열후, 하간왕, 낙성왕, 거록왕을 거쳐 조왕에 봉해졌고, 조예, 조방, 조모, 조환 시대를 거치며 봉지가 확대되어 위나라 황실 역사에 기록되었다. -
3세기 사망 -
갈레노스
갈레노스는 로마 제국의 의사이자 철학자, 문헌학자로, 그의 방대한 저술은 서구 및 이슬람 의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해부학적 관찰과 동물 실험을 통해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발전시키고 인체의 기능과 질병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여 의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
3세기 사망 -
디오 카시우스
디오 카시우스는 22년에 걸쳐 80권의 《로마사》를 저술한 그리스계 로마인 역사가이며, 코모두스 황제 시대에 원로원 의원을 지내고 아프리카 속주와 판노니아 총독을 역임했으며, 그의 저서는 로마 제정 중기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조조의 첩 유부인(劉夫人)에게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청하공주’는 칭호일 뿐이다. 조조는 딸을 정의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조비의 반대로 하후무와 혼인했다. 그러나 하후무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조식이 조비에게 사죄할 때 청하공주에게 중재를 부탁하기도 했다. 하후무는 첩을 많이 거느려 부부 사이가 험악했다. 하후무의 동생들은 처벌이 두려워 청하공주를 통해 조예에게 하후무를 모함하게 했다. 조예는 하후무를 처형하려 했으나, 단막의 변호로 재조사 결과, 청하공주와 동생들의 거짓으로 밝혀졌다.
2.1. 초기 생애와 혼인
조조의 첩 유부인(劉夫人)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조조는 장녀 청하공주를 정의와 혼인시키려 했으나, 아들 조비가 "여자는 얼굴을 보는데 정의는 애꾸눈이니 청하공주가 상심할까 걱정됩니다. 하후돈의 아들 하후무가 더 낫습니다."라고 하여 하후무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하후무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며, ‘청하공주’는 그녀가 받았던 칭호일 뿐이다.
2.2. 조식과의 관계
조조는 딸의 배필을 찾던 중, 옛 친구 정충의 아들인 정이가 현명하고 인기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조는 아들 조비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으나, 조비는 정이의 외모(사시)를 이유로 반대하며 하후돈의 아들 하후무와의 혼인을 추천했다. 결국 조조는 정이와의 혼인을 취소하고 딸을 하후무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이후 조조는 정이를 직접 만나 그의 뛰어난 지혜를 알아보고, 정이를 사위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내 아들이 나를 그르쳤다"라고 말했다. 이 일 이후, 정이는 조비에게 앙심을 품고 동생 정식과 함께 조비의 이복 동생 조식을 지지하며 그를 태자로 추천했다.
조식은 조비에게 사죄하기 위해 수도로 갔을 때, 청하 공주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조비에게 보고되었고, 조식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의 어머니 변황후는 그가 자살했을까 봐 크게 걱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식은 다시 나타나 형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2.3. 하후무와의 갈등 및 무고
하후무는 구두쇠였으며 여색을 밝혀 많은 첩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청하 공주와의 부부 사이는 험악했다.
228년, 조카 조예의 치세에 하후무는 고위 관료로 소환되었다. 하후무는 이전에 관중 지역에서 군대를 이끌면서 많은 첩을 거느렸는데, 이는 청하 공주의 불만을 샀다.
230년경, 하후무와 청하 공주 사이의 갈등이 악화되었다. 하후무의 두 아우 하후자장과 하후자강은 평소 하후무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로 인해 하후무의 분노를 사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이들은 청하 공주와 동맹하여 그녀를 대신해 하후무가 반역을 꾀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조예는 평소 하후무를 싫어했기에 상소 내용을 검토한 후 그를 처형하려 했다. 그러나 단막과 상의한 결과, 단막은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기보다는 하후무와 청하 공주 사이의 불화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막은 하후무의 아버지 하후돈이 위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조예는 상소를 누가 썼는지 조사하라고 명령했고, 진실이 밝혀지자 하후무를 처형하려던 생각을 포기했다.